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원 사건
싱가포르 중학교 과정은 초등학교 졸업시험 성적에 따라 4개 유형의 과정으로 나뉜다. 4년짜리 express 과정, 노멀 아카데믹, 노멀 테크니컬, 그리고 가장 좋은 성적을 받은 그룹은 integrated program으로 진학해 시험 없이 6년 중등과정을 마치고 A레벨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은지는 이중 네 번째 과정 가장 좋은 성적을 받은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중학교에 올라오니 우수한 성적의 아이들과 더 치열하게 경쟁하며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인종은 더 다양해졌다. 아시아, 남아시아, 유럽과 미국 아이들까지 그야말로 인종공화국의 축소판인 셈이었다.
그 아이들과 경쟁 속에서도 순수한 우정을 조금씩 만들어갔다. 얼굴색과 상관없이 또래의 고민은 비슷했다. 점점 사춘기에 접어들어 부모의 간섭에 갈등하는 금발의 주근깨 영국소녀, 엄마의 신신당부로 수업시간에도 히잡을 두르고 있는 말레이시아 소녀, 은행 지점장 아버지가 있는 싱가포르 소녀 등과 쉬는 시간에 티브이 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이야기나 다른 반에 있는 키가 크고 잘생긴 남학생이야기나 어떤 선생님이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는다는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며 친해졌다. 은지는 이제 그런 이야기들을 영어로 맞장구치며 구사할 수 있었다. 완전하진 않지만 그들만큼 발음도 꽤 좋았다. 한참 감수성 풍부한 나이에 은지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차이를 인정하는 국제 감각을 익히는 소녀로 성장해 갔다. 그러면서도 은지는 소녀들이 시시콜콜한 일로 고민할 때 자신의 앞날을 더 많이 고민했다. 은지도 가끔은 무언가 답답하고 가슴속에서 불규칙한 심장박동이 마구 울릴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약해지려는 마음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적으로 믿어주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확실한 진로방향을 정해두어야 했다. 애초에 하버드를 가고 싶어 영어를 배우러 온 터라 언제까지 싱가포르에 있을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싱가포르 학교 시스템이 공부만 잘하면 아주 좋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면 싱가포르에 지사를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에 갈 수 있는 확실한 루트가 있었다. 물론 치열한 경쟁을 뚫어햐 하지만.
그리고 우선 싱가포르 사람들이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환경은 늘 깨끗하게 정리정돈이 잘되어있고 치안도 안전했다. 대학교에 가도 전 세계 인재들과 함께 나란히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은지는 점점 싱가포르가 좋아졌다. 낯설고 거대한 미국에 가서 다시 적응하고 뉴스에서 들리는 여러 차별이나 치안등의 문제를 보면 염려되는 부분이 많아 보였다. 현순도 그 점을 고민하고 있었다. 중2로 올라간 지 얼마 안 될 무렵 은지는 엄마에게 전화로 말했다.
“엄마. 나 그냥 싱가포르에서 대학까지 나와 취업할래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엄마도 은지 앞날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여기가 좋아요. 많이 적응했고 익숙해졌어요. 여기서 공부해서 미국 기업 들어가면 미국도 가볼 수 있고 좋을 거 같아요”
현순은 딸의 생각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우선적으로 치안을 생각하면 싱가포르에 있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엄마는 우리 딸 생각에 찬성이야”
“응 그럼 결정한 거다”
모녀의 대화는 언제나 담백했다. 그래도 되나? 잘 결정한 건가! 더 생각해 봐. 섣부른 거 아니니. 등의 망설이고 미적거리는 듯한 대화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은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적도 부근에 위치한 다민족이 모여사는 작은 나라인 싱가포르 소녀로 정착하게 되었다.
은지는 중국에서 온 추하라는 소녀와 친하게 지냈다. 둘은 방과 후 시내를 돌아다니며 간식을 사 먹거나 영화를 보았다. 전에 알던 룸메이트처럼 추하도 한류에 푹 빠진 소녀였다. 은지도 잘 모르는 한국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고 한국을 동경했다. 추하의 부모님은 중국에 있었고 은지처럼 싱가포르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단 추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추하는 멋쟁이였다. 방과 후 교복을 벗고 쇼핑센터에 가서 옷 사는 걸 좋아했다. 은지는 엄마가 왔을 때 사준 옷 몇 벌이 전부였지만 추하는 늘 옷을 바꿔 입었다. 중국에 있을 때 부모님이 엄격해 뭐든 제한하다가 혼자가 되면서 자유가 찾아오자 사고 싶고 먹고 싶은 거를 마음껏 누렸다. 그러나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은 한계가 있어 더 이상 쓸 돈이 없어지면 금방 우울해지고 신경질적이 되었다.
“아! 얼마 전 백화점에서 봐둔 화려한 원피스 사야 하는데”
“너 원피스 많잖아?”
“많기는! 네가 없는 거지. 내가 많은 게 아니고”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당연하지.”
추하는 조금씩 다른 애들한테 돈을 빌려 자기가 사고 싶은걸 사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드디어 남자친구가 생겼다면서 데이트도 하러 다니면서 치장에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 화장품이며 향수며 어린 은지가 보기에는 좀 과하다 싶은 행색을 하고 다녔다. 돈은 더 헤프게 쓰고 다녔고 친구들에게 빌린 돈 갚으라는 독촉도 받곤 했다. 은지는 추하가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일이 터지고 말았다. 추하가 선배한테까지 큰돈을 빌려 갚지 않자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비슷한 말까지 듣게 되었다. 추하는 울상이 되어 민지를 찾아왔다.
“은지야 나 어떡해. 언니들이 내일까지 돈 안 갚으면 우리 엄마아빠한테 다 일러버린대. 나 그럼 여기서 못 있고 중국으로 돌아가야 해. 난 몰라.”
은지는 울고불고하는 추하가 몹시 걱정되었다. 도와주고 싶었다. 은지는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돈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다른 은행에서는 미성년자라 계좌를 만들 수 없었지만 시티은행에서는 가능해 얼마 전 통장을 만들어 쓰지 않는 돈은 모아놓고 있었다. 금융의 중심 싱가포르에서 은지는 벌써 돈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 통장에 백 이십만 원 정도 있는 게 떠올랐다.
“얼마를 갚아야는데? 나 백만 원 정도는 빌려줄 수 있는데”
“헤?...”
오만가지 인상을 찌푸리며 울상이던 추하가 깜짝 놀라 은지를 쳐다봤다.
“그, 그래? 그럼 백만 원 빌려줘. 빌려줄 수 있지? 와 살았다. 은지야 와 역시 코리아 최고. 부처님 하느님 감사합니다. 은지는 나의 구세주다.”
추하는 소리를 질렀다.
이렇게 해서 은지는 거금 백만 원을 찾아 추하에게 빌려주었다. 그날 저녁 엄마와 통화하며 말했다.
“엄마. 나 친구에게 백만 원 빌려줬어.”
“...”
현순은 말을 하지 못했다. 만원이나 십만 원도 아니고 백만 원이라니. 노발대발해야 할 일이지만 딸을 믿었다. 믿고 싶었다. 그 돈이면 현순이 한 달간 잔업을 꼬박해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었지만 딸을 믿기로 했다. 혼자 고생하며 인생을 개척해 가는 딸이 누군가에게 빌려준 것이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현순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한마디만 했다.
“그랬구나. 그 친구가 그 돈이 절실했나 보구나. 알았어”
현순은 십여 년이 훨씬 지난 후에도 딸에게 그 돈을 받았니?라고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은지도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생각하니 빌려준 기억은 나는데 받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지 중국인 친구가 돈을 받으며
‘나 이제 살았다’
하는 표정만이 기억에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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