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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세베리아 Oct 30. 2022

16. 나를 믿어주는 사람

공무원 시험

나는 쌍둥이를 출산한 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버린 내 뱃살을 보며 신랑과 자식들 앞에서 더 멋지고 꿀리지 않은 여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가들 똥기저귀를 갈다가 문득 신랑과 같은 공무원이 되어야겠다 결심했고 이왕 할 거면 워라벨이 가장 좋은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도전해보리라 다짐했다.


임용고시 공부했었던 교육학과 내 전공이며 밥벌이 수단이었던 영어가 이미 밑받침이 되고 있으니 나머지 국어, 국사, 행정법만 하면 시간은 남들보다 벌 수 있겠다고 판단되었다. 개인적인 체감 난이도는 나에게 있어 임용고시가 대학 수학능력시험이라면 공무원 시험은 운전면허 시험이었다.


나는 쌍둥이가 19월이 되던 해 3월 둘을 아파트 어린이집에 보내고 고시원에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국가직 시험은 4월이었고 지방직 시험은 6월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먼저 우리 엄마에게 말을 하기 전 신랑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빠 우리 엄마는 한숨을 쉬며 어차피 안될 거 헛수고 말며 아이나 잘 키우라고 말씀하실 거야. 그때 오빠가 말 좀 잘해주세요."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날 보며 아직도 시험에 미련이 남았냐며 한 소리 하셨고 과거에 해봤는데도 안된걸 또 할 거냐며 혀 끝을 차셨다. 나는 엄마의 낙인찍는 듯한 발언에 수치스러움을 느껴 나도 모르게 발끈하였다.


신랑은 내 손을 꼭 잡고 우리 엄마에게 특유의 넉살 좋은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 "장모님~ 힘든 여정일수록 주변 사람들이 시험 전에 좋은 기운을 줘야지 해보기도 전에 안될 거란 말로 부정적인 기운만 준다면 정말 잘 될 일도 안된대요~"


사위를 지극히도 좋아했던 엄마는 신랑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자네는 이 시험이 현실적으로 가능할 거 같은가?" "그럼요. 이런 결심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다 해보던 가락이라도 있는 사람이 하는 거지요~ 저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도전하게 해주고 싶어요."


신랑의 말을 들은 엄마는 나와 신랑을 번갈아 보더니 마지못해 말하셨다. "아이고! 나몰라~ 그래서! 나는 오후에 자네 초과 근무하고 늦게 온날만 내가 아가들 어린이집에서 찾아서 밥 먹이고 있으라고? 그 거믄 된가?" 신랑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주말은 제가 본가에 데리고 가서 아가들 볼 거라서 평일 저녁에 3번만 봐주시면 되세요."


아침엔 커피숍에 가 커피로 잠든 뇌를 깨우며 과거 5년 치 기출문제를 풀고 오답을 정리했다. 오후에는 독서실에서 제일 생소한 행정법 동영상 강의를 계속 들으며 전체적인 개념을 정립한 후 중요한 판례를 암기했다. 한국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핵심이 되는 요약 강의만 들었다. 국어는 독해의 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 푸는 연습을 하고 문법을 암기하였다.


4월에 치러진 국가직 성적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시간이 부족해 문제를 미처 다 풀지도 못하고 나왔으나 낙담은 하지 않았다. 대신 시험장에서 집까지 2시간을 걸어오며 나는 내가 가진 과목별 취약점을 분석하고 다음 지방직 시험에서는 실전 시간 전략을 어떻게 짤 건지를 계속 생각했다.


6월 지방직 시험날이 다가왔다. 새벽부터 일어나 요약정리 노트를 보았지만 공부가 부족하단 생각에 도무지 시험을 볼 자신이 없었다. 화장실에 앉아 이를 닦으며 도망갈까?라는 생각도 했고 빨리 오늘 하루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시험장에 간 나는 그렇게 책상에 앉았다. 내 사정은 알 바 아니란 듯 시간은 무심히도 빨리 흘러 1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시험 문제는 국가직보다 어려워서 문제를 풀다가 답이 빨리 찾아지지 않자 집중력이 붕괴되지 시작했다. 교실을 박차고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나는 시계를 보다가 시험 감독관과 눈이 마주쳤다. 속으로 실전이다! 정신 차리자!라고 외친 나는 다시 한번 시험지에 집중하며 한 문제 한 문제 풀어나갔다. 이번 시험에 비록 떨어지더라도 적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나를 믿고 지원해준 신랑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험이 끝났다. 며칠 후 새벽 나는 신랑 몰래 일어나 시험지를 꺼내 채점을 해 보았다. 실수도 많았기대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시험지를 접어 옷장 깊숙한 곳에 처박았다. 그리고 곤히 자고 있는 신랑 품 안을 파고 들어갔다. 신랑이 인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깨 날 꼭 안아주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빠 나 떨어질 거 같아. 많이 틀렸어." 신랑은 자세를 고치더니 내게 말했다. "채점 매 봤어? 아직 몰라. 결과가 나와봐야 알지."


다행히 나는 1차 필기시험 발표 공고란에서 내 수험번호를 발견했다. 엄마는 내 1차 시험 합격소식에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렇게 반응하셨다. "오매! 너 합격할 거 같았음 직작 말하지 그랬냐? 그랬음 내가 아가들을 더 봐줬을 건데..." 이상한 답변이었다. 당연히 합격할 거 같으니 합격할 생각으로 공부를 하는 거지... 엄마는 내가 정말 합격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면접 당일날 손과 목소리가 아니 온몸이 그렇게 떨렸던 순간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4명의 면접자들 앞에서 그들이 던지는 4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어찌어찌 다 마쳤다. 3문제는 과거 기출문제에 나왔던 문제였고 마지막 사립학교 비리 해결방안에 대한 문제는 유튜브 10분 교육정책 토론을 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드디어 2차 최종 합격자 발표날이 되었다. 나는 떨어져도 후회는 없을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의 노력을 쥐어짜 내어 이 모든 과정을 해 낸 걸 알았기에 떨어져도 울지 않기로 다짐했다. 합격자 발표 공고를 클릭한 나는 기적이 일어났음을 느꼈다. 내 수험번호가 당당히 그곳에 있었다. 나는 놀람과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고 엄마도 같이 놀라서 내게 "합격이야?" 하고 물으시면서 다시 한번 잘 확인해 보라고 채차 물으셨다. 나는 다시 내 수험번호를 모니터 합격자 수험 번호와 하나하나를 맞춰 불렀고 이를 확인한 엄마는 그제야 나와 같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이미 엄마가 시어머님께 내 합격소식을 전해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방문을 꼭 닫고 목소리를 슬픈 톤으로 바꿔 신랑의 전화를 받았다. "오빠..." 신랑은 내게 "확인해봤어?"라고 물었다. 나는 "응..  나 떨어졌네..."라고 대답했다.


 신랑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수험번호 불러봐라." "아니... 내가 방금 엄마랑 확인했어. 내 번호 없었어." 신랑은 내 말을 믿지 못하고 계속 수험번호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뻥이지 롱~~ 나 합격했지요~~~!" 신랑은 장난기 어린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덤덤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응.. 알았다." 나는 엄마랑 너무 상반된 신랑의 무미건조한 반응에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다. "뭐야? 그게 다야? 왜 안 놀라?" 신랑은 나의 물음에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놀라긴 왜 놀라? 나는 너 합격할 줄 알았어. 그동안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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