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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사상자들
(Casualties of War)

전쟁의 최대 피해자 여성

by 쥬디

미국 영화

1989년 제작

감독:브라이언 드 팔마



“여성이 바로 전쟁의 최대 피해자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를 초월한 세계 공통의 현실이다.”

-신인간혁명 제17권 희망. 이께다 다이사쿠-


무거운 주제의 전쟁영화를 보았다. 얼마 전 관심 주제였던 영화 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으로 참여한 영화를 한편씩 찾아보는 중이었다. 영화 내용보다는 음악에 집중해서 봐왔다. 롤랑조페 감독의 ‘미션’을 다시 보며 음악이 반 이상을 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전쟁의 사상자들’은 내용이 워낙 강렬해서 음악이 잘 들리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여러 가지 사색을 하게 만든다. 특히 여성이 전쟁의 최대 피해자라는 말이 마음 깊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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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했다고 한다. 당시 뉴요커지의 다니엘 랭 기자가 최초로 공개했던 사건이다.

주인공 에릭슨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지 한 달도 안 된 신참 군인이다. 전투 중 베트콩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빠질 뻔한 걸 분대장인 토니 메서브 상사가 구해준다. 여기서 구해주지 않았으면 구덩이 아래에 있던 베트콩 군인에게 죽임을 당할뻔한다. 메서브의 친구인 브라운이 베트콩의 기습 공격으로 사망해 큰 충격에 빠진다. 베트남 시골마을 사람 어느 누가 베트콩과 손잡고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들이 발생하는 거에 부대원들은 공포와 당혹감을 느낀다. 점점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다. 이때 새로운 일등병 디아즈가 합류한다.


휴가까지 거부당한 메서브는 분노하며 부대원들을 이끌고 정찰을 나가면서 베트남 소녀를 납치하라 명한다. 에릭슨은 강하게 반대하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베트남 소녀 트란을 납치해 데리고 간다. 일등병 디아즈는 에릭슨에게 메서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게 도와달라 부탁하지만 갑자기 상사의 압력에 굴복하고 에릭슨만 빼고 나머지 네 사람은 트란을 데리고 다니며 끔찍하게 강간한다. 메서브는 에릭슨에게 강제로 같은 짓을 하라고 명하지만 에릭슨은 총을 겨누며 거부한다. 상명하복이 지배하는 군대에서 상사에게 거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메서브는 에릭슨이 이상한 인간이라고 몰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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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에릭슨은 트란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고 나머지 사람들은 베트콩 강 기지가 내려다보이는 철교 근처에 자리를 잡는다. 에릭슨은 가슴 아파하며 트란을 풀어주어 같이 달아나려다 들킨 채 둘 다 철교가 있는 쪽으로 가게 된다. 열감기에 걸린 트란이 기침을 하자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될까 봐 메서브는 트란을 죽이라고 한다. 베트콩과 총격전을 벌이던 중 칼에 찔린 트란이 도망치는 걸 도와주려는 에릭슨을 메서브가 총개머리판으로 쳐서 쓰러트린다. 메서브와 동료들은 결국 트란을 총으로 쏴 죽여 철교 아래 계곡으로 떨어지게 한다. 전투 후 에릭슨은 야전병원에서 깨어나 중대장과 대대장에게 이 심각한 사건을 폭로하지만 문제를 덮으려고만 한다. 그중 강간과 살인에 참여했던 클락은 문제 제기하려는 에릭슨을 몰래 죽이려고까지 한다. 에릭슨은 군목을 만나 이 모든 이야기를 하고 군목은 이를 보고하고 조사에 착수한다. 강간과 살인에 참여한 네 사람은 군사재판을 받는다.


에릭슨을 연기한 ‘마이클 제이 폭스’와 점점 전쟁의 더럽고 무서운 현실에 정신이 이상해져서 해서는 안될 짓을 벌이는 메서브를 연기한 ‘숀팬’의 연기가 너무 강렬하다. 베트남 전쟁을 ‘더러운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냉전 시대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리전을 치른 양상을 띠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기 나라 문제보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명분이 빈약하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너무 많이 발생했다. 열악한 상황에서 민간인 사이에 숨은 게릴라들을 찾아내야 해서 병사들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메서브가 이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군이 저지른 밀라이 학살이나 우리나라 군대가 개입되었던 하미마을, 퐁니, 퐁넛 마을 사례 같은 비극적인 사건들이 알려지면서 ‘더러운 전쟁’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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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분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민간인 사이에 숨어있는 적을 섬멸하기 위해 죄 없는 사람까지 희생시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메서브는 그냥 ‘미안하게 됐네’라고만 치부하면 된다고 말한다. 베트남의 특이한 전쟁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그렇게 몰아붙이고 에릭슨에게도 주입시키려 한다. 가장 친한 동료가 눈앞에서 죽고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설령 비인간적이더라도 무슨 짓을 해도 된다라는 쪽으로 메서브의 생각이 치닫는다. 그러나 에릭슨은 반대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오히려 모든 행동을 심사숙고하게 생각해서 해야 합니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생각을 한다. 극한 상황에서 튀어져 나오는 인간 본연의 잔인함, 군대라는 특성상 상사의 압력에 부합하는 거니 양심과 관계없다고 묵인하는 사람,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사람,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 전쟁 속에 또 다른 전쟁을 벌이는 사람. 그냥 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니 입 다물라고 하는 등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표출된다.



에릭슨과 메서브라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 구도가 아니다. 그리고 에릭슨은 이미 메서브에게 한차례 죽을 고비에서 도움을 받았다. 에릭슨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을 벌이는 메서브에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고 한다. 군대의 위계질서를 처음부터 무시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메서브는 상사라는 권력을 이용해 자기 마음대로 했고 무조건 따르지 않는 에릭슨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붙인다. 에릭슨은 베트남을 도우러 왔다고 생각하지만, 메서브는 그저 수렁 같은 전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있다가 고향으로 가는 것만이 목표다. 자신이 하는 짓이 양심에 관계된 건지 아닌지 관심도 없다. 그저 본능욕구와 생존욕구만 있을 뿐이다.



인간이 인간다울수 있는 건 동물처럼 본능에만 의지해 사는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어서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 모호해질 가능성은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감독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Casualties-사상자들이라는 뜻이 단순히 죽고 부상한 자들이라는 의미를 넘어 무수한 인명피해 즉 직접 전쟁과 관계없는 사람들도 전쟁이 일어나면 희생되는 참담한 현실을 담고 있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만큼 잔혹한 것은 없다. 전쟁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어리석은 지도자들에게 이끌리고 있는 국민만큼, 가련한 존재는 없다.’

-인간혁명 1권 여명, 이께다 다이사쿠-


잔혹하고 비참한 전쟁으로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 속에서도 양심은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 유사시에 신념이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지 깊이 사색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에릭슨이 친구에게 괴로워하며 묻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너라면 어떻게 했을 거야? 나는 그 여자를 구하기 위해 네 명의 동료를 죽였어야 했을까? 여자를 위해 같이 탈영해야 했을까? 너라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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