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흑백 사진 속 젊은 날의 엄마를 볼 때면 묘한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사진 속 여인은 꽃처럼 예쁘고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요. 제가 아는 엄마는 대가족의 끼니와 제사를 챙기느라 늘 분주했고, 사고 친 막내 동생을 들쳐 업고 병원 없는 시골길을 냅다 달리던 강인한 여성이었기에, 사진 속 가냘픈 여인이 우리 엄마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 또한 아들에게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들의 기억 속에 저는 어떤 모습일까요? 반찬 만들기 싫어 투정하던 모습일까요, 아니면 아빠의 긴 병간호 때문에 어린 아들을 매정하게 뿌리쳐야 했던 처절한 뒷모습일까요? 만약 그런 모습으로만 저를 기억한다면 아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들아, 그것은 큰 오산이란다. 엄마도 한때는 우아한 백조가 되고 싶었단다."
사실 저는 아들에게 이 세상에서 만나는 최초의 여성이자, 도도하고 긴 목을 가진 범접할 수 없는 품위의 '백조'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지요. 세상은 제게 충실한 '강아지'가 되기를 요구하는 듯했습니다. 낮에는 꼬리를 흔들며 주변의 비위를 맞추고, 밤에는 집을 지키며 주인을 안심시키는 존재 말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오직 역할로만 존재해야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 아들에게 만들어준 강아지 인형인데, 정작 아들은 인형을 별로 안 좋아했답니다.
그러다 저는 점점 '웅녀'가 되어갔습니다. 인내심 하나로 쑥과 마늘만 먹으며 인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곰처럼, 가족을 위해 부당한 요구조차 묵묵히 견뎌야 했지요. 몸매도 심성도 어느덧 곰을 닮아 둔해졌고, 겨울이면 겨울잠을 자듯 몸이 불어났습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가져갔나" 싶지만, 그래도 이 곰의 재주 덕분에 우리 집안이 평안하다면 그것으로 족했습니다.
▲ 우리집 거실을 지키는 곰 세마리
이제 나이 든 저는 '복돼지'의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젊은 날의 까다롭던 먹성은 어디 가고 물에 밥만 말아도 꿀맛이며, 아무 데서나 코를 골며 잠들기도 합니다. 게으른 듯 보이지만 의외로 자식에게는 애교도 부릴 줄 아는 우리 집안의 복덩이가 된 것이지요. 옛 이발소 벽에 걸려 있던, 열 마리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복돼지 그림처럼 저도 조만간 우리 집 벽 한편에 박제될지도 모릅니다.
한때 꿈꾸던 1단계 백조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 엄마의 인생을 닮아가는 지금의 제 모습이 싫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것이 엄마 덕분이었듯, 저 또한 사랑하는 자식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백조도, 개도, 곰도, 돼지도 모두 저마다의 소중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변신은 결국 축복이었습니다.
[추가 제안]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여, 혹여나 자신의 변신이 서글프게 느껴진다면 걱정 마세요. 우리는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있습니다. 아직 어린 자녀가 곁에 있다면 저 넓은 바다를 향해 함께 힘차게 헤엄쳐 가시길 바랍니다. 때로는 서로를 마주 보고, 때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자유로운 돌고래처럼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