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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수 Jan 09. 2023

학폭을 걱정하는 아빠의 마음


초등학생 때 동급생들로부터 심한 폭행에 시달리며 받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격투기를 수련한 청년이 출연한 방송을 보았다. 더이상 샌드백이 아니라 주먹이라고 추성훈이 칭찬할 정도니 실력은 더 말할 게 없었다. 내가 주목한 건 육체적으로 아주 강해진 청년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말할 때마다 일그러지는 표정이었다. 지독한 괴로움과 아픔이 내게도 사무치게 전해질 정도로 얼굴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학폭을 포함해 어린 시절 겪었던 폭력이 사람의 일생에 엄청난 상흔을 남긴다는 걸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곧 초등학교 3학년생으로 올라가는 딸 가온이에게도 이따금씩 이유 없이 괴롭히는 녀석이 있단다. 덩치가 큰 사내새끼인데 힘이 워낙 좋아 툭 밀어도 상대가 나자빠진다고, 자기한테도 그랬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욕을 하거나 괜히 와서 놀리고 간다고도 했다. 두렵겠지만 대담하게 그놈의 잘못을 지적하고, 폭행을 하면 곧 태권도 2품 딸 실력으로 응징하되 결국 힘으로 밀리더라도 팔이라도 깨물면서 끝까지 저항하라고 일러주었다. 아닌 척 하겠지만 그놈 마음에 두려움이 반드시 생길 거고 그래야 함부로 널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덧붙이면서.


사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내 처방이 요새 아이들에게도 먹힐지, 괜히 가온이에게 심적 부담만 주는 건 아닐지, 실제로 맞섰다가 크게 다치는 건 아닐지, '일진'이란 말 자체가 없던 시절 학폭에도 시달려 보지 않은 주제에 아직 학교 생활이 9년 남은 아이가 맞닥뜨려야 할 현실을 너무 낭만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다만 아빠로서 자식에게 부당한 폭력 앞에서 무기력해 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응하는 용기를 알려주고 싶었다. 어떤식으로든 살아가며 상처를 받게 되겠지만 매사 원천적인 무기력함 때문에 포기하게 되면, 여전히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있지만 꾸준한 격투기 수련으로 상처를 극복 중인 저 청년의 의지를 본받을 수조차 없을 거 아닌가.


태권도장 말고 격투기 체육관을 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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