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2월 27일

by 지온x지피

二十七日戊午。陰。朝畢點後。登北峯。觀望形勢。則孤危絶島。四面受敵。城池且極齟齬。可慮可慮。僉使則盡心。而未及施設。奈何奈何。晩乘船到京島。汝弼,而立與軍官,虞候。載酒出迎。與之共樂。日沒還衙。




1592년 2월 27일, 흐림.

아침 일찍 병사들을 점검한 뒤, 나는 북쪽 봉우리로 올랐다.
그곳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우리가 지키는 이곳은 참으로 외롭고 위태로운 외딴섬 같았다.
사방 어디서든 적이 쳐들어올 수 있었고, 성곽과 해자는 이렇다 할 방비 없이 허술했다.

"걱정이로다, 걱정이로다…"

내 마음속에서는 그런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아직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 평화가 오래가지 않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무엇이든 더 준비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뿐이었다.

첨사는 이름도 나와 같은 '이순신'이라, 처음 보는 이들은 헷갈릴 수 있다.
그 또한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니라, 마음도 같았다.
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장수였고, 나는 그를 참으로 아꼈다.
하지만 그 또한 아직 시설을 갖추기엔 시간과 자원이 부족했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어찌하면… 내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해가 저물 무렵, 나는 배를 타고 여수의 경도(大慶島)로 향했다.
섬에 도착하니, 사랑하는 아우 여필과 조이립, 군관들, 그리고 우후 이몽구가 술을 실어 마중 나와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잠시 그들과 함께 웃으며 술잔을 나누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귀한 자리였다.

해가 지고 나서야 나는 다시 조용히 관아로 돌아왔다.

이 밤, 나를 맞아준 이들이 있어 따뜻했지만…
그 따뜻함 뒤에 숨은 전쟁의 기운은 여전히 내 등 뒤에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순신 장군
『난중일기』 속에는 또 다른 이순신 장군이 등장한다.
그는 바로, 무의공 이순신(李純信, 1554~1611) 장군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의 양녕대군의 후손으로, 왕족의 피를 이은 그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과 이름은 같았지만,
그 충의와 절개 또한 결코 뒤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충무공은 『난중일기』에서
“첨사도 마음을 다하고 있다”라고 기록하며
그의 성실함과 충직함을 깊이 신뢰했다.

두 장수는 적막한 전선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말없이 마음을 나누는 동지였고,
전쟁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나라를 지켰다.

그리고... 가장 가슴 아픈 순간.
1598년 11월, 노량해전.

충무공 이순신이 적의 총탄에 쓰러진 바로 그날,
전쟁의 현장을 끝까지 지키며 승리를 완성하는 것을 도운 장군중 한 명이
바로 무의공 이순신 장군이었다.

믿고 따르던 장군이 노량해전이 끝난 뒤 전사한 사실을 알았을 때
그가 느꼈을 슬픔은, 단지 전우를 잃은 아픔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충무공이 떠난 뒤에도 묵묵히 살아남아
1611년, 역사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아마도 그는 끝내 잊지 못했을 것이다.
노량의 바다 위,
자신이 마지막으로 배웅했던 ‘충무공 이순신’의 뒷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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