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정의
평소에 잘 쓰지 않지만 거래계약서를 쓸 때면 꼭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갑을병정 같은 한글자 단어가 그것이다. 주로 이해 당사자를 가리킬 때 의뢰를 주는 쪽을 갑, 외뢰를 받는 쪽을 을이라고 한다. 세속적 정의를 보면 돈을 주는 쪽을 갑, 반대편을 을이라고 칭한다. 자본주의에서 돈을 가진 쪽이 힘이 쎈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계약관계에 존재하는 갑을의 수직 관계가 조직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갑질이란 단어로 말이다. 힘을 가진 쪽이 힘이 없는 쪽을 괴롭히는 형태를 말한다. 상사가 권력을 이용해 부당하거나 비합리적인 지시를 하는 경우에 주로 쓰인다. 이 시점에서 영어 계약서는 갑을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닥터마틴 지사장 계약이나 외국 기업의 교육을 진행할 때도 계약서를 영어로 작성했서 경험이 있는데 거기에는 갑을이 party A, party B라고 되어있다. 여기에는 수직의 어떤 의미도 들어있지 않다. 한쪽이 돈을 주면 한쪽은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동등한 관계인 것이다.
한국의 조직은 사회만큼이나 큰 격변을 겪어왔다. 물론 사회의 민주화 진행대비 아직 갈길은 멀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갑질을 당하고 있다는 끊임없는 항변을 정치권은 노동법 개정을 통해 화답했다. 2019년7월에 발효된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도 어찌보면 이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을 듯하다. 사회적 통념으로 직급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는 상식적 접근을 바탕으로 갑질이 정의되고 있다. 부단히 증가세를 보이는 고발은 2023년말 기준 만건을 돌파했다. 시작 당시 136건이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성장세다. 경제나 회사 성장이 이렇다면 좋으련만 괴롭힘으로 고발한 건수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만건이면 직접적으로 2만명이 당사자이며 조직이 대부분 팀으로 구성된다는 가정하에 최소 10만명 이상이 이 소용돌이 속에서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는 것이다. 성과를 위해 매진해야 하는 조직이 갑질시비로 시달리는 것은 슬픈현실이다.
괴롬힘 고발의 급증이 일방적으로 상사들의 문제라고 오해를 하실 분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이는 상호작용의 결과기 때문에 단순히 한쪽으로 완벽히 기울어진 상황으로 볼 수는 없다. 갑질, 괴롭힘이라고 인사부를 찾고 노무사를 찾는 경우를 들어보면 이해가 되는 경우도 많지만 지나치게 본인 위주의 비합리적인 판단도 많이 보인다. 미팅을 하는데 기분이 나빴다,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다 등에서 심하게 개인적이라고 판단되는 것도 다분한 것이 문제다. 한국의 엠지들도 다양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이 법조항을 자신에게 유리한 칼날로 이용하려는 경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것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굳어 지는 것이 안타깝다. 일단 고발을 하면 인사부는 상사에게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는 확증편향이 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사들이 넘친다. 합리적인 지시조차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어디서 들어본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런 문제점의 출구는 무엇일까? 건설적이면서 행복한 관계가 주를 이루는 조직은 불가능할까? 필자가 70년대생이 운다란 책에서 핵심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뉴리더십이다. 90년대생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 위에 새로운 리더십을 장착하지 못하면 이 갈등은 절대 좁혀지지 않는 예각의 모습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소통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완전한 업그레이드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표현했던 과거 선배들 밑에서 성장한 현 조직의 리더들은 뉴리더십을 장착하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 물론 과거보다 부드럽게 말하려고 애쓰고, 화를 누르고, 선한 표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리더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고발의 건수가 입증하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2가지 뉴리더십 접근법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먼저 후배들이 주장하는 갑질을 좀 더 테크니컬하게, 즉 기술적 측면에서 해결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리더인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화법, 어투를 모두 모니터링, 피드백 받기를 바란다. 특정 직원에게 부탁을 하는 방법이 좋다. 내가 진행하는 미팅에서 평소에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좋은 성과가 있을 때 어떻게 하는지, 반대로 좋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내부 소통을 하고 있는지 모두를 일정기간 점검해 보길 바란다. 지난 6년 동안 리더분들을 코칭하면서 좋은 리더들도 자신의 말에 얼마나 날카로운 것들이 숨어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를 보게 된다.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는 화법, 누구야, 누구 또 이런 실수를 한거야 같은 말들이 대표적이다. 누구님은 몇 년차인데 아직 이러세요, 왜 번번히. 아무리 표정을 잘 지어도 날카로운 말들을 하면서 속시원해 하는 리더가 되지 않기를 당부한다. 나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전제를 깔고 직원을 발가벗기는 행위는 이제 갑질의 범주에 들어가고 있다.
더 나가 본질적 정의에만 머무르지 말고 생산적으로 갑질을 정의해 보길 바란다. 식당을 가서 가장 짜증이 나는 순간은 얼굴도 제대로 처다 보지 않고서 기다리세요, 잠시만요 라고 말하는 사장, 종업원들이 바로 갑질을 하는 것이다. 곧 응대하겠습니다. 곧 자리 만들어 드릴께요, 곧 가겠습니다 라는 멋진 말이 있는데도 말이다.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이 갑질이다. 식당에서 시선을 사무실로 옮겨보자 직원을 성장시킬 상황에 있는데도 방치하고 무관심하게 직무기술서에 적힌 일만 주고 받는 것, 이런 유통 거래적 리더십을 갑질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만이 갑질이 아니다. 당연히 해야될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조직의 갑질이다. 책을 읽지 않는 것도 중요한 갑질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발품 손품을 팔지 않는 것이 갑질이다. 왜냐면 새로운 지식, 상식, 경험을 쌓지 않아서 끊임없이 과거에 배운 추억을 팔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바로 갑질의 주요 영양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양분을 계속 빨아들이면 직원들의 창의적인 접근이 이해되지 않고 내가 아는 과거의 정답만이 답이라고 하는 답정너의 칭호를 얻게 되는 것이다.
3대 메이저 유통사의 4분기 실적 보고가 상당히 우울하다. 하지만 경기나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얼마 잡지도 않은 교육비에 먼저 손을 대는 것이 경영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갑질이다. 매출대책회의에 총력을 기울이기 보다 지금 당장 남은 한달이라도 어떻게 직원을 성장시킬지 내년에는 어떻게 직원들을 성장시킬지 대책회의를 마련하길 바란다. 어려운 경기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당부하는 바이다. 고도의 성장이 불가능해 진 현 세계 경제가 겪게 될 것은 어쩌면 계속해서 더 불확실하고 더 큰 거친 파도일 듯하다. 언제나 그렇듯 이를 이겨낼 유일한 수단은 과거의 영광을 만든 내가 아니라 여러분이 키워낸 인재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오늘 하루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