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리움을 위하여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댄 채 조용하고 친밀하게 국수를 먹었다
어머니는 멍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런 일상적인 배려랄까, 사소한 따뜻함을 받아 보지 못한 ‘여자의 눈’으로 손님을 대하는 순간이었다. 밥 잘하고 일 잘하고 상말 잘하던 어머니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살면서 중요한 고요가 머리 위를 지날 때가 있는데, 어머니에게 그 때가 그 순간이었을 거다."
- 김애란, <칼자국> 본문 중에서 -
성인이 된 딸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지난 추억을 돌아보는 과정이 가슴 뭉클하게 펼쳐지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 『칼자국』은 어머니로서, 또 한 여성이자 인간으로서 자기 앞의 생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던 자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 억척스럽고도 따뜻했던 삶은 단순히 희생이나 사랑, 혹은 모성이라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기에 더욱 깊이 있게 읽히며 긴 여운을 남긴다. 정수지 일러스트레이터의 단정하고 아름다운 그림은 소설과 어우러져 한층 매력을 더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사소한 작은 행동은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가족, 사회 구성원 간 존중과 배려하는 사회문화가 형성해야 한다. 자식을 키우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며 남편을 품어낸 삶은 과연 어땠을까. 그는 부모에게 사랑받는 귀한 존재다. 좋은 일만 있으면 좋지만 맘대로 순탄치 않은 게 인생이다. 가장으로 책임감이 더해진 엄마의 인생은 누구를 위한 인생일까. 그가 원했던 인생일까.
엄마는 임신 중 떡갈비를 먹고 싶었는데 못 드셨다고 하셨다. 지금은 마트에 다 팔고 에어프라이어를 쓰면 금방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그 시절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엄마는 출산 후 일과 육아를 병행했다. ‘한겨울에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리운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혼 후 나도 엄마가 되어보니 고된 ‘엄마라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주말에 마트에 가서 음식 매장에 만들어진 떡갈비와 산 낙지를 보니 엄마 떡갈비 좋아하셨는데...
찬 바람이 불면 엄마가 어릴 적 간식으로 만들어 주신 계란빵이 먹고 싶었다. 오븐에 기름을 살짝 바르고 계란과 밀가루를 섞어서 붓고 30분 정도 기다리면 향기 좋은 계란빵이 완성됐다. 색 노랗고 동그란 계란빵을 팔 등분 해서 케이크 칼로 나누고 우유를 함께 먹었다. 손으로 만지면 스펀지처럼 촉감이 연하고 부드러워서 입 안에 넣으면 살살 녹았다. 감미로운 빵 냄새에 취해 한 동안 배가 고프지 않은 나를 늘 유혹했다. 가끔 제과점 가면 먹고 싶은 빵과 케익의 색이 화려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유난히 색 노란 케익을 보면 어릴 적 엄마 표 계란빵의 향수에 젖어 나만의 기억 창고에 맴돈다.
지난 눈 내리는 겨울날 지인들과 송년회 오케스트라 연주회 공연에 갔다. 서라운드 한 음향 효과와 현장감에 압도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귀에 익은 감미로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왠지 모를 공허한 마음이 사르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음악은 귀로 듣는 즐거움, 마음의 정화 및 울림 있는 감동을 준다. 음악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다. 전에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에 계실 때 가끔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해 주셨다. 엄마는 찬송가를 좋아하셨다. 음악을 들으면서 인지 능력이 더 빠르게 회복되었다. 수많은 연구 결과, 음악은 치료 효과가 있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면 뇌가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 음악은 행복을 준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희망을 잃지 않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삶을 선물처럼 여기고 간절히 기도하며 지금을 살리라’ 생각해 보니 엄마랑 맛있는 거 먹으며 여행한 추억이 별로 없네. 엄마가 떠올라 참던 눈시울이 잠시 붉혀졌다. ‘뭐가 그리 바빠서 잘해드리지 못했을까. 엄마는 항상 언제나 내 편이었는데.’ 이제는 영원히 뵐 수 없기에 사무치게 그리웠다. 엄마 잘 지내시죠. 보고 싶어요. 기도 할게요. 주말에 시간 내서 꼭 뵈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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