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아.

by 최지안



" 자식한테 만큼은 가난을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아요. "



며칠 전 티브이에서 봤던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다.

시장에서 호떡장사 하시면서 평생을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장사 준비를 하시는 어르신의 고단함 삶.

저녁이 되어서 퇴근을 해도 쪽잠만 주무시고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장사 준비를 하신다.



그 마음속에는 오로지 자식들을 위한

사랑만이 존재한다는 걸 화면을 통해서도

다 느낄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알겠다. 그 마음을.

얼마나 처절하게 끊어내고 싶으셨을지

목숨 바쳐 일해도 가난만큼은 대물려 주고 싶지

않았을 그 외로운 외마디 비명을 알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는 고단한 삶의 굴레에는

돈이라는 녀석이 언제나 나를 비웃으며 조롱하는 것만 같다.



건강마저 허락되지 않은 것 같아 서럽다.

"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는

성경의 말씀처럼 마음은 저 멀리 가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당황스럽기만 하다.



나 또한 가난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

가난의 기준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위협을 받을 만큼의 수준은 물려주지 않으려고 한다.



어학연수나 유학 같은 건 보내주지 못할 수 있어도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대학등록금 정도는 마련해 주고

시집갈 때 얼마는 보태줄 수 있을 정도면 되려나?



당연히 할 수만 있다면 집도 해주고 차도 해주고

배우고 싶은 거 다 배우게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나의 상황을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나씩 해나가야 하다는 사실이다.



"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야 한다. "

" 조금씩 모아서는 부자 될 수 없다. "



여러 가지 의견들을 듣는다.



" 그렇게 해서는 평생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어요 "

" 부자가 되는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등등



여러 가지 유튜브 영상과 책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모든 방법이 다 나의 상황과 사정에

맞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핵심가치가 명확해진

지금은 " 하나씩 해나가자 "이다.



미라클 모닝

이불 개기

매일 책 읽기 2시간 읽기

운동 1시간

글쓰기

명상

업무의 몰입

확언

시각화

재테크

사업

등등.. 부자가 되기 위해 알려진 많은 방식이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을 하나씩 늘려가고 있다.

뭐라도 꾸준히 해봐야지..




어제 라이브커머스 4기 모임이 있었다.

자녀의 어학연수 문제를 고민하는 동기를 보면서

나와는 다른 형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괜히 기가 죽었을 것이다. 나의 비루한 모습을

보면서 신세한탄이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는 조금은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도 얼른 잘 되어서 자녀의 어학연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동기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질투하기 바빴을 것이다.



마음의 그릇이 조금 커진 만큼 물질을 담을 수 있는 면적도 더

커지지 않았을까? 이제 돈을 불러오면 되는 건가?

돈 버는 팔자가 따로 있다고 하는데

난 원래 인생에 남자가 없는 팔자인데도 결혼했다.



팔자가 구자로 펴질지 누가 알아.





단순히 물질적 가난을 대물림해주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정신적 가난을 대물림해주는 것이 더 무섭다.


부모의 비천한 생각, 낮은 의식 수준, 패배의식

이런 것들이 전달되는 게 사실 더 무섭다.


그래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정신적으로 깨어있으려고 노력한다.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시각을 통해 사고를 넓혀가고 있다.



진정으로 풍성한 생각과 사고방식을 물려줄 수 있다면

내가 끊지 못한 물질적 가난이 자식 대에서는 끊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정서적 풍요로움과 물질적 풍요로움 같이 물려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은 왕래하지 않는 큰 아버지가 생각난다.

친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가끔 한 번씩 아빠와 만나서 술 한잔 하는 게 전부다.

큰 아버지댁은 굉장한 부자다.



정말 오랜만에 아빠와 만났을 때 한마디 하셨다고 한다.


" 내가 현금으로만 50억이 있어. 땅 하고 부동산 제외하고"

자기 자랑만 실컷 하고 멋지게 술값 밥값 계산하셨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속상해하신다. 일은 더 많이 하셨는데

재테크로 성공한 큰 아버지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물질적으로는 정말 부럽지만 마인드나 삶의 태도를 보면

하나도 부럽지는 않다.



작은할아버지 장례식에서 몇 년 만에 만난 나에게

어디 사냐고 물어보셨던 큰 아버지

" 왜 그런데 사냐? 거기 임대아파트 단지잖아. "

그 황당한 대답에 우리 가족 모두는 당황했다.



가난한 것도 원인이 있고 그걸 큰 문제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돈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정신적 가난은 더더욱.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부자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내가 더욱

가난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생각하는 부자란 뭘까? 어떤 마음의 풍요로움을 원하는 걸까?

돈은 어느 정도 있어야 만족할까? 물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자족할 수 있는 정도는 어느 정도 일까? 오늘은 그걸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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