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은 무서워
코피 박사님이라니. 커피도 아니고. 맞다. 코에서 빨갛게 나는 코피. 버미는 코피가 수시로 터지는
‘코피 박사님’이었다. 어릴 때부터 버미는 손으로 코를 많이 파고 다녔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손가락은 늘 콧구멍에 들어가 있었다. 식탁에 앉아 밥 먹으려 할 때도 코를 후벼 혼났고 티브이를 볼 때도, 뭔가를 할 때도 코를 파서 코피가 자주 터졌다. 학교 가기 전에도 수시로 피가 나 지혈하느라 지각한 적도 많았다. 밖에서 지나가다 마주칠 때도 영락없이 코에 손이 가 있었다.
한 번은 네 살 때 코피가 나기 시작해 아무리 지혈해도 멈추지 않아 소아과를 데려갔는데 거기서도 폭포처럼 나서 의사가 엄청 당황하기도 했다. 코에 이상이 있어서 그런 건가 해서 이비인후과와 한의원도 많이 데리고 다녔다. 비염이다. 축농증 증세가 있다. 그런 정도의 진단명이 있었다. 코피에 좋다는 연근도 먹이고 최대한 코를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가습기도 빵빵하게 틀었지만 버미의 코피는 멈출 줄 몰랐다.
흰 옷들이 코피로 얼룩져 어느 순간부터 밝은 옷을 입히지 않았다. 주머니엔 손수건과 휴지가 늘 있었다. 코피 박사님이다. 손가락을 갖다 대지 않아야는 데 그게 안 됐다.
새빨간 코피가 터지더라도 손으로 그렇게 만진 건 무슨 이유일까.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버미를 그렇게 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자라면서 조금씩 줄어들었다. 대신 코피를 터트리는 일 말고 다른 버릇이 생겼다. 그러니까 그건 그냥 하나의 버릇이었던 것이다.
마치 수조에 들은 오징어가 벽에 가로막혀도 계속 뾰족한 머리를 갖다 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