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떠난 보낸 후 나는 더욱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과거 캐나다 밴쿠버에서 어학연수를 한 경험을 살려 유아교육 ECE(Early Childhood Education) 자격증을 따기 위해 퇴근 후 밤마다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밴쿠버 주정부에서 발급해준 ECE 자격증만 있으면 면접을 통해 유치원에 고용이 될 수 있었고 일을 하면 이민의 기회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계획은 순조로웠고 다음 해 한국에 돌아온 2월 말 나는 드디어 그 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돌아오자마자 다시 날 시집보내기 위해 안달이셨다.
매번 반복되는 질문과 답변에 내가 이번 남자한테는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헷갈리기 시작할 때 즈음 나는 내 신랑을 만났다.
당시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패드로 카톡을 깔고 2G 폰을 쓰고 있던 나에게 그는 대화 중간중간 장문의 MMS로 문자를 보내왔고 그걸 받지 못했던 나는 그가 억지로 하기 싫은 소개팅을 강요받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대로 우리의 대화는 매번 종료됐다.
한 달 후 그쪽 주선자 쪽에서 남자 쪽에서 문자를 보내면 여자 쪽에서 답장을 자꾸 주지 않아서 못 만났다고 왜 답장을 안주냐고 연락이 왔었고 우리 엄마는 "우리 딸이 답장을 했는데 그쪽에서 안 했다고 하던데요?"라고 답변했다. 오해가 있었던 거 같다며 이번에는 신랑이 문자가 아닌 전화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우린 토요일 오후 5시 달콤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그런데 3시쯤 그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저 2층 창가 쪽에 앉아 있겠습니다."라고 말이다. 나는 "왜 빨리 오셨어요?"라고 답했고 그는 "하하하하하하" 웃으며 "시간을 착각했네요. 잠깐 근처 사는 친구 좀 만나고 5시에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문자도 그러더니 약속 시간도 착각하고 약간 나사 빠진 놈인 거 같아서 이번에도 보나 마나 허탕이다라고 생각하고 별 기대 없이 그와의 약속 장소로 갔다. 모퉁이를 돌자 어깨가 떡 벌어진 키 큰 멋진 남자가 가로등 앞에서 해맑게 나를 보고 인사를 했고 나는 첫눈에 그가 내 사람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내 이상형이었다.
그는 연도는 달랐었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캐나다 밴쿠버에서 어학연수를 한 경험이 있어서 나와 대화가 잘 통했거니와 중간중간 유머 코드도 잘 맞아서 나를 빵빵 터지게 만들었다. 돈가스 집으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그날 식당 종업원이 마감 시간이라고 쫓아낼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몇 번의 만남이 지속될수록 나의 캐나다 이민 계획은 기억 속 저 너머로 멀리 시라져만 갔다. 그는 다정했고 유쾌했고 예의 발랐으며 귀여웠고 또 나를 귀여워도 해주었다. 양가 부모님께서는 우리의 만남에 대해 무척 궁금해하셨고 상견례 이야기 나온 어느 날 그는 내게 물어봤다. "내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하지 않아요?"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혹시 나중에 지워야 할 일이 생길까 봐서요...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오빠가 저 대신 지워줄래요?" 신랑은 나에게 혹시 전에 가슴 아픈 사랑을 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와 그렇게 결혼까지 했다. 호주로 가 버렸던 윈디만 빼고 모두 내 결혼식에 와주었다. 윈디는 내가 쌍둥이들을 임신하고 낳을 때까지 우리와의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2년 만에 다 죽어가는 슬픈 목소리로 내게 전화했다. 그녀는 교통사고로 몸을 다쳤다고 내게 거짓말을 했었다. 하지만 추궁하는 나에게 그녀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어쩌면 어느 누구에게나 다 일어날법한 흔한 사랑 이야기였다. 그 시고만 빼면 말이다.
그 남자는 어느 날부턴가 윈디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고 했다, 길을 물어보는 지나가는 행인하고 말을 했을 뿐인데도 그는 둘의 관계를 의심하고 이상한 이야기를 하며 윈디를 구속했다고 했다. 실제로도 윈디는 나이에 맞지 않게 섹시하고 어리고 건강미가 넘쳐났기 때문에 지나가던 남자들이 다들 한 번쯤은 뒤돌아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는 윈디와 심하게 다투었고 부엌의 칼을 꺼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목을 겨냥해 휘둘렀다. 윈디는 그를 세계 밀쳐냈고 목에서 분수처럼 터져 나온 피를 감싸 쥔 채 창을 넘어 3층 높이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바닥에 두 발이 닿는 순간 커다란 충격으로 허리뼈가 뚝하고 내려앉는 듯한 소리가 났지만 욕을 하며 소리치는 남자 친구를 피해 그대로 내달렸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내가 분노하며 물었다 "그래서 그 미친놈은? 감옥 갔어? 몇 년 후에 다시 사회에 기어 나오는 거야?" 그녀는 그가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조현병을 앓고 있었는데 쾌활하고 에너지 넘치는 윈디를 만나 약을 먹지 않고 윈디에게 자신의 병명을 숨겼다고 했다. 윈디가 알면 떠날까 봐 약을 먹지 않고 버텼는데 그날 그 싸움으로 사달이 난 것이었다.
윈디는 삶의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를 여러 번의 수술 끝에 다시 되살아났고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2년 전 자신이 매정하게 차 버렸던 전 남편이었다고 말했다. 서서히 회복된 윈디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2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 했다. 호주 정부는 위로의 뜻으로 윈디에게 영주권을 주었으며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사회보장금을 받을 수 있게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치를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