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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겨울의 선물, 12년만의 아들과의 만남

by Selly 정

2012년,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겨울이면 어김없이 한 사람이 떠오른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포근했던 그 품, 여드름 송글송글 올라오던 16살 소년. 지금쯤 어디선가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들을 돌보고 있을 둘째 아들.

파리 센강변을 걷다 보면 겨울 풍경이 유난히 아름답다. 앙발리드 다리 위로 석양이 질 무렵, 얼어붙은 강물 위로 주황빛이 반짝인다. 에펠탑 철골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 햇살, 몽마르트르 언덕을 하얗게 뒤덮은 첫눈... 파리의 겨울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다.

하지만 아름다움 뒤에는 언제나 시린 그리움이 숨어 있다. 마치 흰 눈 아래 얼어붙은 땅처럼, 가슴 한편엔 차갑게 응어리진 기억 하나가 자리한다. 아무리 햇살이 따사로워도, 아무리 풍경이 아름다워도, 겨울만 오면 12년 전 그날로 되돌아간다.

2012년, 그해 겨울은 모든 것이 급박하게 흘러갔다. 내전의 그림자가 우리 가족이 머물던 해외 도시를 뒤덮었고, 선택의 여지 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총성, 거리 곳곳에 드리운 긴장감, 하루가 다르게 텅 비어가는 슈퍼마켓 진열대.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남편은 그곳에 남았다. 일이 있었고, 책임이 있었고,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결국 중학생 두 아이 손을 잡고 혼자 인천공항에 내렸다. 낯설었다. 모국인데도, 아니 모국이기 때문에 더 낯설었다. 해외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에게 한국은 방학 때 잠깐 들르는 할머니 집일 뿐이었다.

둘째는 중3이었지만, 한국 교육 제도는 그를 다시 중2로 되돌려놓았다. 마치 시간을 되감듯, 아들은 한 해를 더 살아야 했다. 처음 등교하던 날 아침, 교복을 입은 아들의 어깨가 유난히 작아 보였다. 익숙지 않은 한국어 사투리, 다른 교과서, 낯선 친구들. 모든 것이 아들에게는 외국이었다.

"엄마, 여기선 다들 나보다 어린데 말을 놓네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씁쓸하게 웃으며 던진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하지만 아이는 강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강했다. 서먹했던 교실, 낯선 또래들 사이에서 아들은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뿌리내렸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웃음이 돌아왔다. 성적은 점차 상위권으로 올랐고, 친구도 생겼고, 농구부에도 들어갔다.

"엄마, 오늘 수학 시험 100점 받았어요!"

아들이 건네는 시험지를 받아 들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방인처럼 시작한 학교생활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평온이 찾아오는 듯했다. 이제 괜찮을 거라고, 우리도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혼자서 걸어간 길, 아들의 자립

평온은 1년도 채 가지 않았다.

그곳 상황이 안정되자 남편은 곧장 돌아오라 재촉했다. 매일 걸려오는 전화, 점점 강해지는 목소리. 아이들이 학기를 마칠 때까지만 기다려달라고, 적어도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시간을 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들은 적응력이 좋아. 금방 익숙해질 거야." "16살이면 충분히 혼자 할 수 있는 나이야." "지금 여기 일이 너무 바빠. 당장 와야 해."

남편의 논리는 명확했고, 거부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둘째는 더 이상 아빠가 있는 나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 번 떠나온 곳, 총성이 들렸던 그 거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대신 형이 먼저 간 미국,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펼치고 싶다 했다.

"엄마, 저 미국 갈래요. 형처럼 거기서 공부하고 싶어요."

열여섯 살 소년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단호했다. 조용하지만 확고했다. 그 눈빛에는 이미 결심이 담겨 있었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16살 아들을 혼자 한국에 남겨두고 떠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가장 예민한 사춘기, 엄마 손길이 필요한 시기에 아이를 홀로 둔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세 식구가 함께 남편에게 가자니 아들이 거부했고, 아들과 함께 한국에 남자니 남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아들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미국엔 큰아들이 있고, 멀게나마 친척 되는 이모와 삼촌이 있으니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적어도 중학교 졸업까지, 마지막 학기만큼은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졸업식장에서 꽃다발 안겨주고, 함께 사진 찍고, 그렇게 마지막 엄마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게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이라 믿었다.

그러나 남편의 목소리는 더 강했고, 더 급했다.

"16살이면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어. 할머니도 계시고, 친척들도 있잖아. 빨리 와."

결국 아들을 할머니와 이모, 친척들 품에 맡기고 딸과 함께 남편이 있는 나라로 떠났다. 출국 전날 밤, 아들 방에 들어가 한참을 바라봤다. 잠든 얼굴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았다. 볼을 쓰다듬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공항에서 흔들며 보던 작은 손, 억지로 웃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게이트로 들어서며 뒤돌아봤을 때, 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비행기 창밖으로 점점 작아지는 인천공항을 바라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잘할게요."

떠나기 전 아들이 건넨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남편이 있는 나라로 돌아간 후에도 마음은 늘 한국에 남아 있는 아들에게 가 있었다. 시차 때문에 통화하기도 쉽지 않았고, 불안정한 통신망 때문에 영상통화도 자주 끊겼다. 아들은 정말로 혼자 해냈다. 아니, 해내야만 했다. 중3 마지막 학기를 무사히 마쳤고, 졸업식도 할머니 손을 잡고 갔다. 유학 준비도 스스로 챙겼다. 토플 학원을 알아보고, 원서를 작성하고, 비자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모든 걸 혼자서.

가끔 전화로 근황을 전할 때면 아들 목소리는 밝았다.

"엄마, 비자 나왔어요!" "엄마, 형이랑 통화했는데 공항에 마중 나온대요!" "엄마, 걱정 마세요. 정말 괜찮아요."

괜찮다고 했다. 정말 괜찮다고 했다. 그 말을 믿었다. 믿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실수로 스피커폰 버튼을 누른 채 전화를 받았고, 아들이 전화를 끊은 후 흐느끼는 소리를 들어버렸다. 낮게, 조용히,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듯 억눌러 우는 소리.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아들은 받지 않았다.

그날 밤,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이 흘렀다. 열여섯의 어린 어깨가 감당했을 무게가, 뒤늦게 가슴을 짓눌렀다. 억지로 밝은 척했을 그 목소리 뒤에 숨겨진 외로움과 두려움이, 비로소 보였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던 날, 아들은 인천공항에서 혼자 수속을 밟았다. 할머니와 이모가 배웅을 나왔지만, 출국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완전히 혼자였다. 열여섯 살 소년이 캐리어 하나 끌고, 미지의 땅으로 향했다. 뉴저지에 있는 형과, 멀리 사는 먼 사촌뻘 이모와 삼촌이 전부였다.

그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것, 손 잡아주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가슴 한편에 돌처럼 박혀 있다.


12년 후, 미국 시민이 된 아들

세월은 강물처럼 흘렀다. 센강처럼, 한강처럼, 돌이킬 수 없이.

아들은 뉴저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로커스 대학(Rutgers University)에 입학했다. 약학을 전공하겠다던 아들의 꿈은 흔들림 없이 이어졌고, 마침내 약대를 졸업했다. 그 모든 순간을 화면 속에서만 지켜봤다. 비자가 거절되어 졸업식장에 갈 수 없었다. 가운을 입은 아들, 모자를 던지는 아들, 친구들과 환하게 웃는 아들을 모니터 너머로만 바라봤다.

"엄마, 오늘 졸업식이었어요. 형이랑 이모네 가족이 와줬어요."

영상통화로 보는 아들 얼굴엔 자랑스러움과 동시에 미세한 아쉬움이 스쳤다. 포착하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 눈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아들은 곧 밝게 웃으며 학위증을 카메라에 들이댔다.

"봐요, 엄마. Pharm.D. 받았어요! 로커스 대학 약대 졸업했어요!"

축하한다고, 자랑스럽다고, 수없이 말했지만,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그 말들이 얼마나 공허하게 느껴졌는지. 직접 안아주지 못하는 것, 등을 토닥여주지 못하는 것, 졸업식장 객석에 앉아 아들 이름이 호명될 때 박수쳐주지 못하는 것. 그 모든 것이 한없이 미안했다.

기억 속 아들은 여전히 16살 소년인데, 현실 속 아들은 어느새 당당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목소리는 낮아졌고, 어깨는 넓어졌고, 말투는 침착해졌다. 여드름 자국도 거의 사라지고, 턱선은 날카로워지고, 눈빛은 더 깊어졌다.

졸업 후 아들은 뉴욕 대학교 병원에서 정식 약사로 일하게 되었다. 맨해튼 한복판, 그 바쁜 도시 중심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형도 웹 개발자로 자리 잡았고, 두 아들 모두 부모 손 떠나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갔다.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쓸쓸했다. 아이들은 이미 독립했는데, 엄마는 여전히 어디선가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

뉴욕 타임스퀘어 앞에서 찍은 아들 사진을 받았을 때, 한참을 들여다봤다. 하얀 약사 가운을 입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아들. 더 이상 엄마 도움이 필요 없는, 완전히 자립한 한 명의 성인.

"엄마, 저 이번에 아파트 계약했어요. 드디어 제 집 생겼어요."

영상통화로 보여준 작은 원룸. 비좁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공간, 책상 위에 놓인 약학 서적들, 냉장고에 붙어 있는 근무표. 그곳에 엄마 자리는 없었다. 당연했다. 아들은 이미 오래전에 혼자 사는 법을 배웠으니까.

12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 세월 동안 아들은 소년에서 어른으로, 타국 유학생에서 미국 시민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엄마는 여전히 어디선가, 늦은 나이에 다시 학생이 되어 파리 거리를 헤매고 있다.

가끔 센강변을 걸으며 생각한다. 만약 그때 아들 곁을 지켰다면 어땠을까? 만약 남편 재촉을 뿌리치고 한국에 남았다면? 만약 졸업식에 함께 갔다면, 로커스 대학 캠퍼스를 같이 걸었다면?

하지만 인생에 만약은 없다. 다만 결과만 있을 뿐. 그리고 그 결과는, 아들이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성장했다는 것. 엄마 곁에 없어도, 아니 어쩌면 엄마 곁에 없었기 때문에 더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래도 가슴 한편은 여전히 시리다. 12년 동안 놓친 순간들, 함께하지 못한 시간들이 겨울바람처럼 차갑게 스며든다.


겨울,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며

그런데 올겨울은 다르다.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둘째가 파리에 온다. 무려 12년 만이다. 소식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기쁨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엄마, 크리스마스 때 파리 갈게요. 휴가 냈어요."

담담하게 전하는 아들 목소리를 들으며, 그 자리에서 울음이 터졌다.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12년 만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아뒀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엄마, 왜 울어요? 좋은 일인데."

아들은 당황하며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도 설렘이 묻어났다. 아들도 기다렸구나. 엄마만 기다린 게 아니라, 아들도 이 만남을 기다렸구나.

어떤 모습일까? 키는 얼마나 클까? 목소리는 얼마나 낮아졌을까? 여전히 그 따뜻한 미소를 지을까?

매일 밤 상상한다. 샤를드골 공항 도착 게이트 앞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장면. 사람들 사이로 나타날 아들 모습. 12년 만에 마주할 그 순간을.

오늘도 파리 6구 아파트 창가에 앉아 달력을 본다. 12월 20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아들이 도착하는 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날짜를 세어본다. 이제 몇 주 남지 않았다.

밤마다 공책에 계획을 적는다. 함께 갈 곳, 함께 먹을 음식, 나눌 이야기. 샹젤리제 거리 일루미네이션 아래서 사진 찍기, 센강변 산책하며 쇼콜라쇼 마시기, 몽마르트르 언덕 올라 파리 전경 보기. 빼곡히 적힌 리스트를 보며 혼자 웃음 짓는다. 50대 중반의 파리 유학생이, 아들 만날 생각에 10대 소녀처럼 설레고 있다.

창밖으로 첫눈이 내린다. 파리 지붕 위로, 센강 다리 위로, 에펠탑 꼭대기 위로 하얗게 쌓이는 눈. 마치 세상이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모든 게 순수하고 깨끗해진다.

거리의 악사가 켜는 바이올린 선율이 겨울 공기를 타고 흐른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오랜 방랑 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음악을 들으며 걷다가, 문득 멈춰 선다.

아들은 뉴욕에서, 엄마는 파리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각자 삶을 살고 있지만, 12월 파리에서 마침내 만난다.

퐁네프 다리를 건너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별이 보인다. 지구 반대편 뉴욕에서도, 아들이 같은 별을 보고 있을까?

가슴속 깊이 간직한 말이 있다.

"잘 견뎌줘서 고마워. 16살에 혼자 미국 간 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파리에서 혼자 공부하며 비로소 알았어. 형도 있었고, 먼 친척도 있었지만, 결국 너 혼자 힘으로 일어섰잖아.

미안한 것도 많아. 졸업식에 못 가준 것, 로커스 대학 입학할 때 곁에 없었던 것. 하지만 이번 겨울, 파리에서 우리 함께 새로운 추억 만들자. 12년 동안 미뤄뒀던 포옹, 이제야 할 수 있게 돼서 참 다행이야.

뉴욕 대학교 병원에서 약사로 일하는 네 이야기, 로커스 대학 시절 이야기, 힘들었던 순간들과 행복했던 순간들. 눈 내리는 파리 거리를 함께 걸으며, 따뜻한 카페에 앉아 그 모든 걸 듣고 싶어."

눈 내리는 파리 거리, 아들과 함께 걸을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헤어짐 끝엔 언제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12년 만의 크리스마스 선물.

바로 곁에 있을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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