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싸게 만들고 미국이 싸게 소비했던 시대는 이제 안녕
많은 이들이 예상했듯이 미국의 대통령이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바뀌었지만, 미국의 중국에 대한 태도는 크게 변동이 없었습니다. 결국 2018년 본격화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단순히 경제적 다툼이 아닌 앞으로 세계의 헤게모니를 누가 잡고 가는지가 달린 패권 전쟁이라는 것이 분명해진 것이지요.
앞에서는 ‘기후 위기와 친환경 산업’을 이야기하다니 이제 또 갑자기 패권전쟁이라고? 이것과 우리나라의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는 것 (인플레이션)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라고 물어보실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러한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전쟁이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의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등소평 집권 이후 중국은 개방정책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하여 각종 공산품을 싸게 공급하는 세계의 공장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저성장 상황은 60대 이상의 분들에게는 굉장히 낯선 상황일 수 있습니다. 1970년대는 오일쇼크로 대변되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의 시대였거든요. 그런데 중국이 전 세계에 저렴한 물건을 대량으로 공급하게 되었고, 물건 가격이 낮아지면서 인플레이션 시대를 벗어나는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중국의 위상이 약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이 장에서 적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美中 패권 전쟁으로 지난 30여 년 간 유지된 글로벌 공급망이 변화를 겪게 된다면 우리나라 또한 많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수출 비중이 높고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큰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당장 KOSPI지수도 2018년 ~ 2019년 美中 무역전쟁 시기에 큰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의 장에서 말한 기후 변화와 함께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와 노동 시장에 큰 영향을 주게 될 본 이슈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1. 트럼프와 다르다. 노련한 바이든
- 경력 50년. 그냥 직업이 정치인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바이든 대통령을 친중파라고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 대한 바이든의 입장은 아래 몇 문장으로 정리가 가능합니다. 선거용 발언이라 치더라도 굉장히 과격해서 당시에도 조금 놀랐었는데요.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오히려 내가 선거라서 좀 신사적으로 말한 것이라는 것을 중국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Joe Biden Calls China’s Xi Jinping a ‘Thug’
시진핑은 조금도 민주적 자질을 갖고 있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는 수백만 명의 위구르족을 정치범수용소에 보낸 깡패(Thug)입니다. 지금 홍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이 미국이 그쪽 하늘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하면 우리는 B-1 폭격기를 보낼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후들후들) 미국은 중국이 반드시 국제 규범을 따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신인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빼고는 다 적이다! 이러면서 중국을 때리면서 EU도 패고, 일본도 건드리고 우리나라도 공격했지요. 그러다 보니 美中 무역분쟁에서 미국 내에서의 지지와는 별개로 효과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실제로 당시 중국과 EU는 경제 협력 분야에서는 이전보다 더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의 美中 분쟁은 외면으로는 무역 분야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도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을 하는 것에 별다른 고민이 없었지요.
하지만 정치 경력만 무려 50여 년에 가까운 바이든 대통령은 달랐습니다. 경제인 출신인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 대통령의 주특기는 외교 분야입니다. 그는 초선 시절 (당시 미국 나이로 30살이었는데, 이는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이었다고 합니다)부터 상원 외교위원회에 소속되어 헨리 키신저, 휴버트 험프리, 지미 카터 등 정계 거물들의 곁에서 격동기의 미국 현대사를 겪어 왔습니다. 또한 1990년대 코소보 사태에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장하는 등 미국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전통적 외교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동맹의 복원을 1순위로 두고 중국과의 전쟁에서 우군을 확보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EU와 손을 잡고 중국의 위구르 족에 대한 인권 문제를 공격했습니다. 쿼드 (Quad) 정상회의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싶어 하는 인도, 호주, 일본과 손을 잡았습니다. 4대 전략 산업 육성을 말하며 우리나라와 대만에게도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2021년 9월에는 미국, 영국, 호주가 손을 잡고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하는 Aukus 안보 동맹을 발족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한국이 미국의 최근접 첩보동맹인 Five Eyes에 가입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지요. 확실히 정교하고 더욱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의 영역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항목이 바로 바이든 대통령이 21년 2월 지시한 주요 4대 산업 공급망에 대한 조사 행정명령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1년 2월 국가안보위원회와 국가경제위원회에 반도체, 배터리, 희소광물 및 의약품의 supply chain을 100일 내로 작성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문제를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로 본 것입니다. 또한 경제 분야만이 아니라 안보위원회에도 지시를 했다는 것은 이 문제가 단순한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안보 전략과도 관계가 있는 이슈임을 명확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6월 8일 그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출처 : 한국무역협회 홈페이지 https://www.kita.net/main2/main.do)
① 반도체 : 미국 국가안보, 경제 경쟁력, 일상생활뿐 아니라 경제 (에너지, 헬스케어, 농업, 가전제품, 제조업, 국방, 교통운송 등) 모든 부문에 필수적 산업으로 반도체 생산력 상실은 장기적으로 미국 전체 산업 경쟁력을 위협할 것임. 수십 년간 지속된 반도체 생산의 해외 이전으로 미국의 반도체 생산 비중은 20년 전 대비 급감 (37% → 12%) 하였으며, 현재 대만에 대한 반도체 의존도가 매우 높음. 따라서 미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해야 하며, 기술 보호 조치, 국내 생산 및 R&D에 적극적 투자, 반도체 노동자 유입 여건 마련, 글로벌 공급망을 위한 동맹국의 참여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고 봄
② 배터리 : 미국은 첨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의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아 배터리 관련 비용이 상승하는 등 공급망 취약성에 노출. 세계 대용량 배터리 시장은 2030년이 되면 현재 대비 5~10배 확대될 것이고 미국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배터리 산업 투자 확대를 즉시 고려해야 함.
③ 희소광물 : 친환경 에너지 기술에 대한 장단기 수요 급증으로 필수 광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음. 중국은 정부 주도로 비시장적인 개입을 통해 국가 및 경제 안보에 필요한 필수 광물 확보에 적극적. 현재 중국의 광물 정제 능력 (refining capacity)은 세계적으로 월등하며 향후 미국은 이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심화될 우려가 있음. 이에 따라 미국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광물 공급망 확보를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방안을 모색해야 함
④ 의약품 : 코로나19 이후 의료제조 분야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최근 민간의 혁신과 연방정부 투자를 통해 의약품 공급망의 신속한 회복을 이룰 수 있었음. 그러나 의약품 제조시설의 약 87%가 해외에 있어 필수 의약품에 대한 공급망이 취약함
따라서 주요 의약품의 미국 내 생산, 첨단 배터리 관련 공급망 확보, 지속 가능한 국내외 중요 광물 생산 및 가공 투자,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을 통한 반도체 부족 문제 해결 등 즉각적인 공급망 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美 근로자와 혁신산업 지원, 과학 에너지 프로그램 육성 등 장기적인 정책을 취해야 함을 강조
결론적으로 미국은 앞으로 세계의 첨단 산업과 경제, 안보를 좌지우지할 주요 분야에 대하여 굉장히 취약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중국과의 경쟁을 위해 이들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럼 오래간만에 세계 지도를 보면서 고등학교 사회 시간으로 돌아가 봅시다.
왜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의 복원을 가장 최우선으로 한 것인지를 이 지도와 위의 주요 4대 산업 공급망에 대한 행정명령을 연결시켜 봅시다.
우선 Quad 4국인 미국, 일본, 인도, 호주는 중국을 동쪽, 남쪽, 남서쪽에서 포위하는 구도입니다. 중국과 감정이 매우 좋지 않으면서 첨단 산업과 뛰어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말도 잘 듣는 일본, 미국의 오랜 동맹국 (미국에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4개 국을 묶어서 일명 Five eyes라고 미국의 최우선 동맹국으로 간주합니다)이자 남중국해, 남태평양, 인도양을 모두 견제할 수 있는 호주, 세계 2위의 인구 대국으로 중국을 대신하는 세계의 공장 역할을 기대받고 있으며 핵무기도 가지고 있고 마침 중국과 매우 사이가 좋지 않은 인도까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비공식 안보회의체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기존 Quad를 뉴질랜드, 베트남 그리고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Quad + 로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주요 4대 산업 공급망에 대한 행정명령도 철저하게 대 중국 동맹 전략에 맞춰져 있습니다.
① 반도체 : 대한민국(삼성, SK), 대만(TSMC), 미국 반도체의 회복 vs 중국의 반도체 굴기
② 배터리 : 대한민국(LG, 삼성, SK) vs 중국(CATL)
③ 희소광물 : 미국, 호주 vs 중국
④ 의약품 : 미국, 인도, EU vs 중국, 러시아
이렇게 보니 우리나라가 미국의 미래 전략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반도체, 배터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선도적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이오산업도 국가와 여러 대기업에서 육성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총 4개 품목 중 3개 품목이 우리나라가 발을 걸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앞의 친환경 산업 chapter에서 언급했듯이 미국과 EU를 포함한 G7이 올해 회의에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저개발 국가에 대한 인프라 개발을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주요 4개 항목 중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의 경우 미국과 동맹국의 힘을 합치면 중국에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겠지만 희소광물의 경우는 쉽지가 않습니다. 이 분야에 대해 미국이 가지고 있는 Risk는 아래에서 조금 더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리쇼어링과 글로벌 법인세
- 도랑 치고 가재 잡고!
(1) 전쟁을 하는데 군수 공장이 죄다 나라 밖이면 불안하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은 중국과의 글로벌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세계 2차 대전 이후 글로벌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Pax Americana에 대한 도전을 뿌리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국 혼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자각하고 있고, 그 수단으로 동맹과의 협업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는 꽤나 불안할 법도 합니다. EU와 호주를 제외하고는 중요한 동맹국들이 모두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일본, 대만, 인도) 그리고 동남아시아가 중국의 영향력 안에 들어오게 되면 호주도 지근거리며, 중국이 만약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사이에 있는 말라카 해협을 장악하게 되면 당장 동아시아 주요 동맹국들의 무역로가 틀어 막히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 지역과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이 유명하지만 중국과도 꾸준히 치고받고 한 국가입니다. 최근 필리핀도 점점 미국 쪽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요.
그리고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여 최소한의 핵심 생산 시설은 미국에 확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2021년 올해만 해도 여러 번 백악관 회의에 불려 가고 있습니다.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 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에서 (다른 나라 기업 간의 소송인데!) 바이든 대통령이 개입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었지요. 미국의 반도체 업체인 인텔이 2000년대에 포기했던 Foundry 공정에 다시 투자하겠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내 관용차를 모두 전기차로 바꿀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최소한 미국 내에서 부품이든 완제품이든 절반 이상을 생산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현대차, 기아차 같은 완성차 업체가 미국에서 전기차 M/S를 확대하자면 미국에 공장을 증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국 노동자의 노조를 허용해야 하지요)
☞ 리쇼어링
기업이 해외로 진출했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고비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한 국가로 생산시설을 옮겼다가, 해당 국가에서도 임금 상승 등으로 인한 비용 문제에 직면하면서 다시 본국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한편, 국립국어원에서는 '리쇼어링'의 순화어로 '국내 복귀'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즉 미국은 그동안 고비용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로 진출했던 기업들을 미국 내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글로벌 기업들도 미국에 공장을 짓고 제품을 생산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자유주의형 자본주의 철학에 따라 기업들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의 정책을 취하지 않고 기업 간의 자유 경쟁을 권장하는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국가 주도로 각종 규제 철폐 및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 신산업을 육성하여 왔고, 미국도 이 상태로는 경쟁이 쉽지 않음을 느꼈나 봅니다. 반도체나 배터리의 경우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각종 보조금과 세금 혜택, 부지 등을 제공하겠다고 하고 있지요.
(2) 코로나와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 현상
그리고 이번의 코로나 사태로 리쇼어링의 필요성이 더 강해졌습니다. 코로나 초창기에는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미국에서 마스크 한 장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 돌 정도였습니다. 미국이 그동안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대다수의 저효율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고 금융과 핵심 설계, 연구 위주의 산업만 국내에 두다 보니 벌어진 사태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선진국들은 제조와 금융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선진국들은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제조 공장들을 죄다 해외로 빼내었고, 저렴한 생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제품을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코로나로 많은 국가들이 shut-down 되었고, 특히 선진국의 생산 시설이 위치한 개발 도상국들의 shut-down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물건을 만든다고 하여도 코로나로 물류의 지연이 발생하니 제시간에 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당장 항구가 코로나 확산으로 폐쇄되고 물류가 지연되면 교통 정체와 같이 지연이 쌓이게 되고, 짐을 가득 실은 컨테이너선이 바다를 떠돌게 되면서 점점 더 지연은 커져가고... 이것이 일시적인지 구조적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정밀하게 만들어 놓은 톱니바퀴가 작은 오류에도 멈추듯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이 만들어 놓은 글로벌 무역 질서 또한 균열이 가고 있습니다.
일본의 TOYOTA의 Just-in-Time 전략은 유명합니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의 부품을 이용하여 생산을 하여 불필요한 재고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지요.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에 균열이 가는 시점에서는 이러한 방식은 매우 비효율적으로 되었습니다. 당장 그렇게까지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 부족으로 2021년 완성차 업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예도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작년부터 올해까지 많은 글로벌 대기업들은 부품과 제품의 재고를 갖춰 놓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수요가 발생했고, 공급은 코로나로 인해 더 줄어드니 가격이 상승 = 즉 공급자 측면에서의 인플레이션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미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요동침에 따라 시장에서는 미국의 테이퍼링이 빠르게 될 것이다라는 예측이 고개를 들면서 국제 금융 시장이 같이 요동을 쳤었지요. 여하튼 이러한 공급망의 병목 현상 또한 각 선진국들이 리쇼어링을 고민하게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3) 조세 회피처? 이제는 쉽지 않을걸?
그리고 최근에 이러한 정책을 뒷받침하는 기념비적인 정책도 나왔습니다. 바로 ‘글로벌 최저 법인세’ 제도의 도입입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주장한 본 제도는 지난 7월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큰 환영을 받았으며, 아마도 2021년 하반기 G20 정상회의에서 정식 합의가 이뤄질 것 같습니다.
본 제도의 주요 내용은 글로벌 최저 법인세의 15% 하한선을 설정하고 다국적 기업들이 본사가 있는 국가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윤을 내는 국가에도 세금을 내도록 한다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요 경제 강국들은 현재 20%가 넘는 수준의 법인세율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대체 왜 15%라는 별 실효성이 없어 보이는 숫자를 내세웠을까요? 바로 12.5%라는 법인세율로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유럽 본사를 두고 있는 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 등을 목표로 한 것입니다. 현재 아일랜드에는 구글, 애플, 트위터, MS, 화이자 등 다수의 유명 글로벌 기업이 본사를 두고 낮은 법인세를 적용받고 있지요.
즉 각종 글로벌 기업들이 세금의 문제로 리쇼어링을 꺼리는 문제를 세금을 깎아줄 수는 없으니 (쓸 돈이 너무나도 많은데 올리면 올렸지 깎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세금도 같이 올려버리겠다. 어차피 다른 나라에 본사 둬도 미국에서 장사할 거면 미국에 세금을 내라!라는 식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예상외로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도 계속 개별 국가들에서 구글세 같은 세금 압박을 받느니 차라리 이런 식으로 일관성 있는 글로벌 법인세 체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입니다. 리쇼어링이 미국의 계획대로 되면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 최고의 소비처인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게 되고, 이것은 미국의 일자리를 증가시켜 정부의 지지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신자유주의에 따른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의 감소와 중산층의 붕괴에 있었다는 점에서 이 점은 굉장한 매력입니다.
더군다나 글로벌 최저 법인세 도입과 기업 매출 발생지에서 세금을 걷는 방식은 수출보다 수입과 내수 비중이 높은 미국 입장에서는 세수가 더욱 증대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글로벌 기업에서 걷는 세금을 다른 국가에 나눠줘야 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들 국가들은 많은 부분을 기존의 조세회피처로 돌려놓은 상황이었으니 크게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반면 대규모의 글로벌 기업들 (및 조세 회피처로 도망친 기업들 포함)이 미국 내에서 거두는 매출에 대한 세금을 걷을 수 있으니 제대로 정착만 된다면 정치적 부담이 큰 증세 카드를 최대한 아끼면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겠지요.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