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소년이거나 소년이었던
"저건 영국, 저건 호주, 그 옆에는 독일, 그리고 튀르키예..."
부산 송도 케이블카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또랑또랑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한 소년이 케이블카 들어오는 위쪽으로 만국기를 장식해 놓은 것을 보며 나라별 국기를 맞추고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에 다부져 보이는 초등저학년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쉬지 않고 모든 국기의 나라이름을 줄줄 외고 있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소년은
"이런 거 아는 건 별거 아닌데..."
라고 말했다. 나와 소년과 소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다른 세 가족이 케이블카에 올랐다. 소년은 계속 입을 열었다.
"이번에 친구 OO이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다녀왔대요. 아주 부러워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너도 괌을 세 번 다녀왔잖아. 거기도 미국이야"
소년의 대답
"에이! 거긴 미국령이지 미국 본토는 아니잖아요"
미국령? 와 아직 어려 보이는데 그렇게 정확한 말을 하다니... 그때 일 때문에 미처 같이 오지 못한 엄마이야기가 나오면서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문자를 해보라고 했다. 소년은 즉시 문자를 날렸는데 엄마한테 문자로 답이 오지 않고 전화가 걸려오는 걸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내가 문자 하면 문자로 답하지 않고 꼭 전화를 걸어요. 이건 문자 하는 게 귀찮아서 그런 거예요. 전화가 쉬우니까"
풉! 솔직한 소년의 생각이 귀엽다. 쳐다보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대식구가 함께 1박 2일로 놀러 온 모양이다. 할머니와 동생인 이모할머니 그리고 딸, 딸의 아들과 조카 3명 총 7명이다. 그중 막내는 7살 정도의 소년이다. 오래전 유행했던 양배추머리 모양으로 곱슬 파마를 하고 빨간 나시를 입고 애교 많은 얼굴과 목소리를 갖고 있다.
"어엄마~ 나 심심해"
하며 이동 중인 여행버스 통로를 왔다 갔다 한다. 가이드가 한마디 하니까 볼멘소리하다가 캐리어 옆에 앉아 조금 얌전하게 가는 중에 버스가 갑자기 급정거하면서 캐리어가 그만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다. 소년의 얼굴에 금새 장난끼가 돌며 '까르르' 웃어댄다. 혹시 어른들이 머라 할까 봐
"내가 한 거 아냐"
하며 계속 웃는다. 그리곤 엄마한테 찰싹 달라붙어 장난을 치며 엄마를 귀찮게 한다. 그러자 앞에 있던 할머니의 한마디.
"네 엄마 내 딸이야. 왜 내 딸 귀찮게 해. 내 딸이라고"
눈웃음을 치지만 목소리는 일부러 혼내듯 말한다. 순간 소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겨우 목소리에 힘주며 하는 말이
"나도 동생 있어요"
풉! 이건 무슨 대화지? 아마도 소년의 머릿속에는 변명할 말을 찾았을 것이다. 그때 어려서 따라오지 못한 동생이 생각난 것이다. 순진한 소년의 대답에 웃음이 난다.
소년은 티브이 만화영화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유치원에 다녀오면 티브이 앞으로 간다. 뭔가를 열심히 본다. 까르륵 까르륵하길래 보니 엄마가 어릴 때 보던 '톰과 제리'였다. 와 세대를 넘어 오래도록 아이들을 웃기는 프로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밥을 먹으며 소년이 신나서 말한다.
"엄마! 오늘은 매일 골탕먹는 '톰과'가 제리를 골탕 먹였어요"
"응? '톰과'가?"
"네 '톰과'가요"
하하! 엄마는 한참 동안 웃었다. 아직 어린 소년이 톰 하고 제리라는 말을 이해 못 하고 그냥 톰의 이름이
'톰과' 인 줄 안 모양이다.
"그래 '톰과'한테도 그런 일이 있어야지"
엄마는 소년의 순진함이 마냥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