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속도, 각자의 전환점

강대리의 결핍

by 양지드림

회사 앞 골목, 유난히 불빛이 따뜻한 카페가 있었다.

김도훈은 강대리와 함께 그곳에 들어섰다. 사실 퇴근 후 둘이 단둘이 카페에 오는 건 처음이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강대리가 먼저 웃으며 말했다.

“도훈 씨, 저한테 관심이 많은 거 같아요.”

도훈은 피식 웃었다.

“아니 뭐… 관심이라기보다… 궁금하죠. 어떻게 동갑인데… 그 나이에 벌써 집 사고, 차 사고, 자산도 만들고… 사실 좀 의아했어요.”

말끝이 흐려졌다.

속마음은 이랬다.

‘부모님이 도와줬겠지. 아니면 운이 좋았거나.’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꺼내기엔 조금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강대리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그럼 오늘은 제가 왜 이렇게 살아야 했는지, 좀 길게 얘기해드릴까요?”

강대리는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말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과거를 더듬고 있었다.

“저는 자영업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어요. 집은 군포였고, 부모님은 중식집을 하셨죠.

근데 저를 주로 키워주신 건 할머니였어요. 부모님은 하루 종일 일하셔야 했으니까.”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가 저한테는 엄마 같았죠. 근데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할머니가 풍으로 쓰러지셨어요. 결국 요양병원에 들어가셨죠.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어요. 저는 그때 처음 봤어요. 부모님이 자기 부모를 부양하면서, 그걸 버거워하는 모습. 할머니를 사랑하는 건 알지만, 동시에 병원비가 집 살림을 얼마나 흔드는지도 느꼈죠.”

강대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깨달았어요. 가난은 마음을 시험에 들게 한다는 걸.

저는 그걸 겪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부모님한테 ‘이 학원 보내주세요’라는 말 한 번 해본 적도 없어요. 왜냐면 매일 부모님 입에서 ‘돈 없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중식집이 잘 될 땐 괜찮았어요. 근데 장사가 안 되면… 오히려 마이너스였어요.

배달 인건비, 전기세, 월세를 내면 남는 게 없죠. 특히 원재료값이 오르는데 매출은 떨어지면, 수입이 들쑥날쑥했어요.

저는 그런 집에서 컸어요.

부모님이 열심히 사셨던 건 맞는데… 그 ‘열심히’가 생활고를 없애주진 못하더라고요.”

도훈은 강대리의 말을 들으며, 어린 시절의 그 무력감이 어떤 건지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작은 결핍을 안고 살잖아요?

저한텐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가 결핍이었어요.

나는 언젠가 그런 부모가 되고 싶었어요. 그게 제 마음속 작은 십자가였을지 몰라요.

지켜야 할 무언가.

그래서 저는 ‘일정한 월급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강했어요.”

도훈이 물었다.

“그래서 대기업이 목표였어요?”

“네. 어릴 적에 보니까, 제가 아는 사람 중 조금 여유롭게 사는 집은 대부분 부모님이 대기업 다니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막연히 ‘나도 대기업 회사원’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강대리는 현실적이었다.

“근데 저는 고졸이잖아요. 대졸 공채는 안 되죠. 그래서 가능한 길을 다 찾아봤어요.

마침 시대적인 분위기가, 몇몇 대기업들이 고졸 채용을 늘리던 때였어요.

저한테는 그게 하나의 기회였죠.

그래서 산업기능요원, 기능사 자격증, 현장 경험… 뭐든 닥치는 대로 했어요.”

도훈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그때부터 이미… 재테크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네. 사실 회사 들어오고 나서도 ‘잘 사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하는 재테크 얘기는 귀가 솔깃했죠. 주식, 적금, 부동산… 뭐든.

특히 부동산 얘기 나오면 귀가 쫑긋했어요.

아마 그게 쌓였기 때문에, 20대 초반인데도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첫 투자가 부동산이었어요?”

“네. 원래는 무섭죠. 근데 제 기준에선, 그때가 기회였어요. 전세가율이 높았거든요.

사람들은 ‘너무 어려서 무리하는 거 아니냐’ 했지만…

저는 ‘지금 아니면 못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반대는 부모님이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확신했죠. 해야겠다.

“사랑하는 존재와 나에게 교훈을 주는 존재에 대한 분리가 필요해요“

도훈은 속으로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처음 가졌던 생각, ‘부모 도움 받았겠지’라는 그 가벼운 판단이 얼마나 얕았는지 깨달았다.

“저… 미안해요.”

“왜요?”

“그냥… 내가 많이 오해했네요.”

강대리는 웃었다.

“괜찮아요. 누구나 자기 속도가 있잖아요. 저는 조금 빨리 달릴 수밖에 없었고, 도훈 씨는 도훈 씨 속도가 있는 거죠.”

강대리는 고등학생 때부터 용돈이 항상 빠듯했다.

친구들은 주말마다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갔지만, 강대리는 그런 걸 자주 못했다.

“부모님이 생활고로 힘들다는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용돈 올려달라는 말을 해요.

그냥, 없는 대로 살았죠.”

그러다 어느 날, 강대리는 학교 도서관이 아닌, 집 근처 프랜차이즈 분식집으로 향했다.

“공부하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설거지와 홀 서빙을 했다.

손은 미끌거렸고, 손톱 밑에선 세제가 스며든 듯 얼얼했다.

그래도 하루 일당 2만 원이 손에 쥐어질 때, 그 돈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렇게 한 달쯤 됐을까.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분식집 사장님이 “강대리 아버님” 하고 인사를 했다.

순간 등골이 싸늘했다.

그날 밤, 아버지가 거실에서 불러 세웠다.

“너… 요즘 뭐 하냐?”

“공부했어요.”

“거짓말 하지 마라. 도서관은 무슨, 알바했다며.”

아버지의 목소리는 이미 화가 잔뜩 서려 있었다.

강대리는 고개를 숙였다.

“…그게, 제가 용돈이 부족해서…”

그 말을 끝까지 하지도 못했는데,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다.

“너 사람 참 작아지게 만든다!”

그 한마디가 강대리의 가슴을 후벼팠다.

거짓말을 한 걸 혼내는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는 듯했다.

“내가 너를 굶겼냐? 내가 너 용돈 안 줬다고 그렇게 나가서 일해야겠냐?”

“아빠, 맨날 돈 없다고 하잖아요. 어떻게 용돈 올려달라 해요. 그냥… 제가 알아서 번 거예요.”

“그래도 그렇지! 너 그렇게 나가서 일하면… 아버지가 뭐가 되냐.”

강대리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가난은 단순히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존심까지 건드린다는 걸.

그리고 그날 이후,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중에 돈이 있어도, 절대 이렇게 살지 않겠다.’

[시간이 흘러, 강대리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첫 월급을 받자마자, 그는 재테크 책과 부동산 카페에 파묻혔다.

그리고 2년 뒤, 20대 초반의 나이에 첫 부동산 계약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날은 2월 초, 차가운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계약서가 놓인 부동산 사무실은 난방이 빵빵했지만, 강대리의 손끝은 식어 있었다.

펜을 쥐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려는데, 중개사가 웃으며 말했다.

“젊은 나이에 대단하네. 보통 이 나이면 생각도 못하는데.”

강대리는 웃었지만 속으론 두려움이 스쳤다.

‘이게 잘못된 선택이면 어떡하지? 빚만 지는 거 아냐?’

그럼에도 마음 한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부모님 도움도, 로또 당첨도 아니었다.

계약서를 쓰고 나오는 길, 찬바람이 볼을 스쳤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게 나의 전환점이 될 거다.’]

며칠 후, 도훈은 그 이야기를 전부 들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강대리의 말 속에는 꾸며낸 티가 없었다.

도훈은 웃으며 말했다.

“도훈 씨, 저한테 관심이 많은 거 같아요.”

그 순간, 도훈은 이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처음 강대리를 봤을 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었다.

‘부모 도움 받았겠지. 고졸이 어떻게 벌써 집을 사.’

이제 그 생각이 얼마나 얕았는지 깨달았다.

며칠 뒤 회식에서, 신입사원이 물었다.

“강대리님, 고졸인데 벌써 집도 사고… 부모님이 좀 도와주셨나 봐요?”

도훈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니야. 강대리는 자기 힘으로 다 한 거야.

네가 모르는 속도가 있는 거지. 세상엔 그런 사람이 있어.”

강대리는 그 말을 들으며 술잔을 천천히 비웠다.

창밖에선 겨울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했다.


사람마다 속도는 다르다.


누군가는 18살에 달리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40살에 달린다.

중요한 건 그 속도가 빠르냐 느리냐가 아니라, 자신의 전환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사람의 속도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도훈은 그걸 강대리에게 배웠다.

keyword
이전 05화N잡러 강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