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쥬디 Sep 17. 2024

행복학 개론

행복은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나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꽃 하나하나에 

그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꽃도 그 개성을 알아주면 기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기에서

                                                         영국의 대작가 기싱의 글-     

요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우리 사피엔스가 가진 특징들을 아주 예리하게 파헤치고 설명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한국인에게 주는 서문에서 한국 사회와 사람들에 대해 명확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엄청난 기술 발달과 혁신으로 GDP가 치솟은 만큼 OECD 국가 중 자살률 최고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능하지만 그걸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그는 어떤 강연에서 왜 사피엔스는 행복을 느끼는 게 어려운가라는 이야기에서 ‘기대치’라는 말을 꺼냈다.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와 기대치에서 인간은 행복보다는 불행을 더 건져내고 있다는 말을 강렬한 눈빛으로 외치고 있었다. 


사피엔스는 외적인 성장만을 바라며 인생의 막대한 시간과 돈을 써서 마침내 원하는 바를 충분히 이루었어도 만족해한다거나 감사하기보다는 또 다른 무엇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그 무엇도 사피엔스의 마음을 채워줄 수 없다. 비우려고는 하지 않고 끝없이 채우려는 욕망이 전차가 되어 폭주해 버리고 만다. 우리는 자기 마음도 때로는 어쩌지 못하면서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 친구 타인에게 무언가를 아주 쉽게 멋대로 기대한다. 가까울수록 기대치는 점점 커진다.

 ‘나는 너의 OO이니까. 이 정도는 들어주겠지.’ 상대가 ‘NO’를 하면 멋대로 서운해하고 화를 내고 비난하고 재차 삼차 멋대로 또 요구하고 기대한다. 싸움과 갈등이 일어난다. 화해를 해도  ‘나는 너의 OO이니까. 들어줄 수 있어야 해’라는 불씨는 여전히 남아, 두고두고 불행의 덫으로 작동된다. 둘 중 하나라도 더 지각 있는 사람이 봤을 때 이는 너무 말도 안 되는 유치한 상황이다. 제삼자가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사피엔스들은 이걸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 마치 수족관의 오징어가 벽이 있어도 세모 머리로 부딪혀가는 것처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는 수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가족을 지켜주는 튼튼한 집, 밝게 들어오는 태양,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 아이들, 가정을 지키는 아내, 성실한 남편, 건강한 두 발로 운동할 수 있는 체력,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말을 들어주는 좋은 우인, 등등 그러나 사피엔스의 특징은 갖고 있는 거보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 아침에 몸을 일으킬 때 비교와 기대치라는 두 그림자도 같이 일어나 발목을 잡아 끌어내리기 시작한다. 


‘OO은 오늘도 연락도 없네. 버르장머리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OO은 알아서 잘살고 있는데 갑자기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이 돼있다.

‘남들은 벌써 부를 저만큼 이뤄서 멀찍이 가는데 난 이게 뭐지. 내 노년은 어찌 되는 거야. OO은 돈을 이렇게나 많이 쓰고 다녀?’     

포커스를 타인에게 맞추고 멋대로 비교와 기대를 하며 널뛰기를 시작한다. 

비가 온다.

‘에이 우중충하게 비가 오는 거야 돌아다닐 때 귀찮게’

덥다

‘에이 이 무더위는 언제 끝나는 거야. 끝나긴 끝나는 거야?’


 얼굴에 웃음은 사라지고 불평불만 짜증 삼종 세트로 버무린 추악한 표정이 인상으로 자리 잡고 인생도 무미건조하게 흘러간다. 꼰대라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멀리해서 점점 외로워진다. 자존심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말과 행동으로 짜증이 이리저리 튀어나온다. 

‘아 누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을까?’     

안타깝지만 없다. 자신외에는.


사피엔스는 더 늦기 전에 배워야 한다. 

‘행복해지는 법’을. 사피엔스는 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을 배우는 것처럼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행복학 개론’을 개설하고 커리큘럼을 짜서 수시 체험학습을 해야 한다. 니체와 쇼펜하우어가 이런 말을 했다는 형식적 외우기 철학을 배우는 게 아니라 사피엔스의 특징을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를 배워야 한다. 

     


행복은 실감이다. 그리고 행복은 의지이다.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기대해서 손쉽게 얻어지는 것은 그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 행복이 자신의 의지로 쟁취한 게 아니므로. 진정한 행복은 강한 마음에서 핀다. 비교와 기대치를 떨쳐낼 수 있는 마음은 강한 마음이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강한 마음이다. ‘행복학’을 만들어 시스템화하고 금세 까먹는 사피엔스의 뇌와 마음 근육에 어떻게 하는 게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 사피엔스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명절이라고 저절로 행복한 게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사소한 거에도 감사의 마음을 느끼는 곳에 행복이 찾아오는 게 아닐까.      



‘진실한 행복의 꽃은 인내라는 대지에서 핀다. 인내 없는 행복은 덧없는 허영처럼 사라지고 만다’

-이께다 다이사쿠-               

작가의 이전글 어려움은 파도를 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