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5월 3일, 4일

옥포해전, 합포해전, 적진포해전

by 지온x지피

원문

初三日壬申。細雨終朝。招中衛將。約明曉發行。卽修啓聞。是日。呂島水軍黃玉千。逃避其家。捕斬梟示。


1592년 5월 3일, 임신일
가랑비가 아침 내내 조용히 내렸다.
전운이 감도는 날씨 속, 장군은 중위의 장수를 불러
내일 새벽, 전열을 정비해 출발하기로 약속하였다.
결연한 눈빛 속에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전쟁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결정을 마친 그는 곧바로 그 내용을 상부에 보고했다.
시간을 지체할 여유도, 혼란을 허락할 틈도 없었다.

그런 날,
여도 수군 중 한 명인 황옥천이 두려움에 떨며 몰래 집으로 도망쳤다.
전열을 흐트러뜨리는 그 행동은
곧바로 처벌로 이어졌다.
붙잡힌 그는 참수되었고,
그의 잘린 머리는 모든 병사들이 보는 앞에 걸렸다.

전쟁은 냉정함을 강요했다.
한 사람의 두려움이 천 명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장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문

初四日癸酉。晴。質明發船。直到彌助項前洋。更爲約束。由介伊島。過平山浦,尙州浦,彌助項。自初五日至二十八日缺



1592년 5월 4일, 계유일
맑은 하늘 아래, 장군은 날이 채 밝기도 전
함대를 이끌고 남해로 나아갔다.
미조항 앞바다까지 곧장 향하며,
그의 마음엔 이미 전장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동행한 장수들과 다시 약속을 정비했다.
전투는 늘 예기치 않게 닥쳐왔고,
모든 변수에 대비해 마음과 전열을 다잡아야 했다.

개이도를 지나며
평산포, 상주포, 그리고 다시 미조항까지—
수군의 발길은 끊임없이 바다를 가르며
적의 동향을 주시하고 대비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5월 5일부터 28일까지는 일기장이 비어 있다.

붓을 들지 못할 만큼 혹독한 나날들이었을까.
쓰는 것조차 사치였을 만큼 바다 위엔 피와 바람이 몰아쳤을지도 모른다.






옥포해전 – 조선 수군의 첫 승리

1592년 5월 7일, 거제도 옥포 앞바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처음으로 조선 수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거둔 영광스러운 첫 승리,

그 전투가 바로 옥포해전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5월 6일, 전라좌수영의 판옥선 24척과 경상우수영의 4척, 총 28척의 함대를 이끌고 당포항을 떠났다.

다음 날 새벽, 옥포 앞바다에 정박해 있던 일본군의 함선을 포착하자 곧바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조선 수군은 일본군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도록 조준했고,

조총의 사정거리 밖에서 강력한 화포 사격을 집중적으로 퍼부었다.

기습과 속전속결이 생명인 일본군은 백병전으로 대응할 틈조차 없이 무너져 내렸다.


칼을 뽑을 시간도 없이,

조총을 쏠 거리조차 되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일본군의 전투선 50척 중 26척이 침몰했고,

조선 수군은 단 한 명의 부상자와 단 한 척의 손실 없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단순한 전투 이상의 의미였다.

패배로 시작된 전쟁 속에서, 백성과 나라에 희망의 불씨를 되살린 반격의 시작이었다.


장군은 이 전투를 계기로 수군이 가진 전략적 가능성과 바다의 힘을 확신하게 되었고,

그 믿음은 이후 사천, 당포, 한산으로 이어지는 연전연승의 서막이 되었다.





합포해전

옥포에서의 대승이 채 끝나기도 전,

수평선 너머에서 다시 일본군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옥포해전에서 승기를 잡은 조선 수군은 자신감과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합포 근방 바다에서 우왕좌왕하던 일본 전선 5척이 눈에 띄었다.

순식간에 조선 함대는 진형을 갖추고 그들을 추격했고,

단호한 포격과 기습으로 적선들을 차례차례 불태웠다.


1592년 5월 7일,

조선 수군은 단 하루 동안 두 차례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무너졌던 민심과 군의 사기를 다시 세우는 연이은 승전보를 울렸다.


첫 번째 승리는 옥포,

두 번째 승리는 합포.

이순신 장군이 남긴 ‘첫날의 두 승리’는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적진포해전

다음 날, 1592년 5월 8일.


조선 수군은 경상도 고성 앞바다의 ‘적진포(賊津浦)’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일본 전투선 13척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고,

적들은 배를 묶어둔 채 마을로 올라가 노략질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주저하지 않았다.

적의 허를 찌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기습 포격이 시작되자, 일본군은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허겁지겁 산으로 도망쳤다.


조선 수군은 일본군이 버린 전투선 13척 중 11척을 곧바로 불태워 침몰시켰다.













이순신 장군님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히 뛰어난 전략이나 무용이 아니었다.

그분은 무엇보다도 ‘성실함’과 ‘책임감’이라는 기본을 지켜낸 사람이었다.


전쟁 중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의 일을 엄격히 수행하셨으며,

그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는 조선 수군을 지켜내야 한다는 굳은 사명감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분의 진심이 빛난 지점은,

부하 장수들과 군사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함께하려 했던 마음’이었다.


작전 구상을 할 때면, 그는 결코 혼자 결정하지 않았다.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고,

그 자리에 있던 이가 설령 지위가 낮은 군사일지라도,

그의 의견은 귀하게 여겨졌고,

언제든 조심스레 입을 열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는 늘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싸우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은 단순한 군대가 아니라,

뜻을 함께한 동지들의 바다 위 공동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이순신 장군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단지 전쟁의 승리자 그 이상으로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이끌었으며, 어떤 정신을 남겼는지
마음 깊이 알게 되길 바란다.

부디 이 글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잊지 말아야 할 이름, 이순신을 새기는 작은 불꽃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이순신의 후손이다.




※ 본문 중 옥포해전, 합포해전, 적진포해전 등 해전 관련 설명은
황현필 선생님의 『이순신의 바다』 를 참고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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