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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Jan 15. 2023

짠한 왕들, 그래서 그랬구나!

<심리학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강현식 저

왕이 자신의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둔 채 죽게 만든 사건은 정말 기이하다. 아무리 아들이 밉고 싫어도 그렇지 어떻게 자신의 분신을 그렇게도 처참하게 살해할 수 있는가 말이다. 노론과 소론의 대립 와중에 노론 세력의 등에 업혀 집권한 영조가 저지른 범죄를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칼 융의 그림자 이론을 소개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그림자의 주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림자의 존재는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무의식은 알고 있다. 자신이 놓치고 있거나 거부하고 싶은 또 다른 나의 존재가 바로 그 그림자라는 사실을!


영조는 탕평책을 선언했다. 노론의 득세를 저지하고 소론을 보호해야 했다. 어느 한 당파로 권력이 쏠리게 되면 리더에게는 독이 된다. 평온할 때야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그런데 소론 일파들이 자꾸 건드린다. 경종 즉, 영조의 이복형을 독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조는 억울했다. 에라 모르겠다. 탕평이고 나발이고 소론의 잔재들을 몰살시켜 버린다. 잔혹한 살인마로 변신!


그리고 영조의 또다른 면. 자신이 아꼈던, 효장세자 빈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눈에 든 궁녀와 합방을 한다. 그런데 영조는 살인과 섹스를 하는 자신에게, 시위라도 하는 듯 같은 살인과 충동적 섹스를 저지르는 자신의 그림자를 대하게 된다. 바로 사도세자다. 궁녀와 환관을 살인하고 영조가 궁녀와 합방하던 비슷한 시기에 대리청정을 하던 아들이 숙빈 임 씨를 임신시킨다. 저주스러운 그림자를 뒤주속에 처박아 버린다.


이성계는 양가ambi-balence감정에 시달리는 인물이었다고. 저자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를 새로운 왕국으로 건설하고 싶은 욕망과 기존의 왕국 고려를 유지보수하면서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욕망에 같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던 인물로 본다.


위화도 회군 또한 잘 짜인 각본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혁명의 도화선이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그 여름에 굳이 압록강까지 수만의 군사를 이끌고 갈 필요가 있었을까. 더군다나 강을 건너 섬에 들어갈 것까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대군을 손에 쥐고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선의 리더가 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정몽주의 대한 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함께 고려를 고쳐서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면 된다는 생각과 정도전이나 이방원의 바람대로 새로운 왕조를 개국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의 대립 말이다. 이렇게 같은 규모의 가치가 마음속에서 대립하게 되면 인간은 우유부단하게 된다. 양가감정의 폐해다.


이성계의 양가감정은 권력의 정점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이방원이 정도전과 이복동생들을 죽여버리는 왕자의 난이 발생했을 때였다. 이성계는 모든 권력을 포기하게 됐으니 말이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숨어들었던 인조는 인지협착 tunnel vision 증후군의 남자였다. 인조반정 자체가 명청 교체기를 무시하고 친명반청을 한다는 노론의 시대착오적인 패거리 정치(group polarization)의 산물이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인조 자체가 왕의 재목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삼배구고두라는 삼전도의 굴욕을 경험한 인조는 인지협착,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 몰두사고 preoccupied thought 등과 같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아들이자 국본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가 추론한 것은 아들의 배신이었던 것이다.


노론 당파에 둘러싸여 있던 인조의 확증편향과 몰두사고는 결국 자신의 아들을 청나라에서 귀국하자마자 독살시킨다. 인조와 소현세자를 다룬 영화, <올빼미> 볼만 하다.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성향의 인수대비와 경계성 성격을 지녔던 성종의 아내 폐비윤씨가 연산군을 잉태했다.  조선 최고의 나르시시스트었던 환국정치의 대가 숙종, 자기 충족적 예언 self-full filing prophecy을 실현하고 계모 문정왕후의 저주 속에서 죽어간 인종, 열등감과 자기 패배의식에 절어있던 선조, 부친 흥선대원군과 부인 민 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의존적 인간의 전형, 고종.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심리적 특성을 조선 왕들의 삶을 통해 들여다보는 일, 재미있다. 생각해 보니 나도 확 층편향, 인지협착, 열등감, 자기 충족적 예언, 나르스시즘, 양가감정, 무의식의 또 다른 나인 그림자 모두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한 행동이나 말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니. 회사 동료들, 친구나 지인들, 부모형제, 자식들과 관계에서 모두 드러났을 것을 생각하니 재미있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보면 유전적 소인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전적 특성이 어떠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 대비할 수 있다.


심리적 특성도 마찬가지다. 규정된 특성들을 하나하나 알고 있다면 스스로 진단할 수 있지 않을까. 이래서 인간은 초라하고 남루한 존재가 되기도 하고 위대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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