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행 이야기: 전주 한옥마을에서 찾은 마음의 고향

뜨거운 여름날, 아들과 함께한 시간여행

by Selly 정

한옥 에어비앤비

오후 6시, 드디어 전주에 발을 디뎠다. 가슴이 두근두근, 마치 어릴 적 소풍 전날 밤처럼 들뜬 마음이었다. 이번엔 한옥마을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서 한옥스타일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과연 영상에서 보던 그 운치 있는 한옥 감성이 물씬 풍길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숙소를 찾아 헤맸다. 입구부터 미로 같았지만, 그것마저 한옥 여행의 서막처럼 느껴졌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바스락, 모래와 자갈이 만들어내는 정겨운 소리. 담벼락 옆으로 쭉쭉 뻗은 대나무가 살랑살랑 바람에 춤추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엔 아담한 욕조가 반짝반짝 빛나고, 나무 마루는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아, 이거구나!'

순간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이 떠올랐다. 마루에 콩닥콩닥 앉아 햇살을 받으며 마당의 꽃들을 바라보던 그때. 감자며 고구마며 옥수수를 마루에 펼쳐놓고 냠냠 먹던 그 달콤했던 추억들이 물밀듯 밀려왔다.

서까래가 보이는 방, 위아래로 열리는 운치 있는 창문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20250709_210900.jpg


전주 맛 탐험

"엄마, 전주 오면 콩나물 비빔밥은 꼭 먹어야 해요!"

아들의 단호한 한 마디에 우리는 부리나케 맛집으로 향했다. 수십 곳을 검색한 끝에 찾아간 그곳에서 콩나물 비빔밥을 중심으로 파전까지, 한상 가득 푸짐하게 주문했다.

"이왕 전주에 온 거, 가장 한국적인 맛을 다 봐야죠!"

아들의 이런 모습이 참 기특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참 독특하고 유별나다' 놀리면서도 속으로는 뿌듯했다.

배가 터질 것 같아도 더 먹고 싶은 그 맛들. 결국 내일을 위해 포장까지 해서 돌아왔다. 충분히 배를 채우고 나서야 우리는 포만감과 함께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주에서 3시간 넘게 운전해온 아들이 코를 골며 깊이 잠든 모습을 보니,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복받쳤다. '여행을 좋아하는 아들이라 다행이야.'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며 나도 잠에 빠져들었다.



☀️ 한옥마을 탐험

다음날 아침 8시, 이미 따가운 햇살이 우리를 맞았다. 7월 초의 무더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한옥마을 곳곳을 둘러봐도 관광객들은 찾기 어려웠다.

'이 더위에 누가 돌아다니겠어?'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여행 왔으니까 더워도 여행하자!"

양산 하나를 덥썩 구입하고, 한 손엔 양산, 다른 손엔 시원한 음료수를 꽉 쥐고 다녔다. 가는 곳마다 카페가 있으면 시원한 물과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혔다.

'이게 뭔 짓이야?'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의 여행이 뜨거운 날씨보다 더 소중했다. 우리는 열심히 이곳저곳을 뚜벅뚜벅 걸어 다녔다.


20250710_103223.jpg


경기전

전주한옥마을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경기전이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이곳에서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특히 어진박물관에서 만난 조상들의 기록 정신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세세한 것까지 빠짐없이 기록했던 그들의 놀라운 정성. '이런 게 진짜 역사의 힘이구나.'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공부한 아이들에게 우리 조상들의 뛰어남을 전해줄 수 있어서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다. 가슴 깊숙이 자부심이 샘솟았다.


오전 10시가 넘어가니 더위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한옥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공간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기자기한 카페들, 정성스러운 공방들, 고운 한복을 만날 수 있는 집들, 전주 특산품을 파는 먹거리 가게들까지. 걷고, 먹고, 눈으로 즐기는 오감 만족의 시간이었다.

500년 넘은 은행나무 길을 거닐며, 그 옆 졸졸 흐르는 시냇물에 첨벙첨벙 발장구도 쳤다. 한 손엔 양산, 다른 손엔 음료수를 들고 다녀야 할 만큼 뜨거웠지만, 한옥마을을 거니는 기분만큼은 최고였다.


20250710_141419.jpg


한옥마을도서관

더위에 지쳤을 때 떠오른 곳이 바로 한옥마을도서관이었다.

시원한 실내에서 책들을 둘러보며 휴식을 취하고, 그 자리에서 그림책 동화 한 권도 뚝딱 읽었다. 특히 색칠하기 엽서 꾸미기가 인상적이었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동화책 속 한 장면을 색연필로 칠하는데, 정말 제각각이었다. 나와 아들, 딸의 취향과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함께 여행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어린아이의 동심 세계로 돌아간 듯한 그 시간이 참 달콤했다.


한옥마을도서관 정보:

전주시 완산구 한지길 68-3

⏰ 화~일 09:00~18:00 (월요일 휴관)

063-714-3531

주차 불가 (대중교통 이용 권장)


점심시간이 다가오며 전주 여행 1부가 막을 내렸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깨달았다.

단순히 관광지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스며있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전주는 정말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뜨거운 여름날이었지만, 우리 마음만큼은 한옥의 그늘처럼 시원하고 평온했다.

이제 점심시간부터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여행 이야기 :경주, 천년의 시간 속으로 떠난 마음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