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3월 23일, 24일, 25일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by 지온x지피

원문

二十三日癸未。朝陰晩晴。食後。東軒公事。寶城板子趁未輸納。色吏更爲發關推捉。順天上使蘇國進。决杖八十。廵使送簡言鉢浦權管。不合領軍之才。處置云。故姑勿遆差。仍留防備事。答送。


3월 23일, 날씨는 아침엔 흐렸고, 해질 무렵엔 갰다.

아침부터 하늘은 흐리다가 저녁엔 맑았다.
식사를 마친 뒤, 동헌으로 나가 일들을 정리했다.
군수 물자 관리에 허점이 있었는지, 보성에서 올 판자들이 아직도 납입되지 않고 있었다.

지시된 것이 미이행된 상황, 그 책임은 누군가에게 분명 있었다.
색리(色吏, 하급 관리)들에게 다시 공문을 보내어,
책임자들을 색출해 추적하고 체포하도록 명령했다.
제 자리를 지키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이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순천에서 올라온 관리, 소국진(蘇國進).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죄를 범해 곤장 80대를 내렸다.
공직자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작은 태만 하나가
수많은 백성과 군사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편, 순찰사에게서 공문이 도착했다.
발포의 권한을 맡은 관원에 대해 “지휘관의 자질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함부로 병권을 맡길 인물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나는 답장을 보냈다.
“그는 적합하지 않다. 굳이 다른 곳으로 보내려 하지 말고,
차라리 이곳에 남겨둬 방어 임무를 맡게 하라”고.
무능한 자에게 병권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마땅히 써먹을 자리는 있어야 했다.

나는 그를 믿을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내칠 수만도 없었다.
지금은 전쟁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긴박한 시기.
모든 자원이 아깝고, 모든 인재가 귀하다.



원문

二十四日甲申。以國忌不坐。虞候搜討。無事還來。廵使,都事答簡。宋希立並持來。廵使簡中。嶺南方伯致簡曰。島主書契。曾有一船出送。而若未到貴國。則必爲風所敗云。其言極凶詐。東萊相望之海。萬無如是之理。而作辭如此。其爲譎詐難測云。



3월 24일, 오늘은 국상일이라 관청의 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나라의 제삿날(소헌왕후 심 씨의 제사)이라, 나는 오늘 관청 일을 하지 않았다.
다만, 해야 할 일들은 조용히 이어졌다.
병영의 일을 맡은 하급 관리(우후 이몽구)를 보내 수상한 움직임이 있는지 살펴보게 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고 돌아왔다.

한편, 순찰사 쪽에서 또다시 공문이 왔다.
도사와 함께 송희립이라는 인물이 들고 왔다.
그 편지엔 남쪽 영남 지역의 관리가 보내온 글이 담겨 있었는데,
읽고 나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 내용이 이랬다.

“쓰시마 섬의 관리가 보내온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쓰시마에서 조선으로 보낸 배 한 척이 있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그건 아마도 바람에 휩쓸려 난파된 탓일 것입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손을 꼭 쥐었다.

저 말이 과연 진심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었다.
그들의 말투, 그들의 핑계, 모든 게 뻔히 보였다.

동래 앞바다는 우리와 맞닿아 있는 바다다.
거기서 난파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곳은 풍랑에 배가 깨질 만큼 험한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던지고 있었다.

“풍랑 때문에 못 왔을 것이다.”
그 말은 결국 책임을 회피하려는 궤변,
숨겨진 의도를 감추기 위한 말장난이었다.

나는 저들이 숨기고 있는 꿍꿍이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지금 저들은 정직하지 않다.

그들의 말에는 진심이 없었고,
오히려 어둠과 속임수가 섞여 있었다.

그 거짓의 냄새, 나는 안다.

그래서 오늘 하루, 나는 깊은 경계심을 가슴에 품었다.
겉으로는 잔잔한 하루였지만,
속으로는 거짓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준비하리라.
모든 게 평온할 때, 진짜 위험이 다가오니까.


원문

二十五日乙酉。晴而大風。出東軒公事後。射帿十廵。慶尙兵使。不到平山浦而直向南海云。余以未得相面爲恨之意答送。廵見新築城。而南邊九把許頹破矣。



3월 25일, 하늘은 맑았지만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아침 일찍 동헌으로 나가 오늘도 빠짐없이 업무를 챙겼다.
이 작은 공간 안에서 나는 수많은 보고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나라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긴박한 시대,
사소한 일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기에
나의 하루는 오늘도 무거웠다.

공무를 마친 뒤, 몸을 풀 겸 활쏘기를 열 바퀴 돌았다.
몸과 마음을 다잡기 위한 내 나름의 수련이었다.
검처럼 날카롭고, 활줄처럼 팽팽해야만
이 거센 바람 속에서도 중심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소식이 하나 들어왔다.
경상 병사(경상도의 최고 군 책임자 조대곤)가 평산포(남해 남면 평산리)에는 오지 않고,
곧장 남해로 향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그를 꼭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우리가 직접 얼굴을 맞대야 할 이유들이 있었다.
전란의 기운이 짙어지는 지금,
각 병사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서로 정확하게 공유하고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답신을 보내며
직접 만나지 못한 것이 크나큰 아쉬움이라 전했다.
서신 몇 줄로는 전할 수 없는 것이 있고,
직접 눈을 보고 나눌 말들이 있다.
그 소중한 기회를 흘려보낸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순찰을 돌던 중, 새로 지은 성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성의 남쪽 부분은 벌써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불과 아홉 자 남짓한 길이의 성벽이 힘없이 주저앉은 모습은
마치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불안함 그대로를 닮아 있었다.

우리는 준비되었는가?
쌓은 것이 과연 단단한가?
무너진 성벽 앞에 선 나는,
이 땅과 사람들을 다시 지켜야겠다는 다짐만을 되새겼다.






※ 이 글은 『난중일기』 1592년 3월 23,24,25일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실제 사실에 기반하되, 당시의 정황과 감정을 보다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일부 문장은 상상과 창작이 더해졌습니다.

장군의 기록에 담긴 정신과 울림을 지금의 우리도 함께 느껴보기를 바라며,
그 뜻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풀어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의 마음으로, 오늘을 써 내려가며

이순신 장군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됩니다.
난중일기를 함께 따라 써 내려가며,
장군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려 애쓰는 이 시간이
그저 공부나 기록의 시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책임, 그리고 뜨거운 심장을 마주하는 시간이 되어갑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마다
나라를 지키려는 절박함과 외로운 결단들이 묻어나고,
그 마음에 최대한 닿고자 하면 할수록
내 마음도 자꾸 시큰거리고 울컥해집니다.

단순히 과거의 일기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을 함께 살아내고,
그 밤을 함께 버텨낸 듯한 묘한 떨림이 남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담아낼 수 있다는 건
정말로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오늘도 장군님의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서,
그 마음을 글로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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