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화 같이 걸으며 좋아지는 것들
걷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어 시작한 운동이다. 아내는 언젠가부터 소파에 앉아 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잔병치례도 많아져서 급기야 지난달에는 면역력이 떨어지면 걸린다는 대상포진까지 걸려 고생 꽤나 했었다. 이러다 아내가 어떻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혼자서 운동하기 싫다는 아내를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한 거다. 사실 난 걷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지만 꾸준히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 뾰족이 생각나지 않아 걷기를 선택했다.
우리는 저녁밥을 먹고 해가 석양에 걸릴 때쯤 집을 나선다. 해가 질 때면 아무리 찌는 듯한 날씨라도 한풀 꺾기고 석양에 비치는 노을도 볼만해서 한강을 걷기에 금상첨화다. 반환점은 반포대교다. 집에서 반포대교까지는 왕복 7Km, 걸음수로는 만보가 된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땀도 나고 오랜만에 걸으면 발바닥이 얼얼하고 골반이 삐거덕거리는 신호가 올 정도다.
걷기를 시작하면서 저녁밥은 이른 시간 간단하게 먹게 된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술을 한잔 걸치고 들어오거나 비가 와도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레 몸무게는 조금씩 줄고 허벅지는 돌덩이가 된다. 덜 피곤하고 체력도 약간은 좋아지는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뒤태가 나고 자세는 바라진다. 아내는 뱃살도 줄어서인지 어색하던 원피스가 제법 어울리기 시작한다.
걷기를 자주 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들이 또 있다. 자러 들어가서 자리에 누우면 바로 잠에 곯아떨어진다. 유튜브를 보느라 의미 없이 허비하던 시간을 온전히 잠자는데 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상쾌함도 가끔은 느끼게 된다. 내친김에 아내는 필라테스도 신청해서 자기 몸을 가꾸기 시작한다. 천지가 개벽할 노릇이다. 나이가 먹으면 엉거주춤 걷기도 하고 다리가 휘어 뒤뚱거리는 게 보기 싫은데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좀 배워선지 걸을 땐 배에 힘을 주고 어깨를 펴고 목을 곧추 세우라고 내게 코치도 한다. 난 의욕이 넘치는 아내가 보기가 좋다.
무엇보다 바람직한 것은 아내와 많은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주로 집안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얘기들이다. 자식들의 결혼생활, 손주들의 재롱, 부모 병간호, 우리의 남은 삶과 죽음 등. 의미 있는 얘기도 있고, 별 의미 없는 얘기도 있다. 비숫한 얘기고 들어 봤음직한 얘기지만 또 들어도 새롭고 절실하기도 하다. 얘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또 얘기하면서 스트레스도 받는다. 하여간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아내의 마음을 더 잘 읽게 된다.
이렇게 걷다 보면 무릎도 안 좋고 평발이라 포기했던 뉴질랜드 밀포드 트래킹이나 스페인 산티아고 둘레 길도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좋은 습관이 좋은 결과를 만든다’는 말의 신봉자이긴 하다. 걷는 것은 예외로 두었지만. 그런데 예외는 없는가 보다. 순간의 선택으로 아내도 좋아지고 내게도 희망이 생기기 시작해서 같이 걷기는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