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이클의 바닥에서 실적 부진과 함께 이 기업은 고 PER 주식이니 좋지 않다고 말하며 저점에서 매도한다.
- 실적보다 먼저 움직이는 주가 특성을 이해 못 하고 반등을 주는 초기에 매도한다.
- 싸이클이 최고도에 달한 시점에서 실적이 좋고 저 PER 주식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고점에서 매수한다.
이것을 보고 그렇다면 왜 싸이클 투자자는 다음 싸이클을 기다리지 못하고 손실을 보는가?라는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업이 싸이클 산업에 속한 기업이라는 것을 모르고 주식투자를 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재무제표만 보고 투자하게 되면 싸이클 기업의 재무상태가 한창 좋은 고점에 투자를 하고, 왜 재무가 이렇게 좋은데 주가가 떨어지는가? 분명 주식이 저평가라는 생각에 물타기 + 강제 장투가 돼버리는 경우가 꽤나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업 중 싸이클 기업의 비중이 높다 보니 대기업 주식 = 재무도 좋고 안전자산이라는 생각을 가진 투자자들이 꽤나 많은 듯합니다)
여하튼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싸이클 기업 투자자가 다음 싸이클까지 버티지 못하고 손실을 보는 경우는 아래 3가지 정도를 추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싸이클의 주기와 투자자의 주기가 맞지 않는다.
물론 주식은 여유자금으로 하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격언이지만, 현실적으로 개인 투자자에게 주식에 충분히 투자할 만한 여유자금의 규모는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여유자금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앞으로 은퇴 시까지 계속 여유로운 자금인지, 몇 년 지나면 용처가 생길 자금인지, 아니면 몇 달의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자금인지는 각 투자자별로 상이할 것입니다.
그런데 싸이클 기업의 주기는 산업별로 각자 상이합니다. 대표적인 싸이클 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D램)를 필두로, 화학/건설/조선/철강/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입니다.
예를 들어 D램의 싸이클을 좌우하는 전방산업인 PC의 교체 주기는 3년~5년, Mobile은 1년~3년입니다. 서버와 네트워크를 신규 증설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교체만 따지면 그 주기는 더욱 장기일 것입니다. 건설산업 같은 경우 국내 아파트 시장의 업-다운 기본 싸이클은 일반적으로 6년 정도라고 합니다. 조선산업 같은 경우 배의 건조-폐기는 20년 이상의 장기 싸이클이며, 화학 같은 경우는 제품에 따라 싸이클 주기가 워낙 다양할 것입니다. 특이하게 엔터테인먼트 같은 경우 주력 그룹의 복귀 (몇 달 단위), 신작 게임의 출시 등이 싸이클이 되다 보니 다른 산업에 비하면 싸이클은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겠지요.
그래서 어떤 싸이클 기업은 충분히 다음 차례를 기다릴 수 있는 반면, 다른 싸이클 기업은 한 투자자가 느긋하게 다음 싸이클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도 길다는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몇 년은 말할 것도 없고 몇 달의 싸이클이라고 해도 어떤 투자자에게는 너무 긴 시간일 수도 있을 것이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산업의 주기와 투자자의 주기가 맞지 않는다면 장기투자가 매우 어려워질 것입니다.
2. 공급 과잉의 문제
일반적인 싸이클 기업의 싸이클을 결정하는 것은 경기입니다. 복잡한 경기 요인을 최대한 압축적으로 설명해 보면 결국 수요와 공급이 되겠지요. 기업의 이익을 결정하는 것을 단순하게 따지면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서 오는 P X Q (P(price, 가격), Q(quantity, 수량))가 될 것입니다.
다만 경기나 유행에 따른 수요의 변화는 기업이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공급의 조절을 통해 가격과 수량에 영향력을 주고자 합니다. 다만 문제는 당연히 이러한 공급을 기업들 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당연히 이런 부분은 담합의 문제도 있으며, 서로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게 행동하려는 죄수의 딜레마를 가져오게 됩니다) 언제나 공급 과잉의 문제는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번 정부 이전의 정상적인 건설 산업의 경우 경기가 좋을 때는 각 건설사들이 앞다투어 대량으로 물량을 공급합니다. 그리고 대량 분양한 물량이 공급 과잉이 되면서 싸이클이 다운되게 되지요. 또한 화학 산업 같은 경우 일반적인 공업 기반이 갖춰진 곳에서는 진입 장벽이 크게 높은 산업은 아니다 보니, 툭하면 생산능력 증설 = 공급과잉 = 주가 피크아웃의 이슈가 나오게 됩니다.
이런 공급 과잉이 오면 기업이 자체적으로 공급을 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을 다니면서 각 계열사, 부서, 조직 전체를 볼 수 있는 위치에서 보면 언제나 생산 부서의 내년도 목표는 생산량 증가 + 비용 절감입니다. 판매 부서는 무조건 많이 팔겠다를 기본으로 깔고 가고요. 어느 정도 시장이 독과점되어 있지 않은 바에야, 내가 스스로 M/S를 줄인다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그 기업의 구성원 입장에서도 그렇고 굉장히 어려운 모험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공급 과잉으로 한번 다운 싸이클을 겪게 되면 또 버티지 못한 (가격 경쟁력이 약하거나, 특별한 Hidden Card가 없다거나) 하는 기업들이 무너지고, 또 그렇게 되면 공급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가격 상승 = 다음 싸이클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살아남은 기업들은 그 수혜를 독차지해서 더 많이 성장하게 되지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공급 부분에 진입 장벽이 생기게 된다면, 싸이클의 진폭이 줄어들고 점점 싸이클 기업이 성장형 기업으로 변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식 투자자들은 이런 기업을 잘 잡으면 매우 만족스러운 수익을 거둘 수 있겠지요)
하지만 치열한 공급 과잉에서 내가 가진 기업이 살아남을 것인가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당장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70%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장악하고 있지만, 이는 수년에 걸친 치킨게임과 엄청난 자금 투자를 거친 뒤였습니다. 당장 그 당시만 해도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위치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공급 과잉이 되었을 때 내가 가진 싸이클 기업이 다음 싸이클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순간 그 투자자는 다음 싸이클을 버틸 힘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
3. 돌발 변수
싸이클 기업은 당연히 외부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경기가 좋을 때 좋고, 경기가 나쁠 때 나쁜 산업이라는 것이지요. 어떤 기업이 이제 바닥을 치고 올라갈 타이밍인데 마침 그때 생각하지 않았던 외부 변수 (이러한 변수는 경제적인 변수 외에도 정치, 사회적인 변수도 있을 것입니다)가 발생해서 그 싸이클을 통으로 건너뛰어 버린다면 투자자에게는 엄청난 손실로 돌아올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건설 산업의 경우 재건축 주기는 30년~40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원래라면 지금 정도 시점에 80년대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선 강남권 및 1기 신도시의 영향으로 빅-싸이클이 왔어야 했던 시기이긴 했습니다. 다만 현 정부의 규제로 공급 싸이클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보니 해당 산업은 몇 년 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른 산업에도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고, 그래서 싸이클의 순환을 기다리지 못하는 투자자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변수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환경 규제로 노후선박의 폐선이 증가하게 된다면 조선업의 신규 건조 싸이클은 조금 더 일찍 돌아올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의료용 제품이나 야외 활동용 섬유 등을 만드는 회사들의 주가는 불과 1년 정도 사이에 5배~10배 이상 상승하였습니다. 기존에 예상하지 못했던 빅-싸이클이 돌발적으로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돌발적인 악재도, 돌발적인 호재도 예상이 어려운 것입니다. 특히 싸이클의 바닥 - 상승까지의 진폭이 큰 싸이클 기업일수록 한 번의 싸이클을 건너뛴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났을 때 싸이클의 성격 자체가 변할 위험도 있고요. 전형적으로 먹을 수 있을 때 먹지 못하면 굶는 것이다 보니 타이밍의 영향력이 성장형 기업보다 크고, 그만큼 Risk도 높아질 수밖에요.
[KOSPI의 성격 변화를 꿈꾸어 보자]
이상으로 싸이클 기업에 대한 몇 가지 추정을 해 보았는데, 산업별/기업별로 어떤 내용은 들어 맞고 어떤 내용은 딱히 해당되지 않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제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문제도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한국의 KOSPI 지수가 일반적으로 PER를 낮게 받는 것에는 이런 영향도 있을 것 같습니다. PER을 높게 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이익의 일관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시가총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형 기업들 중 싸이클 기업의 비중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즉 대외 변수에 따라 실적의 예상이 힘들고, 실적과 주가의 비례성이 약한 것은 산업 특성의 한계가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KOSPI 시총 상위를 차지하는 기업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NAVER, 카카오 같은 기업이 시총 상위에 올라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주력으로 가지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D램) 또한
공급은 거의 독과점으로 제한되어 있으면서,
수요는 각종 신산업 (플랫폼 기업, 자율주행차, AR/VR/메타버스, Smart-Factory와 사물인터넷 등)의 발전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이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신수요 증가가 예상됩니다.
(수요가 증가하는데 공급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면 뭐다? 가격 상승입니다)
즉 중장기적으로 보면 점점 싸이클형 기업이 아닌 성장형 기업이 시총 상위를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증시의 Value-Up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살짝 하며 이번 글을 마무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