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헤라 ~ 산토 도밍고 데 라칼사다
어제 쌓인 피로에 감기 기운까지 있어서 또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푹 쉬고 감기를 빨리 떨어뜨리기 위해 다음 마을은 1인실 호텔로 예약해 놨다. 순례길 10일 차에 벌써 택시만 세 번 탔고, 10유로대의 저렴한 알베르게가 아닌 20유로가 넘는 좋은 숙소에서 머무는 것도 이번이 세 번째다. 이게 순례길 걷겠다고 온 순례자가 맞나 싶기도 한데 종교적 이유보다는 여행의 목적인 큰 나에게는 맞는 선택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처음에는 내 다리로 모든 순례길을 걷는 게 목표였다. 내가 너무 나약하고 포기가 빠른가 싶기도 하지만 크게 탈이 나서 귀국길에 오르게 되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었다.
뭐가 옳은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린 결정이니까 후회는 하고 싶지 않다.
이번에도 알베르게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카페 주인에게 택시를 요청드리고 편하게 택시를 타고 산토 도밍고 데 라칼사다에 도착했다. 호텔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며 빨래방에서 세탁과 건조를 했다.
오늘 묵는 숙소는 40유로 대의 더블룸이다. 히터도 마음대로 틀 수 있고, 방에 나밖에 없는 자유를 오랜만에 느꼈다. 그래서인지 평소 집에서 하던 행동을 했다. 쇼츠를 보고 밥 먹고 자다가 일어나서 또 유튜브 보기. 그러다가 현실을 직시한 나는 핸드폰을 던지고 일어났다. 고생한 나에게 잠깐 휴식을 주고 싶었을 뿐이지 이 머나먼 땅에 와서 한국에서 하는 짓거리를 또 하고 싶지 않았다. 컨디션도 괜찮고 체력도 어느 정도 충전이 되어 마을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카페도 가고 오랜만에 한국인 순례자들과 담소도 나눴다. 다시 순례자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앞으로 컨디션 관리를 잘해서 내 발로 산티아고까지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