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은 영어 학원의 원어민 선생님 담당이었다. 이번에 오는 50대 캐나다 원어민 클로이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20대 딸 스칼렛과 같이 한국에 오게 된 특이한 케이스였다. 딸이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대학교 부속어학원에서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 한다고 하였다.
클로이 선생님은 교육경력이 풍부했고 아이들을 잘 캐어해 주었기 때문에 학원 입장에서는 더없이 좋은 인재였다. 한가하다고 느껴지는 방학에는 자진해서 학생들 한 명 한 명 그날 레슨을 복습시키는 전화영어를 돌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내 학부모님들의 마음도 휘어잡았다. 문제는 그녀의 딸 스칼렛이었다. 어느 날 재스민은 스칼렛에게서 돈을 빌려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클로이는 스칼렛이 학창 시절 심한 따돌림을 받아 공황장애를 겪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유일한 취미인 춤 동아리에서 아프리카 나이로비 출신 안드레라는 남자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시카가 걱정된 클로이가 어느 날 그 안드레라는 남자에 대해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친구들은 그는 이미 본국에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사실을 확인한 클로이는 화가 나서 당장 그 유부남과 관계를 정리하라고 했지만 스칼렛은 이미 그 남자에게 모든 마음을 준 상태였으며 현실적으로도 서류상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는 내 남편이고 본국에 돌아가지 않고 나와 함께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클로이는 딸이 서류상 이미 그 유부남과 결혼을 했다는 것을 알고 배신감이 들었지만 차분히 그녀의 순진한 딸에게 이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안드레라는 남자는 처음부터 캐나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 너한테 접근한 것이며 영주권이 나오면 본국에 있는 가족을 곧 캐나다로 부를 계획이고 너는 이용당한 거라고 말이다,
재스민은 다음날 스칼렛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려줄 테니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 재스민은 스칼렛이 중간중간 입덧을 했기에 임신을 한 것을 눈치챘다. 재스민은 그에게 돌아가려고 돈을 구하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스칼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스민은 스칼렛에게 돈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이 돈 너 줄게. 이걸로 그에게 돌아가. 그 대신 안드레에게 전화 한 통화만 하자.
나는 지금 안드레에게 전화해서 네가 한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말할 거야 그리고 당신이 이 여자의 남편이냐고 물어볼 거야. 너는 그가 어떻게 대답할 거 같아?"
재스민의 어이없는 상황극에 스칼렛은 대답했다. "당연히 남편이니깐 남편이라고 대답하겠죠." 확신에 찬 스칼렛의 말을 들은 재스민은 그녀에게 말했다."그래 그가 정말 그렇게 대답을 한다면 이 돈 네가 그냥 갖는 거야."
제시카의 눈이 반짝였다. "빌려주는 게 아니라 그냥 준다는 건가요? 왜요?" 제시카의 질문에 재스민이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안드레가 널 모른다라고 할 거 같아. 그는 너를 사랑한 적이 없거든." 제시카는 그럴 리가 없다며 당장 전화를 해보라고 했고 안드레는 3번의 시도 끝에 귀찮아하는 목소리로 뒤늦게 전화를 받았다.
재스민은 각본대로 상황을 설명했고 안드레에게 이 여자와 무슨 관계인지 혹시 남편분 되시냐고 물었다. 안드레는 대답은 하지 않고 "정말 죽었어요?"라고 제차 물어보며 놀라는 듯하더니 곧 죄송하지만 잘 모르는 여자라고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재스민은 제시카에게 핸드폰을 돌려주고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창백해진 손을 잡았다. 그리고 제시카에게 말했다. "너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면 안대를 껴. 나도 그랬고 어릴 땐 다들 그런 실수를 해. 근데 정말 중요한 것이 뭔지 아니? 이런 거지 같은 경험들을 통해 나중에는 정말 너라는 사람의 가치를 알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누군지를 선별해 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 거야. 다행히도 넌 아직 어리고 얼마든지 성숙한 사랑을 배울 기회가 많아. 아직 늦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