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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안 Jun 10. 2024

여유와 조급함은 숨길 수 없다

사랑과 재치기는 숨길 수가 없다. 

조급함과 여유도 마찬가지다.

여유란 드러나는 것이다. 숨기고 싶어도 숨겨지지 않는다.

조급함 또한 드러난다. 


지난 주말 아이를 태우고 공원을 갔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쉽게 친해지는 성향이다.

이런점은 나를 닮지 않아 참 다행이다.

“나랑 같이 놀래?” “ 이름이 뭐야?”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것도 거침이 없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나는 사실 조마조마하다.

아이가 친화력이 좋은 것은 무척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저렇게 막 다가가다가

다른 아이들과 다툼이 있으면 어쩌나

속으로는 소심한 걱정을 하고 있다. 


이번에 친해진 남자아이는 우리 딸보다 한살 어린 남자아이였다.

“ 누나 따라와.” “ 누나랑 달리기 하자.” 

놀이를 주도하며 거침없이 진두지휘 하는 딸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상대방 남자아이가 혹시 기분나빠하면 어떨지 걱정도 된다. 

그런데 남자아이 엄마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나는 뒤따라 다니면서 조마조마한대 

오히려 상대방 엄마는 

우리 딸이 어떤 말을 해도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응원해 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만약 내가 남자아이 엄마라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 우리 아이가 너무 끌려다니는거 아닌가? "




오늘 처음만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여유가 느껴졌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나이가 들다보니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물론 느낌이 틀리는 경우도 있지만 

말과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들은 숨겨지지 않는다.


그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물질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대부분 정서적 자원에서 나온다.

살아오면서 어떤 감정상태를 유지해 왔는가. 

그것이 여유로 드러난다.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사람은 

우울,불안과 같은 감정으로 

삶을 지나왔을 것이다.


불안함이 정서적 배경이 항상 깔려 있으니 

어디를 가더라도 눈치를 보거나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며 

긴장을 했을 것이다.


긴장을 하면 여유가 없어진다. 

시야에 있는 것만 보게된다. 


그 놀이터에서도 

내아이의 말과 행동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걱정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이하면서 즐거워 하는 

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고 내 아이가 웃고 있구나.

라는 것을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를 너무 끌고 다니는 건 아닌가. 

저 집 엄마가 안좋아하면 어떻하지?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상대방 엄마가 여유가 있어보였던 

정확한 이유는 

어쩌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즐거워하고 

다른 걱정을 하고 있지 않아서 였을지도 모른다. 


삶을 살다보면 이런 

소소한 상황들이 아닌 정말 힘든 상황이 온다. 

그때 정서적 여유는 더욱 필요하다. 

좀 더 인내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기 떄문이다. 

여유는 정신적 자원이다. 


삶을 돌아보았을 때 

좋은기억보다는 나쁜기억이 더 많이 떠오른다고 

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유가 없을 것이다. 


나쁜기억이 많다는 것은 

앞으로도 또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고

긴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정서적 자원을 쌓으려면 추억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살아갈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여유는 힘든일 있을 때마다 살아갈 힘이 되어줄 것이다. 




오늘은 유독 힘든 날이었다.

여권을 만들러 동사무소에 갔는데 

여권사진을 꺼내서 제출하는 순간.

갑자기 내 사진이 영정사진 처럼 보였다. 


공공기관이나 병원에 갈 때 공황이 올 떄가 있어

힘든 기억들이 있는데 갑자기 사진까지 그렇게 보이니 

순간 너무 무서웠다. 


내가 죽기전에 만드는 마지막 여권일 것 같다는 생각.

여권사진을 찍은건 내 영정사진을 쓰기 위해서 

찍은 것 같다는 생각.


여권사진 하나를 가지고 난 비극을 만들어 냈다.

누군가는 여권사진을 보면서 해외에 나갈 생각을 하며

즐거워 할텐데 


난 그 사진을 보며 죽을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이 모습을 웃으며 여유있게 넘어가고 싶은데 

심각하게 생각하며 속이 울렁거렸던 것을 보면

난 아직도 많이 긴장하며 살고 있다. 




힘든순간

심각한 순간에 

웃을 수 있는 여유 

정서적 자원을 만들어 가기 위해 

오늘의 사건도 좋은추억으로 승화시켜본다. 




영정사진이면 어떻고 

여권사진이면 어때 

어짜피 누구나 시한부 인생일걸 

오늘을 살아 

저녁에 맛있게 먹은 식사를 생각해 

아프고 나서 맛있는것도 마음껏 못 먹는다고

우울해 하고 비관하지 말고. 


매일 죽음에 대해 조급하게 생각하는 것 

나이듦에대해 억울해 하는 것 

돈 벌어야 한다고 조바심 내는 것 

그 모든 것이 태도와 말에 다 드러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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