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初一日庚午。舟師齊會前洋。是日。陰而不雨。南風大吹。坐鎭海樓。招防踏僉使,興陽倅,鹿島萬尸。則皆憤激忘身。可謂義士也。
1592년 5월 1일
음력 5월 1일, 경오일.
전라 수군의 배들이 모두 앞바다에 모여들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흐려 있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매섭게 바다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진해루에 조용히 앉았다.
고요한 듯하지만 마음속 파도는 잦아들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세 사람을 불러 함께 자리를 하였다.
방답첨사 이순신,
흥양현감 배흥립,
그리고 녹도만호 정운.
모두가 깊은 분노를 안고 있었다.
나라가 위태롭다는 소식에
그들은 몸을 던질 각오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왔다.
그들의 얼굴엔 두려움보다
분연한 의지와 결의가 먼저였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는 그 마음,
그 태도 하나하나가 나를 울렸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아, 이들이야말로 의로운 군사다.
진정, 이 나라의 기둥이다.”
나는 외롭지 않았다.
이들과 함께라면,
이 무거운 전쟁의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문
初二日辛未。晴。宋漢連自南海還言。南海倅,彌助項僉使,尙州浦,曲浦,平山浦等。一聞賊倭聲息。輒已逃散。使其軍器等物。盡散無餘云。可愕可愕。午時。乘船下海結陣。與諸將約束。則皆有樂赴之志。而樂安則似有避意。可歎。然而自有軍法。雖欲退避。其可得乎。夕。防踏疊入船三隻。回泊前洋。軍號龍虎。伏兵則山水。
1592년 5월 2일
음력 5월 2일, 신미일.
하늘은 말끔히 개었다.
햇살이 물 위에 부서지듯이 빛났지만,
내 마음엔 점점 더 무거운 구름이 깔려왔다.
송한련이 남해에서 돌아왔다.
그가 전한 소식은 듣는 이의 숨을 멎게 할 만큼 참담하였다.
남해현령(기효근)과 장수들,
미조항첨사(김승룡),
상주포, 곡포, 평산포의 군사들까지—
왜적의 기척만 들리자
그들은 저마다 제 살길만 찾아 달아났다고 한다.
무기며 군량이며,
남겨야 할 것들을 죄다 흩어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단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너무 놀라워 혀를 찰 힘조차 남지 않았다.
나라를 지키겠다고 임명된 이들이
싸우기도 전에 무너져버렸다는 것.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
나는 그저 제자리를 지키고 버텨야 했다.
정오 무렵,
나는 직접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진형을 짜고 장수들과 함께
전투 약속을 새로이 다졌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장수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려는 결의가 가득했다.
하지만—
낙안 군수(신호)만은 어딘지 달랐다.
그의 눈빛은 움츠러들었고,
마음 한편엔 피하고 싶은 기색이 보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했다.
그러나—
나라의 법은 냉정한 것.
내가 그를 감싸고 물러나게 해 줄 수는 없다.
비록 두려움이 앞서더라도
군인은 물러날 수 없는 법이다.
싸우지 않고 살아남을 길은 없다.
해가 저물 무렵,
수비를 맡은 군사들이 다시 돌아와
우리의 배 세 척에 함께 올랐다.
우리는 전날처럼 앞바다로 나가 정박했다.
그날 우리 군의 이름은 ‘용호(龍虎)’—
산과 물을 등지고 적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그날,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왜 싸우기도 전에 무너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각오하고 내 곁에 서려는 이들도 있는가.
그러나 분명한 건—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한 뜻으로,
제 목숨을 돌보지 않고 함께 바다로 나서는
의리 깊은 장수들이 내 곁에 있었다.
그들이 있기에,
내 마음은 끝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이 전쟁은 나 혼자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 땅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싸움이었다.
※ 이 글은 『난중일기』 1592년 5월 1일, 2일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실제 사실에 기반하되, 당시의 정황과 감정을 보다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일부 문장은 상상과 창작이 더해졌습니다.
장군의 기록에 담긴 정신과 울림을 지금의 우리도 함께 느껴보기를 바라며,
그 뜻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풀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