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初四日甲子。晴。朝。趙而立餞別。出客舍中大廳公事後。廵見西門垓坑及城加築處。僧軍拾石不實。故首僧决杖。牙山問安羅將入來。聞天只平安。多幸多幸。
1592년 3월 4일
오늘 아침, 날이 맑았다.
오랜 인연인 조이립과
함께 아침 인사를 나누고 정답게 배웅했다.
서로 웃으며 작별 인사를 했지만, 마음 한편은 조용히 저려왔다.
이런 때일수록, 평범한 작별도 어쩐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작별 인사를 마치고, 곧장 성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문 앞에 둘러 파놓은 해자와 성벽을 더 높이 쌓는 곳을 천천히 살폈다.
얼마 전 보았던 성벽의 허술함을 잊지 못했다.
백성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 한 치의 빈틈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성벽 보수에 나선 승병들이 돌을 제대로 줍지 않고 있었다.
성벽이 곧 생명줄인데,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는 승병들의 우두머리인 승려를 불러 엄히 꾸짖고 곤장을 내렸다.
마음이 아팠지만, 그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던 중, 아산에 문안 갔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무사히, 평안히 계신다는 말을 듣자
그제야 가슴 깊이 박혔던 걱정 하나를 내려놓았다.
모든 게 다행이다. 어머니가 편안하시다는 그 말 한마디가
내게는 세상의 어떤 소식보다 값지다.
나는 이 나라의 백성을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와,
어머니를 향한 나의 효심 하나.
그 두 마음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걷는다.
이 성을 돌고 또 돌며, 내 발걸음으로 땅을 다지고 마음을 다진다.
전쟁 전, 누구보다 깨어 있던 사람
이 날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놀라운 선견지명과 책임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1592년 3월 4일은, 임진왜란이 시작되기 약 한 달여 전의 일이었어요.
세상은 조용했고, 많은 사람들은 전쟁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죠.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달랐습니다.
성곽과 해자, 방어 시설 하나하나를 직접 눈으로 살피며 꼼꼼히 점검했고,
부실하게 일하는 승군들을 질책할 만큼 국방에 대한 사명감이 확고했습니다.
그는 단지 명령을 내리는 장수가 아니라, 발로 뛰고 눈으로 확인하며
나라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던 참된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도 어머니의 안부를 잊지 않는 효자의 모습.
전쟁의 위기를 감지하고 백성을 위한 준비로 매일같이 분주한 가운데서도,
“어머니가 평안하시다”는 소식에 마음을 놓는 장면은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인간적인 사랑과 정을 지닌 분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나라를 지키는 장군이었고, 한 사람의 아들이었으며,
결코 무너지지 않는 의지를 지닌 동시에,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 이 글은 『난중일기』 1592년 3월 4일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실제 사실에 기반하되, 당시의 정황과 감정을 보다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일부 문장은 상상과 창작이 더해졌습니다.
장군의 기록에 담긴 정신과 울림을 지금의 우리도 함께 느껴보기를 바라며,
그 뜻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풀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