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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구리팬더 Sep 29. 2021

정치와 Strong-Guy

-  돈을 푼다는 이야기밖에 들려오지 않는 시대의 인플레이션

'유동성을 줄일 수 없는 인플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는 요소들 중 세 번째 chapter입니다. 물론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은 경제의 범주에서 다루어지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이 상아탑에서 분리해 놓은 것처럼 딱딱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겠죠. 당연히 경제의 영역은 정치, 사회, 문화, 종교와 철학, 심리 등 다양한 사회의 각 영역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습니다. 


위의 각 분야 중 경제와 가장 친한 영역은 바로 정치입니다. 경제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줄인 말입니다. 이를 풀어쓰면 세상을 다스려 이끌면서(經世), 백성을 돕는다(濟民)는 의미가 됩니다. 단어의 어원만 놓고 봐도 경제라는 것이 정치와 동떨어져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겠지요.  


그동안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서 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용어인 '신자유주의' 또한 그러한 움직임이었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스태그플레이션, 정부 개입의 한계 등이 드러나면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영국의 대처 총리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기조가 1980년대부터 약 30년간 글로벌 대세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때는 큰 정부의 정부 실패, 관료주의, 과잉 규제 등 정치의 비효율성을 이유로 경제의 효율성을 위해 정치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경제와 정치가 이혼 도장을 찍은 것은 아니지만 별거 상태(4주 뒤에 뵈시죠)에 들어간 것과 비슷한 시기였지요.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효율성은 중국의 개방, 러시아의 붕괴 등 자본주의의 승리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는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세의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그 이후 정치와 경제는 잠시간의 별거 상태를 끝내고 다시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부부 사이로 돌아가게 된 것이지요. 


정치와 경제의 재결합은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아도 명확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맞아 주요 국가들이 취한 정책은 적극적 재정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책이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리를 최저한도에 가깝게 낮춰 놓고 심지어 (-) 금리를 택한 국가들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단순 금융 정책 만으로는 코로나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충분히 해결할 수 없었다는 공감대가 강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기업과 가계에 재정을 통한 엄청난 유동성을 공급하였습니다. 


앞에서 본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美中 패권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또한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힐 수밖에 없는 이슈입니다. 순수하게 경제적인 논리로만 가면 기업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이 되지 않는 친환경 전환에는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고, 생산 기지를 국내로 복귀시키려는 리쇼어링에도 굉장히 소극적일 수밖에 없겠지요. 



1. 큰 정부가 돌아오고 있다 

-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Strong-Guy


정치와 경제가 밀접하게 만나게 될수록, 카리스마형 정치인들이 나타나는 빈도가 높아지게 됩니다. 정치와 경제가 밀접해진다는 시기는 보통 통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무엇인가 문제가 발생하여 삐그덕 거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인 요순(堯舜) 시대에는 길가는 농민에게 우리 임금이 누구요?라고 물어보면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합니다. 


"배 부르고 등 따스한데 임금 이름을 알아서 뭐하나요?"


결국 경제에 정치가 개입해야 하는 상황은 배가 부르지 않고 등이 따습지 않은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단계에서 국민들은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카리스마형 지도자에 더 끌리게 되지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제화의 반작용에 따른 미국 블루칼라 계층의 분노가, 시진핑 주석은 급격한 개방 정책에 대한 중국의 성장통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패배 이후 러시아의 극심한 경제 문제가, 아베 전 총리의 등장은 잃어버린 20년으로 대변되는 일본의 장기적 경기 침체가 원인이었지요.


(우리 주변의 Strong-Guys / 출처 : 구글 이미지)


이들 카리스마형 정치인이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기 영합적 정책을 편다는 것과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내부의 결속을 다진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적으로 선포하면서 미국의 일자리를 회복하는 것을 기치로 걸었습니다. 멕시코 장벽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반 이민 정책을 실시하였지요. 중국의 시진핑 주석 또한 마찬가지로 THAAD갈등, 남중국해, 홍콩, 대만 문제 등에서 강력한 대외 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빅 테크,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2의 문화 대혁명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최근의 정책을 통해 서구화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내부적으로는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경제 정책을 펼쳤고, 외부적으로는 우리나라에 대한 강력한 수출규제를 2019년부터 실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의 질서였던 "세계화(Globalization)"를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자유 무역과 국가 간 이동, 금융시장의 개방,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물리적인 국경의 장벽을 넘는 새로운 산업의 물결 등이 대표적인 세계화의 모습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관세 장벽, 리쇼어링, 이민 통제, 빅 테크 및 플랫폼 기업 규제 등으로 대표되는 Strong-Guy 들의 등장은 곧 반세계화를 의미한다고 보아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지난 30년은 세계화의 시대였다. / 출처 : PIXABAY)


앞에서 몇 번 다룬 내용이지만 중국이 개방 후 저렴한 노동력을 통해 세계의 공장으로 작동하면서 글로벌 경제는 인플레이션의 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의 <디플레이션> 관련 항목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은 전체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통해 기존의 기업들을 대신하여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세계화 추세가 바뀐다는 것은 곧 세계가 이전처럼 저렴한 가격에 많은 물건을 공급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새로운 인플레이션 시대를 열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긴축은 인기가 없습니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방대한 영토와 수많은 국민들을 통합해야 했고, 정치 체계의 변화를 지지해줄 수 있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하 각종 인기영합적 정책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부적으로 로마인들을 위한 각종 경제 개혁과 복지 혜택을 늘렸고 외부적으로는 게르만족과의 전쟁을 통해 로마의 자존심을 높이고 단결을 강화하고자 하였지요.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2대 황제는 티베리우스 황제는 초대 황제의 각종 정책에 따른 비용의 처리에 머리를 아파해야 했습니다. 그는 과감하게 각종 복지 정책을 축소하고 (국가가 개최하는 검투사나 마차 경기를 줄인다거나 황제가 나눠주는 보너스를 줄이거나) 세수를 확충하였으며, 게르마니아 (현재의 독일)에서 철수함으로써 국방비도 감축했습니다. 물론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를 로마 제국의 내실을 다진 훌륭한 황제라고 평가했지만, 당시 로마인들의 불만은 엄청나게 높았지요. 티베리우스 황제가 죽은 뒤 로마인들은 "티베리우스의 시체를 테베레 강 (로마 시내를 흐르는 강)에 던져 버려라!"라고 하면서 축제를 벌였습니다. 


아무래도 인간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보다, 가지고 있던 것이 없어졌을 때 더 큰 상실감과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한 Strong-Guy들이 정치적 권력을 얻게 된 이유가 각종 인기영합적 정책과 외부의 적을 통한 내부 통합이었다면 그들이 이 달콤한 정책의 유혹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겠지요. 그리고 만약 이들을 반대하는 정치 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책을 뒤엎기에는 굉장히 힘이 듭니다. 사실 미국과 일본의 정치 교체도 코로나 사태라는 특수한 이벤트가 있어서 가능했지, 통상적인 상황 같았다면 더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 이것은 시대의 산물이다. 

- 단순 포퓰리즘으로 치부할 것인가?


(1) 급격한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


이들을 단순하게 대중 영합적 정책을 펴는 포퓰리스트로 폄하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현대 시대의 정치인들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포퓰리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포퓰리즘이 마냥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만, 국민들의 지지와 선거 제도를 통해 유지되는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포퓰리즘은 그 사회가 반드시 가지는 속성일 것입니다. 고대에 민주정치, 공화정치를 실현했던 그리스나 로마의 경우에도 수백 년을 민중당과 귀족당이 여러 정책들로 힘겨루기를 했었지요. 


(그라쿠스 형제 : 포퓰리스트? 시대의 선구자? / 출처 : 구글 이미지)


지난 1900년대 후반 및 2000년대 초반을 지배했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Globalization)는 많은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만만치 않은 부작용을 가져왔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이 바로 양극화 문제겠지요. 세계화를 통한 무역 자유화, 금융시장 개방 등을 통해 전 세계의 부가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역 자유화를 통해 인건비 등이 저렴한 개발 도상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수입되어 오는 상황에서는 선진국의 동일한 산업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생산 공장들은 해외로 나가게 되고, 선진국의 내부에는 금융과 글로벌 기업의 본사 및 연구소, 그리고 그들을 고객으로 하는 서비스업종 등만 남게 되었습니다.


금융과 글로벌 기업의 본사 등은 그 국가 내에서 반 독점적 지위를 구축하고 해외의 저렴한 생산력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비스 산업의 경우 전문적인 지식과 역량을 요하지 않는 업종이 많아 전반적으로 제조업 대비 종사자 간 경쟁이 치열하고 진입 장벽이 낮은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유 경쟁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특히 이들은 세계화의 영향으로 늘어나게 된 이민자들과도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말하곤 하는 중산층의 몰락이 세계화를 통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듯이 부는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이 있는 곳으로 움직입니다. 금융시장 개방을 통해 외국의 자금들이 우리나라에 쉽게 들어오게 된 것은 좋은데, 반대로 더 좋은 시장이 보이면 단기간에도 쉽게 빠져나가게 되어 버렸습니다. 경제 기초 체력이 약한 개발 도상국일수록 빠른 자금의 이동에 더욱 취약해져 버렸고, 출렁이는 파도가 취약 계층의 피해와 양극화 심화를 가져왔습니다. 


결국 정치가 다시 경제와 결합하게 된 것은 단순한 포퓰리즘으로 치부하고 말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급격한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시대의 산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2011년 미국에서 일어난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2016년의 브렉시트, 2017년의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2018년의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 등. 이런 사건들은 결국 지금의 시대가 품고 있는 상처를 더 잘 드러내 줬던 사건들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2) 우리 주변에서 쉽게 예를 들 수 있는 사례들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당장 우리 주변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찾아보겠습니다. 주 5일제의 도입으로 여행, 레저, 숙박  산업 등 관련 산업은 upgrade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항공사와 여행사에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 준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는 냉전 체계의 종식이라는 정치적 이벤트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저임금제도는 노동 시장과 임금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산업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중요한 제도로 작용해 왔습니다.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경제와 관련된 공약들입니다. 


그만큼 기존 산업의 위기와 새로운 산업의 기회는 정치, 그중에서도 정책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내년 대통령 선거 공약 중 일각에서는 주 4일제 근무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만약에 주 4일제가 정책으로 된다면 역시 주 5일제 때와 마찬가지로 각종 내수 산업이 수혜를 받을 것입니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집의 중요성은 더 강해질 것이며, 주요 오피스 근처의 식당이나 상업 시설은 피해를 받겠지요. 대선 테마주를 사려면 정치인 테마주가 아니라 정책 테마주를 사라고들 합니다. 누가 누구랑 동향이니, 동창이니, 성씨가 같다거나 하는 이유로 주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당선이 유력해 보이는 후보들의 경제 정책과 공약들을 꼼꼼하게 분석한다면, 대선 테마주 또한 훌륭한 투자 방법이 될 것입니다. 



3. 양 극단이 아닌 정교한 줄타기가 필요

- 오른손은 돈을 풀면서 왼손은 주머니를 조이고 있다


모순적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코로나 위기 사태 대응을 위해 재난 지원금을 배포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은행이 자산 시장의 과열과 양극화를 대응하기 위하여 기준 금리를 인상하였지요. 오른손으로는 돈을 풀면서 왼손으로는 주머니를 조이는 격입니다. 물론 정부와 한국은행은 긴급한 재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돈을 풀면서도, 그 돈이 자산 시장으로는 최대한 흘러가지 않도록 신경을 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순되는 목표를 모두 잡는 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상황은 계속될 것입니다. 앞의 chapter에서 다룬 친 환경 정책으로의 전환은 기존의 많은 산업을 좌초시키고 많은 이들에게 일자리의 상실을 강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패권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특히 우리나라 같이 원료를 수입한 후 그것을 가공하는 국가에게는 꽤나 큰 시련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리쇼어링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많은 제조업 일자리가 국내로 복귀해서 좋아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앞에서 다룬 것처럼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꽤나 높은 비율로 리쇼어링 대신 미국, EU 등 선진국으로의 진출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chapter에서 다룰 AI와 자동화 기술의 발달이 이를 뒷받침할 것입니다.


2018년 프랑스는 친환경 정책으로의 전환을 명목으로 유류세를 인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프랑스 내부에 쌓여 있는 양극화와 긴축에 대한 피로감이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폭발하게 되었고, 이것이 프랑스를 뜨겁게 달군 노란 조끼 시위로 확산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가지고 시작한다고 하여도 그로 인해 피해를 받는 쪽의 입장을 섬세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정책이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드러내 준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 사태에서 공공의 이익인 확산 방지와 방역을 위해 자영업자 분들에게 많은 피해를 감수하게 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조금 더 섬세한 정책이 진행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일입니다. 


자본주의의 폭주와 세계화에 대한 정치의 반격이 시대의 산물이라고 하여 그것을 무한정 옹호할 수만은 없습니다. 세계화에 따른 자유 무역과 자본 시장의 개방을 무한정 방치할 수는 없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 것처럼 고립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저소득층이 고통을 받는 연료비 급등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지만, 다시 화석연료를 활성화시킬 수도 없고요. 대기업이 부를 독점하는 것은 막아야 하겠지만, 그들이 해외로 산업을 이전하면 더 큰 피해로 돌아옵니다. 이민자들을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지만, 보편적 인권 또한 우리가 지켜야 하는 가치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세계화는 굉장히 효율적인 체계입니다. 자본이 있는 선진국에서는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이 저렴한 개발 도상국에 투자를 함으로써, 자국에 투자를 하는 것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재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선진국의 국민들은 이러한 저렴한 재화를 부담 없이 소비할 수 있었고요. 개발 도상국 또한 산업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선진국의 제조 공장을 유치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진국은 제조 공장이 국외 이전된 후 남는 인력과 시간과 자금을 통해 서비스업을 고도화하였습니다. 같은 서비스업으로 분류한다고 하여도 단순 노무적 서비스업과 컴퓨터, 인터넷,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을 기반으로 하는 빅 테크, 플랫폼 기업은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른 산업이겠지요. 그 영향력에 대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서비스업의 진화가 산업화 이후 세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지요.


즉 지금까지의 흐름이 여러 문제를 초래했다고 하여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지금과 같이 물리적인 국경의 의미가 없이 인터넷 망을 통해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다른 나라에 쉽게 침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요.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특별한 원자재 자원도 없고 인구가 5천만 명 수준으로 내수만으로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 나라는 필연적으로 개방 경제를 지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양 극단의 중간에 놓여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양쪽 입장을 아슬하게 하게 조정할 수 있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영역일 것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순간 현재의 우리 체제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한쪽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자본이, 한쪽은 눈앞의 이익만 보는 무분별한 폭주가 입을 벌리고 있군요. 



4.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 

- 메르켈 총리와 BTS


앞으로도 우리나라 정부와 한국은행은 유동성 공급의 필요성과 유동성 공급의 부작용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 더욱 확실해졌듯 지금은 큰 정부의 시대이며, 정치가 경제에 더욱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성도, 가능성도 높아진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긴축의 정부보다는 부양의 정부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아직 유동성의 시대가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Strong-Guy 들을 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이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세상에 부드럽고 약한 것으로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지만, 견고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능히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지요. 이솝 우화에서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부드러운 햇빛이었습니다. 


(16년의 시대를 끝내는 메르켈 총리 / 출처 : 구글 이미지)


EU의 리더 국가인 독일을 이끌고 있는 메르켈 총리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부시,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까지 4명의 미국 대통령이 바뀌는 16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일을 이끌면서도 아직도 독일 국민들에게 폭넓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는 아마 정계 은퇴를 하실 것 같네요) 강하게 나가야 할 때는 강하게 나가기도 하지만 반대파의 정책도 절충해서 포용하고 다른 나라를 대할 때도 극단적으로 한쪽 편을 드는 경우가 잘 없는 정치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본 다른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그렇게 튀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2000년대 이후 유럽을 강타한 극우 세력의 열풍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상황이며, 경제 측면에서도 늙은 유럽이라는 편견을 깨고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으로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의 '공동 부유' 정책을 두고 시진핑 주석이 미국 형태의 자본주의가 아닌 독일 형태의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우리나라에서 이분의 리더십에 주목하는 경우는 적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 뜬금없이 들리겠지만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글로벌 그룹인 BTS의 성공 요인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BTS의 인기 요인은 위와 같은 Strong-Guy 들에 대한 피곤함 때문이 아닐지 생각을 해 봅니다. 일단 위의 분들은 꽤나 마초적 성향을 지니신 분들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푸틴 대통령도 심심하면 웃통을 까고 얼음 강에서 수영을 하는 등 불곰 같은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보면 지금 시대에 맞는 이미지 기는 한데, 문제는 계속 접하면 꽤나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BTS로 대표되는 우리의 K-Pop 스타들은 슬림한 style에 깔끔하고 섬세한 외모그리고 이성을 향한 애정과 사랑 그리고 존중을 속삭이는 Sweet Guy 들이었지요. 그리고 이들이 단순히 귀엽고 여린 소년스러운 이미지로만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칼군무에 파워풀한 댄스로 무장하고 나타났으니 남자인 저도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앞에서 메르켈 총리가 마냥 부드럽기만 한 인물이었다면 장기간 강대국인 독일을 이끌어 나갈 수는 없었겠지요. 단-짠, 아니 부드러움에 바탕을 두고 필요할 때 강한 모습을 보이는 이런 모습이 매일 뉴스에 얼굴을 비치고 우리 머리를 아프게 하는 강한 남자들과 대비되면서, 우리의 마음에 안식처를 제공해 준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 이번 chapter는 여기서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총 3개의 주제로 <유동성을 줄일 수 없는 인플레이션> 요인을 검토해 보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미국의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 예고 등을 보고 유동성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바뀐 것은 정책일 뿐입니다. 정책은 상황이 바뀌면 또 언제든 다시 바뀔 수 있는 것이지, 물리 법칙처럼 불변의 법칙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줄이는 것은 금융을 통한 유동성 공급일 뿐입니다. 당장 우리나라도 재난 지원금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가계에 유동성을 공급하였으며, 각종 정책을 통한 유동성 공급 계획은 선거가 다가와서 그런지 점점 늘어가고만 있습니다. 미국 또한 가계에 직접적으로 공급하는 급여 보전 정책은 곧 종료가 됩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최종적으로는 4조$ (공화당의 반대로 100% 유지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를 목표로 하는 대규모의 인프라 투자 법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다가오는 동계 올림픽과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을 생각하면 마냥 긴축 정책을 밀어붙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동성 공급이 버블을 더욱 키우고 통제 불능의 경제 위기로 달려갈 우려를 많은 이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차례는 인플레이션과 반대 방향에 있는 디플레이션, 그것도 <유동성을 풀어도 답이 없는 디플레이션>에 관한 몇 가지 주제를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극단으로 달릴 수 있는 인플레이션에 집중하여 우려를 할 필요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요소도 균형 있게 검토해 본다면, 이쪽 말도 일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정치가 되었든 경제가 되었든 극단은 해로운 것일 테니까요. 


그럼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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