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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세베리아 Oct 30. 2022

13. 죗값

아빠!꼭 다시 만나자

국제학교에서 두 번째로 맞는 크리스마스 방학이 되었다. 나는 눈이 빠지게 나만 기다리는 부모님을 외면하고 함께 여행을 가자고 하는 선생님들의 제안을 뒤로하고 배낭을 꾸려 홀로 여행길을 나섰다. 상해-대만-마닐라 -보라카이의 일정이었다. 마지막 보라카이에 다다랐을 때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든 배낭여행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커피숍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도 혼자 여행 온 외국 친구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우린 쉽게 친구가 되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모로코 여자 친구는 선입견 없는 오픈 마인드로 나를 표출해도 좋을거 같다 말했다. 나는 그녀와 보라카이 밤바다 앞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싱글 남녀들의 젊은 열기에 몸을 맡겼다.


나는 그곳에서 춤을 추었고 나의 멍청했던 불쌍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에 던져버렸다. 나는 그 여행을 통해 점차 아니 완전히 회복되어 갔다. 그들 속에선 나도 그저 젊은 혈기왕성한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다음날에도 우린 해변가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넷이 다섯이 되고 또 여섯이 되고 일곱이 되었다.


세계엔 이렇듯 많은 젊은 남녀들이 있었고 40살 넘은 싱글 남녀들도 많았다. 그들은 성별 국적 나이가 다 달랐지만 공통점은 다 싱글이었으며 하나같이 성숙해 보이며 빛이 났다. 그동안 우물 안에 갇혀 답답한 기준으로 나를 옭아맨 사슬이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중국으로 돌아온 나는 새해를 새 마음가짐으로 시작하였다.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날수록 나는 평안에 머물렀고 모든 것이 완벽했었다. 친한 선생님 댁에서 새로 오신 선생님들의 환영회 겸 저녁식사를 하던 때였다.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빠는 또 술에 취해계셨다. 며칠 전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도저히 아빠와 살 수 없으니 결혼 전인 너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젠 나도 이혼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또 시작이구나... 이번에는 텀이 좀 길었네..... 하지도 못할 이혼 수십 번 반복됐던 엄마의 가출... 나는 귀를 막고 눈을 돌렸다.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오늘 아빠는 슬픈 목소리로 내 안부를 물었고 나는 마지못해 "응... 잘 지내..."라고 대답했다. 아빠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더욱더 슬픈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넌 아빠도 안 보고 싶지?"....."아니... 보고 싶지" 그게 아빠와 마지막이었다. 그해 봄 그렇게 아빠는 내 곁을 영영 떠나버렸다.


평생을 나를 사랑해주었던 그 남자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때론 나를 학대했고 엄마를 학대했었다. 하지만 그는 평생을 거쳐 가족이란 울타리를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어 우리가 결코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게 만들어주고는 그렇게 주변을 정리한 후 조용히 떠났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한국 사회의 가장이었고 가정 폭력의 주범자였으며 칼로 우리를 위협해 딸인 나에게 여러 번 경찰에 신고도 당했었던 한심한 개차반이었다.


그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청년시절 꿈을 버리고 희망도 버린 채 넥타이를 차고 매일매일 30년 가까이 은행에 출근하며 돈을 모았고 자식을 키웠다. 그러는 동안 느는 것은 주량이었고 술주정이었다. 그는 매월 월급날이면 자식과 마누라를 위해 깨끗하고 정돈된 글로 편지를 써서 용돈과 함께 우리에게 전달했다.


나는 엄마의 부탁으로 목격자로서 진술서를 작성했다. 술 취한 그에게 맞은 엄마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글이었다. 그것이 엄마의 이혼에 있어 재산분할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엄마는 어린 나에게 그것을 최대한 낱낱이 쓰게 시켰다. 그리고 그 글은 아빠에게 전달되었다. 그간 그가 사랑하는 딸에게 매월 쓴 사랑과 격려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나는 후회했다. 중국을 가는 게 아녔다고... 내가 중국을 가지 않았다면 Jason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 바닥을 치는 못난 내 모습을 그에게 마지막 모습으로 보여드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랑했었다. 선인장처럼 나를 찌르고 찔러서 때론 차라리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져버리고 싶도록 내게 안락한 가정을 선사해주진 못했던 아빠지만 나를 위해 희생했던 아빠를 알기에 나는 아빠를 동정하고 안아주고 싶어 했다.


아빠의 폭력에 피 흘리는 엄마가 불쌍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방패 역할을 하며 나는 무수히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비웃고 조롱하며 때론 훈계도 했다. 이제 내가 평생 그 죄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살다 간 아비에게 왜 더 나은 인간이 되지 못하느냐고 손가락질 한 그 죗값을 나는 달게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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