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 단상 (1)
안녕하십니까. 너구리팬더입니다. 글을 쓸 정도의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기도 했고, 과연 이 글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전쟁이란 가벼운 글로 담기에는 너무도 무겁고 슬픈 주제이니까요. 하지만 어쩌면 이 전쟁은 나중에 돌이켜보면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으로 평가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기에 감히 몇 가지를 글로 옮겨 보고자 합니다.
본격적인 글을 쓰기에 앞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고 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이 전쟁이 조금이라도 빠르게 종전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냉정하게 손익을 따지고 향후의 일에 주판을 튕기는 것은 전쟁이 주는 고통 앞에서는 너무나도 하찮은 것이니까요.
#1. 저는 키이우에 남을 것입니다.
- 배경과 경과. 그 속의 반전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은 짧은 글로 적기는 복잡하지만, 2013년 유로마이단 혁명에 따른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로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의 서구화 움직임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희망하는 구소련의 부활 움직임을 큰 원인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이 전쟁이 근년 들어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 사건, 동부 우크라이나의 친 러시아 세력과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내전 등 군사적 충돌은 몇 년간 계속되어 왔습니다.
어쨌든 러시아는 2022년 2월 동계올림픽이 끝난 2월 24일 전면적인 침공을 시작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자타공인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2위의 군사대국이자,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군사력도 세계 20위권이며 경제력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수위를 다투는 나리입니다. 당연히 전쟁을 우려하는 세계 각지의 시각도, 전쟁의 당사자인 양국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생각하고 있었지요. 특히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 (Kiev)는 러시아의 동맹국인 벨라루스와의 국경지대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바, 대부분의 군사 전문가들은 개전 이틀 만에 러시아가 제공권을 장악하고 3일이면 키이우가 함락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K벨
하지만 모든 전망이 무색하게도 우크라이나는 3주가 넘는 기간 동안 러시아의 침공을 결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습니다. 세계 2위의 군사력이 무색하게 보급과 종합 전술 능력에서 군사 전문가들이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러시아의 무능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러한 러시아의 무능을 드러낸 것은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대항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힘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겠지요.
좋은 저녁입니다, 여러분.
당대표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기에 있습니다.
시미할 총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포돌랴크 고문(대통령 자문기구 소속)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군이 여기에 있고 시민들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우리의 수호자들에게 영광을! 우리의 영웅들에게 영광을!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전쟁 전 많은 이들이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무능을 놀림거리로 삼았습니다. 전쟁이 나면 당장 러시아에 겁을 먹고 항복하거나 해외로 도망갈 것이라는 주장도 많았지요. 하지만 전쟁 다음날인 2월 25일 그는 키이우 시내에서 자신의 내각들과 함께 부당한 러시아의 침략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당장 2021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그동안 미국으로부터 받았던 엄청난 군사 원조에도 불구하고 어이없이 탈레반에게 무너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지도자는 국민들을 버려두고 엄청난 돈을 챙겨 해외로 도피하였습니다. 그리고 왜 싸워야 하는지, 누구를 믿고 싸워야 하는지를 잃어버린 아프가니스탄의 정부군은 그대로 와해되었지요.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탈레반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한 러시아의 대군 앞에서도 최전선이 된 수도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포기하지 않으니 군대와 국민들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세계 주요 국가와 국민의 응원 (또는 호의적인 중립) 및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요. 그리고 전쟁이 시작된 지 3주가 지난 지금도 키이우는 위대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2. 신냉전 시대.
- 가속화할 것인가? 엎을 것인가?
중국의 성장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미국의 혼미는 이제는 과거의 단어인 줄 알았던 '냉전'이라는 용어를 다시 우리들에게 꺼내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 냉전은 단순하게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개념의 전쟁을 넘어 2022년 현재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이라는 물리적인 형태의 충돌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쉽게 무너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푸틴 대통령의 야망이 구소련의 부활이라면 그다음은 폴란드, 발트 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이나 몰도바, 루마니아, 헝가리 등 발칸반도의 국가들이 타깃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붙어 있는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도 위험을 느끼게 되겠지요. 설마 하니 다시 베를린을 동서로 가르는 것까지 가지야 않겠지만요.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뉴스인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침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서방 국가들이 우왕좌왕 대응한다면 중국이 올해 하반기 대만을 무력 병합할 계획이었다는 뉴스도 보도되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선전은 분열되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충우돌하던 서방국가들을 뭉치게 하였습니다. 다음 선거를 장담할 수 없었던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과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치솓았고, 러시아의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아 경제 제재를 망설이던 독일 또한 적극적인 제재 동참 및 군비 강화 (독일의 경제력을 생각하면 출혈을 각오한다면 세계 수위권의 군사력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에 나섰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주판을 튕구던 유럽의 중립국가들도 EU와 NATO로 대변되는 서유럽 질서 편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지요.
또한 미국은 이 기회에 러시아의 손발을 자르겠다는 마음인지, 철천지 원수인 이란과의 핵협상이나 베네수엘라의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것도 고려 중입니다. 러시아가 믿고 있는 중국 또한 막상 고전하는 러시아의 상황 및 거의 일방적인 국제 여론의 눈치를 보며 러시아 지원에 뜸을 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러시아의 정치 체제는 견제 권력이 없는 1인 지배자이며, 핵무기라는 세계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무기를 가진 그들이 쉽게 무릎을 꿇을 것이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중국 또한 러시아와 자신들은 다르다는 생각에 전쟁의 방아쇠를 당길지도 모르지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제1세계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크라이나가 수도와 주요 지역을 지키는 데 성공한다면? 그들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냈다는 자부심과 전후 서방의 원조에 힘입어 친서방 정책을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애초 우크라이나 지방은 세계 굴지의 곡창지역이며, 방대한 영토와 자원을 가진 잠재력이 뛰어난 국가입니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 러시아와 중국 등은 그동안 제2세계 및 제3세계 국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뢰를 크게 상실할 가능성이 높으며, 일대일로 정책 등 중국이 공을 들인 (그리고 미국의 입장에서는 신냉전을 가져오게 한 트리거가 된) 중국몽을 꽤 오랜 기간 밀처놔야 할지도 모르지요.
결국 어떻게 보면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은 신냉전을 가속화하는 불행한 사건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신냉전 구도를 불완전한 상태에서 깨뜨릴지도 모르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가능성도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민족의 개념이 바뀔지도?
- 같은 DNA가 아닌 같은 가치의 공유
사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민족적 구성은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모태인 모스크바 공국이 키이우 공국에서 비롯되기도 하였고, 구 소련 시절 양국은 같은 국가로 묶이기도 하였지요. 슬라브 민족 계통의 국가라 서로 간 혼인관계도 빈번합니다. (부모 중 한 명이 우크라이나인, 한 명이 러시아인인 사례도 많고 어지간한 경우 조부모, 증조부모 세대까지 간다면 인척관계가 너무 흔한 경우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푸틴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러시아군이 진격하게 되면 같은 민족 (특히 경제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인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러시아군을 환영하거나 최소한 적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즉 군사 훈련을 조금 과격하게 하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전쟁을 시작했을지도 모르지요. 묘하게 엉성한 러시아 군대의 움직임의 원인이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앞의 배경에서 설명하였듯이 우크라이나는 2013년 국민들의 선택으로 친 러시아 정부를 몰아내고 친 서방 정책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친 서방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결국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이 러시아가 아닌 서방의 가치관을 선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17년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한 외신에서 다뤘던 인상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쩌면 민족적인 의미에서 통일을 바라는 마지막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즉 분단이 70여 년 지속된 현 상황에서 민족적인 기준에서 단일 국가를 이뤄야 한다는 개념은 세대가 지날수록 점점 얕아져 가고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특히 그 같은 민족이 우리와 다른 가치관과 체계 하에서 수십 년을 단절되어 지낸 상태라면 더더욱이요.
물론 과거의 냉전 시대 또한 제1세계, 제2세계라는 표현과 같이 정치, 경제 체계가 상이한 세력권의 분쟁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소련의 몰락과 중국의 개방 이후 적어도 경제의 분야에서는 '자본주의'라는 것이 세계의 주된 헤게모니로 자리 잡게 되었고, 정치 체계가 조금 상이하더라도 돈의 힘 앞에서는 어느 정도 다들 타협을 하는 시대가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을 계기로 잊혀 가던 정치 헤게모니가 영향을 주는 시대, 가치관이 다른 국가와의 공존에 대하여 각국(정부만이 아니라 국민의 단계도 포함하여)이 고민을 하게 되는 시기가 올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손실과 출혈을 용인하는 단계까지 오게 된다면 역시 글로벌 무역과 경제의 영역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4. 선택적 연민과 분노
- 사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긴 하다.
다수의 여론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쪽이지만 꽤나 불편한 시선도 존재합니다. (물론 이 시선이 러시아를 옹호하는 개념은 아닙니다만) 사실 세계 각국의 전쟁과 내전은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역시 무고한 민간인들의 생명이 더 빠르게, 더 많이 사라지고 있고요. 그런데 그들의 고통과 아픔은 우크라이나만큼의 관심을 받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얀마 국민정부는 군사독재 치하의 미얀마 국민 또한 우크라이나인과 같은 고통을 받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개입을 요청하기도 하였고,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난민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시리아 난민들은 배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본 전쟁에 대해 보이는 분노와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연민이 "그들은 우리와 같이 맥도날드를 먹고 넷플릭스를 시청하며, 아이폰을 사용하는 사람들" 이기 때문에 보이는 선택적 연민과 분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쩌면 인간의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진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면 지구인들은 그깟 피부 색깔과 그깟 종교, 국가, 정치적 가치관을 단숨에 뛰어넘어 'We are the World'를 부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이란 상대적으로 자신과 유사한 쪽과 다른 쪽을 본능적으로 구별하려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억지로 변명을 해 보자면 현실적으로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의 전쟁과 내전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다른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굳이 진지한 관심을 가진다 한들 그것은 어쩌면 그 전쟁과 내전이 자신의 지갑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에 대한 걱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본 전쟁의 경우 앞에서 다룬 것과 같이 그 전쟁의 결과가 곧 다른 나라로 영향을 주게 되며, 나에게 실질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세계 2위의 군사대국이 벌이는 전쟁이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와닿는 위협의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감안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변명에 지나지 않겠지요. 꽤나 속이 쓰린 또 다른 이번 전쟁의 단면입니다.
#5. (1) 편을 마무리하며
- 글로벌 경제의 측면에서도 주목할 점이 많은 전쟁
일단 이번 편은 이 정도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2) 편은 본 전쟁이 함의하는 글로벌 경제의 변화에 대하여 다뤄볼까 합니다. 물론 전쟁에 따라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락 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의 여파로 에그플레이션이 고민이 되며, (당연하게도) 방위산업의 성장이라는 유쾌하지 않은 결과가 보이는 등 표면적인 경제적 여파는 쉽게 도출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도 다루겠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이번 전쟁이 촉발할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 인플레이션과 리쇼어링 - 기계화와 자동화에 대한 내용도 엮어서 적어볼까 합니다. 작년에 제가 만들었던 브런치 북 내용과 꽤나 겹칠 것 같기는 하지만, 꽤 중요한 내용이 될 것 같아 중요 내용 위주로 한번 다시 Remind를 해봐야 할 듯합니다.
[사실 2021년에 적었던 아래 브런치 북의 내용에서 큰 틀이 달라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redpandainvest
개인적으로도 회사일로도 꽤나 바쁜 시기라 아슬아슬하게 틈을 내어 글을 적는지라, 바로 내일 적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여하튼 다음 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