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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Jun 14. 2022

모비딕

향유고래

2 넘는 시간 틈틈이 읽은 소설, <모비딕>. 읽은  달포가  되어 간다. 그러니까 봄에 읽은 셈이다. 호주에 있는 동안 원서로 읽으려고 시도했지만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한글 번역판으로 읽었다.


소설은 19세기  포경업의 실태, 포경선에 승선한 수십 명의 선원들의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통해 드러낸 인간사, 그리고 고래를 소개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소설이 다큐멘터리나 르포 같기도 하다.


그런데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음울한 느낌을 주는, 이런 책은 봄에 읽어서는 곤란하다. 왠지 추운 겨울에 양말 신고 장갑 끼고 약간 움츠린 상태에서 읽으면 좋을  같다. 장르가 공포와 비극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봄엔 아무래도 희망과 행복을 노래하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는 편이 좋을  같기도 하고.


그래도 어떤 희망이 비친다. 이슈마엘이 퀴케그라는 식인종과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험상궂은 외모의 퀴케그는 사람의 머리를 소금에 절여 부대자루에 담아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는 한없이 순수하다. 둘이 친구가 되는 과정이 마치 부부가 되는 과정을 닮았다. 그는 이슈마엘을 친구로 맞아들이는 의식으로, 가진  전부를 털어서 이슈마엘과 정확히 반씩 누며 부부보다 나은 관계를 만든다.


선장, 에이하브는 순전히 자신의 복수를 위해 포경선에 오른다. 그에게는 돈이나 명예 따위 세속의 평가나 판단은 의미가 없다. 머리엔 커다란 혹이 달린 순백의 고래를 마치 자신이 처단해야  적국의 인간처럼 여기고 있다.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에이하브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실리를 는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다. 스타벅이란 이름은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의 유래이기도 하다.


25미터가 넘는 길이와 50톤이 넘는 몸무게를 가진 향유고래가 제공하는 수백 리터의 기름은 포경선이 건질  있는 가장 값비싼 수확물이다. 배에는 고래의 머리 부분으로부터 기름을 빼내는 장치와 끓여서 가공하기 위한 화덕, 그리고 저장을 위한  제조까지 거대한 공장을 방불케 하는 설비와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그런데 선장은 자신의 다리 한쪽을 앗아간 모비딕에 대한 복수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선장을 일등항해사, 스타벅이 도무지 이해할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이 슬픈 동물이 된 이유는 지구 표면의 3분의 2 바다가 덮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소설을 읽다보니 내면의 슬픔보다 기쁨을  많이 가진 인간은 진실할  없다"라는 문장이  속에 등장하면서 짐작이 확신으로 변한다.


인간의 기본적 자질은 슬픔에 기반한다는 것인데 왠지 공감된다. 지구도 인간도 대부분 물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우린 모두 눈물로 이루어진 존재라는 말이다.


톨스토이가 신문지  쪼가리에서 ‘어떤 귀부인이 철로에 뛰어들어 사망에 이르렀다' 기사  을 발견하고 영감을 받아 집필한 소설, <안나 카레리나>처럼, 삶의 많은 부분을 선원으로서 살아가던 허먼 멜빌도 칠레 근해의  모샤에서 악명을 떨쳤다는 '모샤 '이라는 향유고래의 이야기를 듣고 <모비 > 집필했다고 한다.


21세기가 된 지금, 허먼 멜빌의 예언과는 달리 향유고래는 멸종 위기 종이 된다. 그리고 인간도 곧 그 운명을 따를 예정이다. 그리고 이슈마엘 일행이 승선한 포경선의 이름은 '피쿼드 호'다. '피쿼드'는 백인이 아메리카를 점령하면서 최초로 멸종시킨 인디안 족 명칭이라고 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고  나아가서 처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


슬픔이 배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지구와 바다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변화는 여전히 신경  바가 아니라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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