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지금도 제 아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에 대해 불만이 없습니다. 적어도 중학교 때까지는 축구며 탁구며 좋아하는 운동을 원 없이 즐겼기 때문입니다. 그때 다져진 운동 신경이 밑거름이 되어, 지금도 제법 훌륭한 실력을 뽐내곤 합니다.
학창 시절, 매일같이 무릎팍이 까지고 얼굴이 새카맣게 타서 돌아오는 아들을 보면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안경을 쓴 아이라 혹여나 운동하다 눈이라도 다칠까 봐 노심초사했지요. 하지만 PC방에 앉아 있는 것보다 친구들과 땀 흘리며 어울리는 모습이 훨씬 안심이 되었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길이라 믿었기에 기꺼이 아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애지중지하던 탁구채를 교장 선생님께 압류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업을 빼먹은 줄 알았더니, 고작 점심시간에 탁구를 쳤다는 게 이유였지요. 당시 고교 평준화 전이었던 천안에서 중3 학생들의 성적은 명문고 입학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소였습니다. 학교의 평가를 중시했던 교장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고3 수준의 학업량을 요구하셨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아들의 성적은 목표하던 학교에 입학하기에 충분했기에, 저는 큰 압박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고등학교에 가면 지옥 같은 3년을 보내야 할 텐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요. 속으로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좀 놀겠다는데 교장 선생님도 참 너무하시지...' 하며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꽤 비싸게 주고 샀던 탁구채 대신 새것을 하나 더 사주며, 점심시간에는 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아이가 매일 새벽 6시 30분이면 집을 나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알고 보니 학교 지킴이 아저씨가 문을 열자마자 친구들과 강당으로 달려가 수업 전까지 한 시간씩 탁구를 쳤던 것이었습니다. 중학교 스포츠 클럽 대회를 준비하느라 그 꼬마들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묘책이었지요.
그렇게 탁구에 미쳐 지내더니, 결국 천안시 대회에서 단체전 2등이라는 쾌거를 이루고 돌아왔습니다. 학교의 정식 승인을 받지 못해 체육 선생님의 배려로 우여곡절 끝에 출전했던 터라, 교무실 선생님들조차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의기양양하게 상장을 들고 왔을 녀석들의 모습만 상상해도 절로 웃음이 납니다.
그때 함께 땀 흘렸던 아들과 친구들은 이제 번듯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미 가정을 이룬 친구도 있지요. 모두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준 '내 아들' 같은 녀석들입니다. 하지만 청년이 된 그들에게도 매일 짊어져야 할 치열한 삶의 무게가 왜 없겠습니까.
훗날 이 아이들이 살아가다 텅 빈 주름진 내면과 마주할 때, 저는 이 푸르던 날의 추억이 강력한 자신감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작은 공 하나에 온 몸과 마음을 던지던 그 열정으로, 이 둥근 지구도 번쩍 들어 올릴 에너지를 얻으리라 믿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자랍니다. 부모도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마음껏 놀고 부딪히며 저마다의 키만큼 쑤욱 자라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놀고 싶어 합니다. 작은 프레임 안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우리 아이들의 꿈도 정해진 틀을 벗어나 마음껏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