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알
3부는 수도원의 조시마 신부가 겪은 에피소드와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장남 드미트리에게 불어닥친 여러 사건의 소용돌이가 긴박하고 흥미롭게 펼쳐진다.
우선, 저자 도스토옙스키는 이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 권의 모든 첫 표지를, <회상록>을 남겼다는 그의 두 번째 아내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예프스카야에게 바치는 성경구절로 시작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복음 12장 24절)"
3부에서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피살된다. 누가 죽였는지는 4부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저자는 그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별도로 각별하게 묘사하지 않았다. 파블로비치의 하인, 그리고리의 아내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가 죽어있는 그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조시마 장로의 죽음
조시마 장로는 알렉셰이의 멘토다.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존경해마지 않는 성직자다. 종교적 교조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진지한 성찰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성직자다. 그래서 모두들 그를 좋아하게 된다. 그는 "삶은 눈물 어린 겸손이 아니라 위대한 기쁨(2권 115쪽)"이라는 말로 수도원을 찾는 대중들을 위로했다. "기적" 보다는 "사랑"을 강조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조시마 장로가 죽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시체가 부패되면서 나는 악취로 장로는 모욕을 당하게 된다. 시체는 부패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장로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신부들은, 과거의 어떤 신부의 시체는 부패는커녕 오히려 빛이 났다는 확인되지 않은 신화를 떠벌리며 조시마 장로의 뒷담화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신제도의 산물인 장로제를 반대하던 신부들은 "의인의 몰락과 그의 치욕을 좋아하는(2권 109쪽)" 것을 넘어서 즐기고 있었다. 신부들 중에서 장로를 뽑아 수도원을 대표하게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조시마 장로는 신부들의 대표였고, 기적이나 신비를 추구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종교를 통해 인간이 기쁨을 누리고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조시마는 새로운 방식의 수도 사제였던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조시마를 존경해 마지않던 20살 청년 알렉셰이의 영혼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다.
조시마 장로와 어느 신사
조시마 장로는 신부가 되기 전, 군 장교이던 젊은 시절에 한동안 연정을 품었던 여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 여성은 어느 군 장교의 약혼녀 신분이었음에도 조시마를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 모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조시마는 여성에게 배신감과 질투를 갖게 되고, 급기야 두 남녀에게 앙심을 품게 된다. 오해가 깊어진 두 남자는 결국,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결투를 하게 된다. 결투 전날, 조시마는 자신의 부하이자 하인에게 어떤 이유로 피가 나도록 따귀를 때리게 되는데, 직후 그는 무언가 깨닫게 된다.
'왜 내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다른 이를 괴롭히게 되었는가?', '이런 삶이 누구에게 이로운 것인가?', '사는 게 왜 이 모양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던 조시마는 이튿날 아침 부하의 발밑에 절을 하며 사과한다. 그리고 다음 날 결투 장소에 나간다. 조시마는 상대편이 먼저 자신에게 총을 쏘게 한 후, 자신이 총을 쏠 차례에 상대편에게 사과한다. 자신의 질투와 시기, 그리고 치기 어린 결투신청까지 모두 잘 못 된 것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군에 사표를 내고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실천은 어려운 일들을 실행하면서 조시마는 여러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다.
사제가 된 후, 조시마의 에피소드를 알게 된 어느 신사가 그를 찾아온다. 신사는 조시마에게 어떻게 그런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 묻고 존경을 표한다. 얼마 후 그 신사는 조시마에게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고백한다. 십수 년 전 총각시절, 흠모하던 한 과부를 살해했지만, 용의 선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다른 이가 용의자가 됐고, 그 용의자는 다른 이유로 급사를 했기 때문에 사건이 종결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는 결혼을 했고, 아이들까지 있다는 것이다. 조시마 신부의 용기 있는 실천에 자신도 자극을 받았노라며, 지금이라도 모든 이들 앞에서 자백하고 죄과를 받고 싶다고 했다. 조시마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동의한다.
그러나 그 신사는 자백을 차일피일 미룬다.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오래전 일을 들추는 것이 맞는 일인가? 자신의 범죄를 뉘우쳤고, 살면서 고통을 받았으니 이미 죄과를 치른 것이 아니냐며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했다. 조시마는 자백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신사는 조시마를 살해하려고 마음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의 지인들을 모두 모아놓고 과거 범죄를 자백한다. 그리고 그간의 충격과 공포, 격정과 환희를 겪은 후에 찾아온 평온한 마음은 그를 쓰러뜨렸고, 그는 삶을 마감하게 된다.
드미트리 체포되다
결과를 말하자면, 드미트리는 경찰에 체포된다. 혐의는 친부 살해다. 모친의 유산 중 일부를 받아내기 위해, 파블로비치가 사는 지역인 스코토 프리고니예프스크에 나타난 드미트리는 그로부터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부친을 죽이겠다고 떠들어대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조시마 장로의 초대를 받아 수도원에 모였던 날 저녁에 파블로비치를 찾아간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두드려 패고 구둣발로 짓밟으며 다음에 찾아오면 그땐 죽이겠다고 말했다. 22살의 여성, 그루셴카를 두고 부친 파블로비치와 연적이 된 후 벌어진 일이다.
애초에 3천 루블이 시발이 됐다. 약혼녀 카체리나가 모스크바에 있는 언니와 이모에게 보내달라고 맡겼던 3천 루블을, 드미트리는 새롭게 사랑하게 된 그루셴카와 모크로예에서 술 마시고 노느라 탕진한다. 약혼녀, 카체리나를 정리하기 위해서도 또, 그루셴카와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도 드미트리는 돈이 필요했다. 목돈이 필요한 상황, 누가 보더라도 그는 파블로비치가 따로 보관하고 있는 3천 루블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 상황에서 파블로비치는 피살된다. 파블로비치가 돈 3천 루블을 들고 있다는 사실과 그가 그루셴카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 모두를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미트리와 스메르쟈코프다. 그런데 스메르쟈코프는 그날 간질로 발작을 하게 되고 며칠간 앓아눕는다. 이제 용의자는 드미트리 한 사람뿐이다.
파블로비치가 살해당하고 난 후 마을의 경찰과 검사, 그리고 판사가 용의자 드미트리를 심문하게 된다. 그들은 앞뒤가 들어맞는 말들만 편집해서 드미트리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드미트리가 범인이 되기에 미심쩍은 진술이나 정황들은 외면한다.
한 알의 밀알
파블로비치가 한 알의 밀알이 된 걸까? 그의 죽음은 드미트리와 그루셴카의 사랑을 확고하게 해 줬다. 경찰과 검사와 판사가 드미트리를 체포하기 위해 들이닥쳤는데 그루셴카는 자신도 벌을 달라고 한다. 드미트리는 죄가 없으며 죄가 있다면 자신에게 있다고 절규하는 것이다. 그녀는 5년 전 폴란드 장교에게 마음을 주지만 그 장교는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그는 상처한 후 다시 그녀를 찾았다. 그것이 5년 만이었다. 장교는 그루셴카가 모아둔 돈에 관심이 있는 형편없는 남자가 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드미트리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가 저질렀을지도 모를 범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곁을 지킨다.
그루셴카의 후견인 노릇을 해온 거상, 삼소노프는 그루셴카에게 충고했다. 아들, 드미트리보다는 아버지 파블로비치를 선택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말이다. 단, 파블로비치를 선택하면서 반드시 그의 재산 일부를 그루셴카에게 양도한다는 각서를 받으라는 언질을 잊지 않는다. 삼소노프의 충고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관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없는 놈은 영혼이 맑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