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박중근 KEMP KOREA
Jan 10. 2021
하마터면 나쁜 리더가 될 뻔했다
silkworm_번데기
나의 어린 시절 간식거리는 떡볶이 만두가 전부였던 것 같다. 간혹 가다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몹시 이상하게 생긴 번데기 정도가 추가될 듯하다. 번데기는 사실 몹시 이상하게 생겼다. 과거와 달리 요즘 많은 이들에게는 혐오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외국인들에게는 말할 나위가 없겠다. 물론 중국인들이라면 예외가 되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 간식으로 즐겼던 번데기는 모두가 잘 알듯 누에나방 성체가 되기 전 상태이다. 주름이 잔득잡힌 완전함이 들어있지만 아직은 발현되지 않은 상태이다. 번데기 상태에서 고급 비단의 원사를 뽑기 때문에 영어로 silkworm이라고 부른다. 훨씬 근사해 보인다. 살아생전에 인간의 겉을 치장하기 위해 희생하고 죽어서 우리의 몸속의 영양분으로 희생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아쉽게도 우리는 성체가 된 상태를 실제로 본 기억이 없다. 갑자기 미안하다. ^^;;
현재 조직의 많은 리더들이 성체가 되기 전 번데기 상태를 거치게 된다. 좋은 리더가 되는 탈바꿈에 성공하는 리더가 있는가 하면 결국 번데기 상태에서 완성하지 못한 채 조직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아직 번데기 상태에 있음에도 자꾸만 주름을 잡고 있으면 주변의 사람들의 주름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성채를 향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함께하는 이들과 조직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앞서 번데기의 효용을 간단히 언급했다. 실크로 간식으로 이미 성채가 아닌 상태에서도 상당하다. 번데기의 주름은 어쩌면 상당히 이유 있는 주름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냐는 코믹한 표현이 생겨난 건지도.
성채가 되지 못한 번데기 리더들이 보여주는 행동들이 무엇일까? 멀리 물어보기 전에 리더를 자처했던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를 따르는 이에게 헛웃음을 보여준 행동들은 무엇이었나? 나는 그들에게 라테를 몇 잔이나 선물했을까? 휘핑크림은 얼마나 잔뜩 올려서 줬을까? 새삼 얼굴이 화끈해진다. 안 그래도 중년의 갱년기로 얼굴이 아침저녁으로 붉어지는데 말이다.
직장생활 6년 차에 팀장을 맡게 되면서 리더의 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됐었다. 말을 부드럽게 했다. 야근을 없앴다. 쓸데없이 엄청난 파일을 만들도록 요구하지 않았다. 함께 팀원들과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즐겼다. 실크를 뽑았던 것같다. 번지르르한 고급 원사가 그러하듯. 이런 행동들도 그리 많지 않은 시대였기에 스스로 착하고 좋은 리더라는 착각과 주름을 잡았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도 의미있지만 그들의 삶에 소중한 양분이 되는 번데기의 2번째 효용을 제공했는지에서 멈칫해진다.
아직도 어쩌면 아주 아주 초보단계의 리더십 정도에서 변태 하지 못한 채 머물러 버린 건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어렸던 팀장을 만날 수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남들의 눈에 보이는 멋져 보이는 나이스한 리더십이 전부가 아님을 말해줄까? 그렇다면 주름잡고 있던 15년전 나는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세상 최고라고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그 시절 박팀장은 자신을 더 채찍질하며 주변을 더 성장시켜나가는 리더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을까?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과 여러분에게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해답을 주지 않더라도 잘 된 질문 하나하나는 우리를 지금과 다른 곳으로 분명 데려갈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스쿠루지가 3가지 시제에서 자신을 완전히 다른 성채로 변화시킨 것처럼, 그때의 나는 아직도 성채가 되지 못한 나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깨달음을 갖게 될까? 이걸 현재 시점에서 해 낼 수 있을 방법은 없는 것인가? 너무 늦어버린 노년이 회환이 되지 않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