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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위시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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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설 Sep 28. 2024

걷다

 에세이

걷다





  초록이 짙은 초여름이었다. 가족과 가까운 인천대공원을 갔다. 자전거를 빌려서 한 시간 동안 몇 바퀴를 돌았다. 나는 적당한 걸음으로 뒤를 따라갔다. 상쾌한 자연 향기를 맡으니 그동안 밀린 피로감이 말끔히 사라졌다. 길을 걷다가 거리마다 피어있는 붉은 장미의 정원에 서서 한참 동안 셔터를 눌러댔다.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선명하게 보였다. 두세 시간이 지났을까. 자전거를 반납하려는 순간 배꼽시계처럼 꼬르륵 소리가 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파라솔에 자리를 정하고 가까운 편의점에 갔다. 떡볶이, 컵라면, 아이스크림, 시원한 음료를 사서 정신없이 흡입했다. 평소에 별로인데 탁 트인 자연에 와서 먹는 컵라면은 꿀맛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분수대가 하늘을 향해 치솟더니 하늘 위로 무지개가 출몰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결혼 후 가까운 거리의 도서관은 걸어 다녔다. 주말에 진행하는 작가의 만남에 참여했다. ‘바쁘지만 시간 내서 참여하길 잘했구나.’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 살에 스치는 느낌이 시원했다. 거리마다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넘실넘실 춤을 추었다. 노을이 살짝 번진 파스텔 하늘은 너무 아름다웠다.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 댔다. 카메라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자연의 경이로운 순간을 눈과 마음에 저장했다. ‘내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일까?’ 질문하고 사유했다. 


  “엄마 정말 예뻐요.”

  “정말 네가 더 예뻐. 점심에 네가 좋아하는 떡볶이 먹을래?”


  추억의 사진을 들여다보니 하얀 티에 청바지, 앳된 얼굴에 미소를 짓는 나의 리즈 시절이었다. 전에 친구와 강촌으로 하이킹하러 갔다. 자전거타기가 서툴러서 2인용을 빌렸다. 자전거를 타면서 한마음으로 서로 끌고 당겼다. 눈부시게 따뜻한 햇살 아래 녹음이 짙은 자연에 동화되고 순수한 낭만을 즐겼다. 가까운 식당에 들러 막국수와 닭갈비도 먹고 달콤한 라떼도 한잔 마셨다. 지난날 소소하고 행복한 추억이었다.


  ‘변덕이 이끄는 대로 이 길 저 길을 따라갈 자유’

  내가 원할 때 마음대로 떠나고 돌아올 자유, 이리저리 거닐 자유,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처럼 산책은 자유롭고,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다.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게 되었으며, 감정에 다르게 사고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한 사유는 걷기에서 나온다. 걷기는 자극과 휴식, 노력과 게으름 사이의 정확한 균형을 제공한다. 약간의 느린 걷기는 더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중하기 좋은 방법이다. 화창한 오후, 가까운 공원으로 산책했다. 거리에는 반려견을 데리고 유유히 걸어오는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보였다. 건너편 신호등에는 교복 차림의 남학생이 친구와 재잘거리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오는 강아지를 보고 벤치에 앉은 여학생이 환하게 웃었다. 


  길을 걸으며 사유하는 시간이 좋다. 오가는 가까운 거리를 친구와 함께 걸어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지만 가끔은 혼자 걸어도 좋다. 건강을 위해 하루에 만 보를 걷는다. 걸을 때 크고 작은 생각이 떠오를 때 무조건 메모한다. 일상에 작은 메모의 습관은 삶의 좋은 자양분이다. 나중에 메모를 보면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오늘도 길을 걷는다. 한걸음 한걸음 걸으며 자연을 느낀다. 생각을 정리한다. 나 자신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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