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왜 시간이 더디 흐를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어두운 밤을 지나지 않고서야 어찌 찬란한 아침 햇살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까요. 삶이란 기쁨과 슬픔, 그리고 그 언저리의 수많은 감정이 엮어내는 정교한 퍼즐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분명 행복하고 가슴 벅찬 순간들도 많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가슴 깊이 박힌 상처의 시간은 유독 더 길게 체감됩니다. 삶이 고단할 때 시간은 유독 더디게 흐르고, 그 시련의 회오리에서 빠져나오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인고가 필요했습니다.

살면서 겪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는 가까운 이에게 받는 마음의 상처일 것입니다. 다행히 망각이라는 신의 배려 덕분에 시간이 흐르면 분노와 실망도 희석되고, 서서히 관계를 정리하며 일상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저히 잊히지도, 수용되지도 않는 거대한 슬픔 앞에서는 망각조차 무력해집니다.

첫 아들을 잃었을 때,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전생'과 '업보'라는 단어로 운명을 받아들이라 하셨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자식을 잃고 정신줄을 놓을까 봐 애처로운 마음에 건네신 말씀임을 왜 몰랐겠느냐마는, 저는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께 대들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전생의 죄 때문에 왜 이생의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는 처절한 반발이었습니다.

그 어떤 위로도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고난 뒤에 '주님의 뜻'이 있다는 말 역시 제게는 억울한 매질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축복도 은혜도 필요 없으니 그저 나를 놓아달라고, 죄짓지 않고 살 터이니 제발 남들처럼 평범하고 별탈 없는 범부로만 살게 해달라고 울며 매달렸습니다. 구약성서의 욥처럼 고난 속에서 순종하기에 저는 너무나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불행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시련은 불길처럼 번져 저를 태우고 할퀴었습니다. 그 고통의 길을 떼굴떼굴 구르며 여기저기 부딪히는 동안, 제 성격의 모난 모서리들은 닳고 닳아 어느덧 둥그스름해졌습니다. 그렇게 지옥 한가운데 갇힌 줄 알았던 운명의 시간들도 결국은 흘러갔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되돌아보니, 떠올리기조차 싫은 그 시간들조차 내 인생의 귀한 의미가 되었음을 깨닫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됩니다. 고통은 나를 죽이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거창한 주님의 뜻까지는 몰라도,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며 주변과 조화롭게 살고 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고 자족합니다.

요즘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험악한 소식들로부터 이제는 해방되고 싶습니다. 그저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과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며, "덕분에 올해도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수줍게 고백하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가 국가에 바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추운 겨울, 국민이 길거리에 앉아 나라를 걱정하는 일 없이, 그저 평범하고 평안한 일상을 누리는 것입니다. 권력자들에게 대단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제가 하늘에 외쳤던 것처럼, 대단한 호강보다는 그저 평온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국민이 짊어져야 할 업보니, 주님의 뜻이니 하는 무거운 단어들 대신, '고요한 밤, 아기 잘도 자는' 평화로운 시간이 어서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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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게 되는 하수상한 시절입니다. 시간은 죄가 없는데, 우리의 간절한 평화는 어느 계절쯤 머물러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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