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크리스마스 벽걸이를 걸며

어느덧 연말이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퍼뜩 일어나 크리스마스 시즌 벽걸이를 교체했습니다. 요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심장을 벌렁거리게 하는 일들이 지속되다 보니, 정신이 나간 건지 아니면 머리가 텅 빈 건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안정이 안 되는 '하수상한 세월'입니다.

그래도 어쩌랴, 작품으로 만든 지 1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장농에 잘 모셔두고 있다가 1년 중 한 달 정도만 빛을 보게 되는 이것을 올해 또 걸고 있습니다. 안 걸어주면 10여 년을 함께 추억을 공유한 이 곰돌이들에게 미안해질까 봐 올해는 더 자세히, 더 자주 바라보겠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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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째 거실 벽을 지키며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를 추억해 온 곰돌이 가족. 올해는 유독 그 평온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님의 탄생을 되돌아보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희망과 평화 그리고 사랑을 서로 나누라는 것일 텐데, 올해는 당연하게 여기던 이러한 감정들이 사치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이 지구 어딘가는 서로 땅을 빼앗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가 전쟁 중이고, 또 어딘가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죽이고 죽는 일이 일어나며, 또 어딘가는 억누르는 자와 눌려 지내는 자가 뒤엉퀴어 생사를 건 싸움을 하고 있는데, 내가 한가하게 따뜻한 방에 앉아 벽걸이 감상이나 하고 있다는 것에 죄의식이 들 정도입니다.

자식이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가 정말 큰 이벤트였습니다. 일단 교회에서 아이들이 예수 탄생 성극을 했기 때문에 내 아들은 어떤 해에는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었다가 어떤 해에는 동방박사가 되었다가 어떤 해에는 양치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더 어릴 때는 엉덩이를 흔드는 율동 자체가 귀여운 꼬마 무용수가 되어 몸치(^^)임을 만천하에 알렸지요.

몇 마디 되지 않는 대사를 외우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두건과 망토(이스라엘의 전통 복장을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모릅니다)를 입어보며 진지하게 연습하던, 다시 오지 않을 즐거운 소란이 새삼 그립고 소중합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의 '구주'가 자기 친구 이름인 줄 알고 열심히 부르던 병아리 같은 작은 입, 한아름 선물이 산타할아버지가 준 선물인 줄 알던 순수했던 동심. 그리고 그런 아이를 키우며 함께 설레던 나의 젊은 엄마 시절도 무척 그립습니다.

요즘 저는 부쩍 소박해지고 욕심이 없어졌습니다. 다만, 올 크리스마스는 제발 평온하고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뿐! 그래서 천사 같은 어린아이들이 하얀 수염의 산타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가지고 싶어 하던 선물을 놓고 가길 바라며 단잠에 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사랑, 평화, 희망"의 의미가 더 절실해졌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아이들의 동심을 깨는 일만은 절대 없길 기도하는 참 특이한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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