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찍 잔 탓인지 새벽 2시에 눈이 떠졌다. 아무래도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된 모양이다. 다시 자려고 뒤척이다가 잠이 오지 않아 핸드폰도 충전할 겸 로비로 나갔다. 다시 올라가기 힘든 2층 침대라 졸리면 로비에서 자야겠다는 생각에 침낭도 챙겼다. 어제부터 계속 배낭이 걱정되어 여러 블로그와 카페를 방문해 보았지만 동키 업체 운영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배낭 무게를 줄이기로 결심했다.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마사지 볼, 팩, 비타민 알약 등을 버렸다. 조금 가벼워졌지만 언제까지고 이 무거운 배낭을 들고 다닐 수는 없어 오늘 밤에는 택시로 배낭을 운반해 주는 서비스를 신청하리라 마음먹었다. 5시가 넘으니 순례자들이 일어나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다들 분주하게 짐을 꾸렸다. 한 외국인과 스몰토크를 끝내고 나니 한국인들이 모두 기상해서 로비에 모여있었다. 우리는 함께 아침을 먹기로 했다.
아침은 토스트와 치즈, 햄, 버터와 잼, 사과가 나왔는데 사과가 너무 부드럽고 맛있었다. 아직 어제의 여파가 남았는지 속이 울렁거려서 토스트는 먹기 힘들었다. 한국에서는 빵을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왜 여기선 잘 들어가지 않는지... 출국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한식 생각이 점점 더 간절해진다. 토스트 반 쪼가리를 남기고 한국인들과 함께 수비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20분 정도는 잘 붙어서 따라갔지만 점점 속도 차가 나기 시작했고, 한 시간쯤 지나자 그들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굵어지기 시작해 판초 우비를 꺼내 입었다. 아스팔트 도로 가장자리를 걷던 어제와는 달리 부드러운 흙길을 걸어 발바닥에 무리는 덜 갔지만, 비로 인해 진흙으로 변하는 바람에 등산화가 금세 더러워졌다. 오르막길도 생각보다 많아 쉬었다 가는 시간이 길어졌다. 곧 후발대 순례자들과 만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내 안부를 물었다. 스몰토크이자 인사치레였겠지만 내게는 “너 힘들어 보이는데 산티아고까지 갈 수는 있겠니?”라고 들렸다. 도시락을 받느라 늦게 출발한 한국인도 나를 지나쳐갔다. 숲 길을 벗어나 넓은 들판이 펼쳐지는 곳에 다다랐는데, 그곳의 바람과 광활한 자연이 잠깐 힘듦을 잊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라는 듯 엄청난 강풍이 불어왔고 난 휘청거리며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3월이면 우기도 잦아들고 따뜻한 날씨 속에서 순례길을 걷게 될 줄 알았다. 1월 한라산 갈 때와 옷차림이 똑같았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걷는 중에도 땀이 나지 않고 한기만 느껴졌다. 웬만하면 수비리까지 완주하고 싶었으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마을로 들어가서 바를 찾았다.
마을 입구에 있는 바 근처로 다가가자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나오는 순례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토스트와 커피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며 부엔까미노를 외치고 떠났다. 그녀의 말에 약간의 기대감으로 간 바는 외관도 그렇고 노래 스타일도 그렇고 마초적이었다. 손님들도 우리네 술 취한 아저씨들 같이 목소리 큰 아저씨들 밖에 없어 살짝 겁을 먹었다. 들어가면서 사장님과 눈을 마주치자 소심하게 “올라” 하고 인사했다. 유럽에서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식당 직원이 메뉴를 물어본다길래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아들 같아 보이는 소년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사장님은 그 소년을 다그치기 시작했고, 소년은 구시렁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점점 더 눈치가 보였다. 숨 막히는 20분이 지나고 이건 아니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번역 앱에 ‘지금 주문 가능할까요?’를 써서 보여줬더니 사장님은 그러라는 듯이 몸짓으로 말했다. 이런 바에서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주문을 해도 되는 모양이었다. 오렌지주스와 또르띠아를 시켰는데 또르띠아가 나오지 않았다. 또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됐다. 아무래도 주문이 누락이 된 것 같은데 배도 별로 고프지 않고 손님도 점점 많아져 그냥 오렌지주스만 계산했다. 사장님에게 택시를 불러 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흔쾌히 대신 전화를 걸어주셨다. 덕분에 택시를 타고 수비리까지 갈 수 있었다. 오늘은 택시 안에서 실례를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미리 주머니에 넣어둔 구토용 봉투를 만지작 거렸다. 어제와는 달리 속이 괜찮아서 다행히 수비리까지 아무 탈 없이 도착했다. 택시비도 어제와는 다르게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했다.
오후 2시쯤 수비리에 도착했는데 그 사이 비가 더 억세 져서 미리 알아봤던 알베르게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예약자가 많았는지 빈 침대가 없었고 나는 다른 알베르게를 구해야 했다. 이동하면서 알베르게가 보일 때마다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나는 마지막 희망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공립 알베르게 신발장에는 신발이 두 켤레 밖에 없었다. 저렴한 공립 알베르게에 순례자가 이들뿐이라니. 침실을 슬쩍 보니 한 사람이 침낭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혹시 베드버그가 나오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지만 다시 빗속을 걷기는 싫어서 숙박 등록을 마쳤다. 불안과는 다르게 조리가 가능한 식당도 넓었고 화장실 상태도 좋았다. 그다지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잠잘 때는 히터를 틀어준다고 했다. 나는 알베르게 주인에게 짐 딜리버리가 가능한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요청했고 그는 대신 전화를 걸어주었다. 내일 아침 8시에 택시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짐을 풀었다.
쌀쌀해진 탓에 라면이 참을 수 없이 땡겨 비상용으로 가져온 라면 수프를 뜨거운 물에 타먹었다. 고작 3일 동안 매운 음식을 안 먹었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라면이 맵다고 느껴졌다. 자판기에서 구매한 파스타와 함께 먹었는데 밀가루 맛이 강하게 나서 또 속이 느글거렸다. 밥을 먹은 후 하루를 정리하고 쉬려고 하는데 한국인 순례자들끼리 있는 오픈 카톡에서 같이 밥을 먹자는 얘기가 나왔다. 친목도 다질 겸 나도 함께했다. 또래끼리 여럿이서 밥 먹는 건 대학교 이후 처음이라 다시 걱정 없이 살던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는 넓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코스 요리가 있는 곳이었다. 난 빠에야와 커틀릿, 디저트로는 쌀푸딩을 시켰다. 빠에야가 나왔고 오랜만에 쌀밥과 매콤한 음식을 먹으니 여태껏 느글거렸던 속이 싹 내려갔다. 감동의 빠에야를 먹고 커틀릿이 나왔는데 속에는 치즈와 하몽 같은 게 들어있는 최고의 맥주 안주였다. 맥주를 먹어 기분도 좋아지고 느글거리던 속도 내려가 한껏 들떠서 이야기를 나눴다. 내일 다 같이 팜플로냐에 가서 라면을 먹자는 얘기를 끝으로 우리는 각자 숙소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