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은 새벽 5시에 맞춰놓았지만 기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인지 3시에 눈이 떠졌다. 다시 잠을 청하고 알람 소리와 함께 5시에 일어났다. 얼굴은 대충 선크림만 발라놓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순례를 끝내고 프랑스로 다시 넘어올 예정이라 몇 가지 짐은 캐리어에 두고 캐리어를 호텔에 맡길 생각이다. 배낭에는 순례길 동안 필요한 짐을 넣었다. 운동화를 가져가서 마을을 둘러볼 때 신고자 했지만 도저히 배낭에 들어가지 않아 놓고 가야 했다. 대충 짐을 추린 후 가방을 멨다. 무게도 무게지만 배낭 높이도 길어서 메는 동안 여러 번 휘청거렸다. 아무리 눌러도 들어가지 않는 침낭과 등산 스틱은 가방에 매달고 다녀야 했다. 가방을 싸다 보니 어느덧 6시가 넘어 7시 기차 시간에 맞춰가기 위해 서둘러 방에서 나와 체크아웃을 하러 1층으로 내려갔다. 캐리어를 맡기겠다는 손짓 발짓이 통하지 않아 미리 호텔 측과 주고받은 메일을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메일을 보고는 영어로 무언가를 말했지만 말이 빨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찌 됐든 내 캐리어를 들고 어디론가 가는 거 보니 캐리어는 맡아주는 모양이었다.
구글 지도에 의지하면서 몽파르나스 역으로 향했다. 일부러 역 근처에 숙소를 마련한 건데도 그 짧은 거리를 잘못 들어 5분 거리를 15분 만에 도착했다. 이런 내가 순례길은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어렴풋이 긴장감이 몰려왔다. 아직 전광판에 탑승 구역에 나타나지 않아 간단히 빵으로 허기를 채우기로 했다. 처음으로 유럽에서 빵을 사야 하는 큰 퀘스트를 앞두고, 괜히 불안해져서 의지할 한국인이 없는지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시야에는 백인들뿐이었다. 동양인조차 없었다. 어색함이 가득한 얼굴로 쭈뼛거리며 빵집에 줄을 섰다. 슬쩍 보니 살 빵을 미리 말하면 직원이 진열대에서 빵을 꺼내 캐셔에게 전달해 결제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진열대에 있는 빵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내 차례가 되었다. 직원이 "봉주르."하며 어떤 빵으로 하겠냐는 눈짓을 보내왔다. 난 키쉬같이 생긴 빵을 가리켰고 기차에서 마실 물도 사기 위해 “워터.”라고 말했다. 하지만 직원은 알아듣지 못했고 혹시나 물을 가리키는 스페인어인 “아구아?”라고 하니 아! 하며 에비앙 한 병을 내게 건네주었다. 여행 오기 전 몇 번 듀오링고로 스페인어를 배운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몇 달간 꾸준히 했으면 외국인들 앞에서 덜 긴장했을 텐데. 빵을 사고 자신감이 붙은 나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기차에 올라탔다. 큰 짐을 올려두는 짐칸에 배낭을 내려둘까 고민도 했지만 혹시나 소매치기를 당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만두었다. 대신 무릎에 10킬로가 넘는 배낭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곧 이 일을 후회하게 된다. 옆자리에 사람이 앉지 않으면 배낭을 내려놓을 심산이었지만 도착지 전까지 내 옆자리는 비워지지 않았다.
허벅지 통증과 함께 환승지인 바욘에 도착했다. 가방을 두고 화장실을 가는 것도 걱정돼서 볼 일을 보지 못한 나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역사 안에는 없는 것 같아 역무원처럼 보이는 직원에게 화장실이 어디인지 물어봤다. 그는 위치를 말해주었지만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앞장서서 안내해 주었다. 그는 안내하는 화장실로 보이는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는데 사진 속에는 대변이 잔뜩 묻은 변기가 찍혀있었다. 화장실이 그리 깨끗하지 않다고 말하는 듯했다. 약간 긴장된 채로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다행히 깨끗했다. 볼일을 보고 난 후 생장까지 가는 열차를 기다리기 위해 대합실에 앉았다. 환승시간이 다가오자 기차 탑승 구역을 확인하러 가봤는데 10분 전까지 기다려도 아무런 표시가 나타나지 않았다. 생장행 옆에는 기차 모양의 픽토그램뿐이었다. 순간 바욘에서 생장으로 갈 때 버스로 환승할 수도 있다는 블로그 글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 픽토그램을 보니 열차가 아닌 버스로 보였다. 난 서둘러 광장에 주차되어 있는 버스로 향했다. 버스 기사는 내가 행선지도 말하기 전에 서둘러 타라고 손짓했다. 버스 표를 보여주고 생장행이 맞는 걸 확인한 뒤 자리에 앉았다. 버스 안에는 배낭을 메고 있는 순례자들뿐이었다. 버스는 순식간에 생장에 도착했다. 순례자 사무실까지 짧은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오르막길을 오르기 전까지 이 배낭을 메고 걸을만하다고 느꼈다. 오르막길이 시작되자 묵직한 배낭 때문에 한걸음 내딛기가 힘들었고 달라기를 하는 것처럼 숨이 가빠졌다. 그 짧은 오르막을 헉헉거리며 올라왔다. 이 배낭을 이고 순례길을 걷지 못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숙소에서 짐을 내리자마자 동키 사무실부터 들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니 한국인들이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해 순례자 여권을 받고 있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인사는 하지 못했지만 한국인 순례자가 있다는 게 안심이 되었다. 유쾌하고 친절한 순례자 사무실 직원으로부터 순례자 여권을 받고 55번 알베르게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순탄했다. 창문에 붙여진 종이에는 4시에 동키 사무실을 연다길래 여유롭게 마을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다녔다. 흐리고 비도 좀 내렸지만 이국적인 마을 풍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진을 찍어댔다. 4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다시 동키 사무실로 갔지만 여전히 문은 닫혀 있었다. 역시 유럽인들은 여유롭구나. 한국인 자아를 버리고 나도 느긋하게 내일 마실 물과 빵을 사러 마트로 향했다. 마트는 꽤 먼 곳에 있어 다시 동키 사무실에 들렀더니 5시가 다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열었겠지 싶었지만 여전히 문은 닫혀있었다. 사무실에 불은 켜져 있고 멀리서 사람이 보이길래 문을 두드렸다. 사장처럼 보이는 남자가 나를 보고 걸어오더니 문은 열어주지 않고 창문에 붙여진 안내문을 가리켰다. 대충 오늘은 짐을 받아줄 수 없다는 의미 같았다. 동키 없이 어떻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어떻게 28킬로나 되는 길을 걷지? 순간 불안함이 덮쳐와 씻지도 않고 침대에 걸터앉아 짐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카페와 블로그를 미친 듯이 훑어봤다. 생장에 있는 동키 사무실은 3월 14일부터 오픈하고 스페인 지역인 론세스바예스나 수비리부터 동키가 이용 가능한데 비성수기엔 운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어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은 방법은 택시였다. 택시를 이용해 짐을 배달하거나 택시를 타고 다음 마을로 점프를 하는 방법이 있다. 기나긴 검색 끝에 카페나 바에서 택시를 대신 불러준다는 정보를 접했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알베르게를 떠난 다음에 근처 카페에 가서 시간을 때우다가 택시를 타고 론세스바예스로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피곤이 몰려와 이른 저녁시간에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