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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디 May 22. 2024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정약용과 셰익스피어 박지원

(호프맨 작가님의 6차시 강의를 듣고)

다산 정약용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귀양길에 올라서 1801년)

하담에 도착해서

이별할 때의 회포야 말해서 무엇하랴

언제 네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에 갔었는지?     

아무쪼록 곧 돌아가서 조용히 지내기 바란다.

나는 길 떠난 후 나날이 몸과 마음이 좋아지고 있다.     

그믐날은 죽산에서 잠을 자고

초하룻날에는 가흥에서 묵었고 이제 막

아버님 묘소에 도착해서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한바탕 뿌렸구나

귀양을 보내도 아버님 묘소가 있는 곳을 지나게 해 주시니     

어딘들 임금의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있겠느냐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떠나올 때 보니 너희 어머니 얼굴이 안되었더라

늘 잊지 말고 음식 대접과 약시중 잘 해드리거라

이만 줄인다. 

(초하루 날에야 유배지인 경상도 도착)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가면서 남긴 편지이다. 슬픔과 좌절이 느껴지면서도 부인과 아들들에 대한 걱정, 왕에 대한 충직한 신하로서의 모습도 보인다. 열린 사고로 정치가이자 과학자 실학자로서 당대 최고의 인물이었던 정약용을 조선의 권력자들은 그가 뜻을 펼칠 수 없게 유배를 보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류 삼류의 인물들은 일류의 인물들이 사회에서 활약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그들이 이류, 삼류의 인물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오늘 호프맨 작가님의 6차시 강의는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의 업적에 대한 것보다 남겨진 글에서 보여지는 인간적인 모습에 가슴이 아련해져 온다. 남인 출신으로 정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정약용은 과학자로서 거중기도 만들며 수원화성을 축조하는 등의 공을 세우고 기량을 펼쳤지만 이제 막 들어오기 시작한 천주교를 믿었다가 (나중에는 탈퇴함) 신유박해 사건으로 가장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해야 할 나이인 40에 기약 없는 유배를 떠나게 된다. 위에 시는 유배를 떠나면서 썼다. 정약용은 성인군자와 같은 인품을 가지려고 노력했고 강직한 학자였다. 목민심서를 써서 목민관(수령)으로서 백성을 어떤 마음과 이치로 다스려야 하는지 아주 세세하게 가르치고 있다. 정약용은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 하는 동안 500 여권의 책을 썼다. 한 달에 한 권씩 써도 18년간 216권인데 숫자상으로 따진다면 한 달에 두 권이상 책을 쓴 셈이다. 놀라운 일이다. 인간의 가능성이 무한대임을 정약용이 증명하고 있다. 개인으로서는 너무나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후대 사람들에게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최고의 귀감이 되고 이정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굶주림과 역병 그리고 지배자들에게 핍박당하다 비참하게 죽어간 백성들의 혼령이 안타까워 파리가 되어 천리를 날아 직접 임금에게 호소하라고 하는 절절함이 느껴진다. 정말 뛰어난 비유다.      


연암 박지원     


"한번 까딱하여 떨어지면 강이나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으며,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을 삼으니

이제야 내 마음은 한번 떨어질 것을

각오한 터이므로

귓속에 강물 소리가 없어지고

무릇 아홉 번 건너는 데도

걱정이 없어 마치 의자 위에 앉고

눕고 기거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

하룻밤에 아홉 강을 건너다 중에서 -    


학자답고 반듯한 정약용의 글과 확연히 다르게 벌써 자유분방하고 호방하며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듯한 기세가 느껴지는 글이다. 노론 가문 출신의 박지원은 어릴 때 우울증을 앓아 그것을 극복하려고 저자 거리에 나가 기이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신분에 얽매이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의 평생의 키워드는 우정과 여행이었다고 한다. 44세에 중국 청나라 황제의 생일잔치가 있었던 열하를 다녀오면서 기록한 열하일기가 그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는 청나라의 선진문물에 감탄하고 조선도 그들의 앞선 문명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타까운 것은 함께 간 수행원들은 소중화사상(청나라를 야만국이라 생각하고 명나라를 숭배하는)에 입각해, 임금에게 청나라에게는 배울 것이 없다고 아뢰었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위의 글처럼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역사관으로 개방적인 글을 썼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면서 닦여진 인격으로 평생에 걸쳐 양반전 호질 허생전등 명작을 남겼다. 홍국영의 칼날을 피해 피신했던 황해도 연암이라는 곳을 따서 호를 쓴 것이 특이하다.      

정약용은 조선이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했다고 한다. 정약용이 위대한 저서를 통해 민중을 가르치고 변화되길 바라는 섬세하고도 강직한 글을 썼다면, 박지원은 자유로운 기개로 풍자와 해학을 섞어 가며 소설로써 세상에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외침과 절규가 폐쇄적인 조선 사회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들의 삶은 시대라는 장벽도 있었지만 개인의 숙명 앞에서 어찌하지 못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위대한 점은 그런 숙명에 굴복하지 않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사명-백성을 위해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기고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글을 쓰고 등등 -에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살고 또 살았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의 가치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조망하는 데 있지 않을까. 공부할수록 인문학이 지닌 가치가 얼마나 대단하고 큰 가르침을 주는지 조금 알 듯하다.      


문득 이 두 인물의 사상과 책이 조선 사회를 바꾸고 르네상스를 일으켜 조선이 망하지 않고 빛나는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


#다산정약용 #연암박지원 #호프맨작가님인문학강의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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