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을 쓰려고 스토리를 기웃기웃한다. 넷플릭스에서 만든 이탈리아 영화 ‘칠드런스 트레인’(2024년)을 보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0년대 중반 이탈리아가 배경이고 남부에 사는 한 어머니가 힘든 결정을 내려 하나뿐인 아들을 북부로 보내는데, 그곳에서 아들은 가난을 벗어난 새로운 삶을 엿보게 된다.
8살 아메리고는 엄마랑 단둘이 살고 있다. 전쟁의 위험과 가난으로 궁핍한 삶을 사는 시대로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남부의 아이들을 그나마 살기 나은 북부의 위탁 가정으로 보냈던 실제 역사적 사실인 ‘행복열차’를 소재로 비올라 아르다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공산당원들의 지도하에 진행된 행복열차에 오른 아이들은 북부로 가게 되는데 그중에 주인공 아메리고도 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엄마는 살기 위해 어린 아들에게 넝마를 주워오게 하거나, 담배 만드는 일도 시킨다. 아메리고는 엄마와 떨어져 가는 게 싫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위해 기차에 태운다.
북부는 남부와 달리 경제적으로도 훨씬 낫고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면 귀 기울여 들어주고 믿어준다. 아메리고는 독신인 한 부인과 살게 되는데 점차 정이 들어 모자처럼 다정한 사이가 된다. 위탁 엄마의 오빠가 아메리고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하고 가르쳐 준다. 아메리고는 연주에 흥미를 갖게 되고 매일 연습하면서 연주자가 되는 꿈을 꾼다. 집에 있는 엄마가 그립지만 그곳에서는 아이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라서 가능성을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환경이라 행복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 보고 싶은 엄마를 찾아 위탁 엄마와 헤어져 집으로 왔지만 엄마는 생활이 더 궁핍해져 날카로워져 있고, 아메리고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화를 낸다. 위탁 엄마가 보내기로 한 편지를 눈 빠지게 기다리지만 엄마는 편지가 오지 않았다는 말 만한다. 살림에 한 푼이라도 보태야 한다며 어린 아메리고를 구두 수습공으로 보내고 바이올린은 전당포에 맡겨버린다. 마침내 위탁 엄마가 보낸 편지를 엄마가 하나도 찾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고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아메리고는 편지에 적힌 주소를 보고 머나먼 북부로 다시 혼자 몰래 기차를 타고 간다. 위탁 엄마와 감동적인 재회를 하고 거기서 자라 아메리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린계의 마에스트로가 된다. 연주 전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옛집을 찾는다. 낡은 침대 아래 전당포에 맡겼던 아메리고의 바이올린을 엄마는 다시 찾아놓았고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다. 엄마의 진심을 알고 아메리고는 눈물을 흘린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스토리에 급전개는 없고 어린 아메리고의 시선을 통해 사회와 환경에 물든 어른과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엄마는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환경이 녹록지 않고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아들을 위해 보냈다가 다시 돌아온 아들을 보니 너무 반갑지만 어쩐지 변한 거 같고 위탁 엄마 이야기를 많이 하니 샘도 난다. 한 푼이 아쉬운데 바이올린만 켜고 있어 화가 난다. 그러나 그 화가 결국 아들이 다시 위탁 엄마에게 가게 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다시 찾고 싶지만 아들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환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경우다. 엄마가 이해된다.
아들 입장에서는 어려도 생활전선에 뛰어들며 살다가, 어른들이 아이들이라고 무시하는 법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고, 하나하나 가르쳐 주고 꿈을 향해 갈 수 있게 해 주는 환경을 알게된다. 아! 이런 곳도 있구나. 주체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곳이다. 나 같아도 이런 환경을 택할 것이다.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전당포에 맡겼던 바이올린을 찾아와 준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며 슬픔이 밀려온다.
내가 아메리고의 엄마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함께 같이 살기만 한다고 사랑을 다하는 거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과 강요로 자녀를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깊은 인연으로 만난 가족이다. 결국 아들이 살고 싶은 대로 살게 해 준 엄마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 게 아닐까.
군대 간 엄마들이 가입하는 ‘더 캠프’ 앱에 자유 게시판을 보면 엄마들의 자잘하고 수많은 걱정들이 올라온다. 스무 살이 넘었어도 마냥 아이 같아 노심초사해서 그런 거 같다. 그런 엄마들의 걱정을 나무라는 엄마들의 글도 올라온다. 참 말도 많다. 그런 마음 표현하라고 만들어놓은 게 아닌가. 어제는 아들에게 앞으로 계속 편지를 보내려고 우표를 잔뜩 사러 갔는데 예전 아기자기한 그림 우표는 사라지고 바코드 찍힌 멋없는 걸로 바뀌어있었다. 새삼스럽다. 우표를 보니 문득 글을 모르는 아메리고의 엄마가 글을 배워서 아들에게 마음을 표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스토리가 다르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