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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올 이상은 Aug 19. 2023

아이들 이야기



제1화  꼬마 아가씨 첫 등반


가만있으면 아이들은 아픈 거라지만 ㅈㅇ는 에너지가 넘친다. 

하루 종일 재재거리고 뛰어다닌다.

얼르고 명령하고  가만 놔두질 않는다. 옆에 있으면 금방 지친다.

4살짜리 암벽등반가는  상상초월이다

한두 번은 실패하지만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 

팔힘은 장난 아니다.

"ㅈㅇ, 사랑해요! ㅇㅈㅇ 최고!"





제2화  우리 범범이


우리 범범이는 이제 9개월이 되어간다.

현대판 아이돌처럼 야리야리하거나 여성적이진 않지만

선이 굵고  남성적인 대다 듬직하다.  말하자면 옛날형 미남이다.

뭔가 움켜쥘 때면 힘도 장사고 허우대도 커서  상위 1%란다.

남들 다 기어 다닐 때는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했는데

어느 날 또래 애들 기어 다니는 걸 보더니 기어 다니는 게 애들 장난 같은지 월반해서 일어서려고만 한다

사내놈은 사내놈인가 보다 크게 보채는 것도 없고 그냥 느긋하다.

그래도 성질날 때면 소리소리 지르면서 크게 한탕한다.

범범이는 특이한 점이 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면  익숙해질 때까지 뚫어져라 눈을 맞춘다.

사주팔자를 칼 쓰는 편관격을 만들어서 그런가?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하겠다는 것 같다.





제3화  어린 ㅈㅇ의 웨딩드레스


어린 ㅈㅇ와 손잡고 지하 도로를 걷고 있는데

“저 여자 누구야?”라고 묻는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은 결혼정보 회사 광고사진을 본 모양이다.

무명의 모델이라 이름은 모르겠지만 예뻤다.

“모르겠는데. 예뻐?”

우아하고 신비로워 보이는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마음을 사로잡은 모양이다.

 

“너도 커서 결혼하면 저 언니 같은 옷을 입게 될 거야.”라고 하니

“아냐. 난 보라색으로 입을 거야.” 란다.

5살 어린 소녀의 보라색에 담긴 의미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응"이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나에겐 그 대답이 너무 의외로 들린다.

그래도 여과 없이 속내를 드러내는 순수함은 좋다.




제4화  우리 범범이, 돌


식구들이 다 모였다. 우리 집 장손 돌이다.

신체 사이즈 상위 1%  ㅈㅂ이는 보기만 해도 듬직하다. 

어지간해서 울지도 않고 포기도 모른다.

이마를 검지로 밀어내 못하게 해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전진한다.

주위 소동에도 제 갈 길을 가고, 은근과 끈기는 기대감을 준다.

마법을 부렸는 지 돌잡이 때는 아빠, 엄마가 바라던 것을 잡아 웃음을 더해준다.

2-3주 전만 해도 기관지염으로 입원까지 해서 걱정이 됐었는데

그래도 회복하고 돌을 맞으니 그 의미가 사뭇 새롭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다오.

커서는 능력 있고 멋진 청년이 되어다오.

중장년이 되어서는 뜻을 펼치고 덕이 있는 사람이 되어다오.

그리고 내 나이가 되면 평온한 큰 어른이 되어다오.




제5화  오이지 담근 사연


아내가 오이 100개나 사서 오이지를 담근다.

육식성 반찬을 좋아하는 나도 오이지는  좋다. 

흰쌀밥 위에 오이지와 고추장,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으면 한 그릇 뚝딱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나를 위해 한 것 같지는 않다.

다음 주, 1년 만에 귀국하는 둘째가 많이 밟혀서 게다.

둘째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둘째는 표정으로 얘기한다. 

말소리는 남보다 두 배는 높고, 웃을 땐 남보다 세 배는 웃는다.

그래서 표정을 보면 무슨 얘기를 할지 미리 알 수 있다.

마음도 투명하게 보인다.

익어가는 오이지 사랑에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된다.




제6화  생일상


아침에 눈을 뜨니 고소한 음식 냄새가 난다.

오늘이 아내의 생일!

요리에 무지한 서방과 아들만 가진 숙명 때문에 아내는 미역국도 생각 못 했는데

언제 준비했는지 수육에 삼색 나물까지 한가득 생일상이 차려져 있다.

 

어젯밤에는 감기로 열이 끓던 제 남편이 안타까웠는지

밤새 잠 못 자고 냉찜질시키더니

때꾼해진 눈으로 준비한 시엄마 생일상이다. 

정갈하게 만든 음식 맛도 제법이지만

몇 날 며칠 생각했을  정성이 기특하고 예쁘다.

고맙다 얘들아! 

내 생일도 잊지 말고 챙겨다고.





제7화  가정의 달


가정의 달, 가족 모임을 위한 식사자리 마련이 녹녹하지 않다.

시간이 꽤 남았는데도 웬만한 음식점은 자리가 동이 났다.

뿐만 아니다. 새끼들을 위한 선물, 부모를 위한 선물도 고심이 필요하다.

아이들에, 양가 부모 다 계시고

식구 중 누가 생일이라도 끼어 있으면 

유리지갑 젊은 부부는 괴롭다.

 

예전 우리한테는 11월도 그랬다.

어머니, 형, 나, 큰아들의  생일이 줄줄이던 그 달.

생일날이 비슷해 아래 것은 생일도 못 찾아 먹는 그런 달이었다.

그런 달이 또 돌아온다.

챙길 일 많은 자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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