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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Nov 21. 2021

짧은 여행

긴 여운

산굼부리 주변 성미가든에서 보기로 했다. 식당은 닭 샤브샤브로 유명한 맛집이다. 야채와 함께 포를 뜬 닭가슴 살이 날 것 그대로 나오고, 같이 제공되는 버너에 얹힌 냄비엔 물이 끓고 있다. 먹기 좋게 손질된 닭가슴살을 끓는 물 속에 살짝 담갔다가 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깻잎이나 상추에 싸서 먹어도 좋다. 제주 특산물인 밤막걸리나 좁쌀 막걸리 또는, 한라산 소주를 반주로 고기를 건져 먹다보면 코스의 두번째 요리, 삶은 닭이 통째로 나온다.


K와 그녀의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나와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자리에 모였다. 우연히 두 가족이 같은 날 제주도로 여행을 왔던 것이다. 저녁이나 함께 하자고 모인 자리. 막상 무슨 할 이야기가 있을까 걱정하면서 자리에 가기 전, 스스럼없이 생각나는데로 편하게 얘기하는 취향(?)을 지닌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 친구 어머니가 좀 편찮으세요. 병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 마세요.”

"알았다. 내가 그런 얘기를 왜 하겠니?"


닭가슴살을 데치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냄비 속 국물은 육수가 되어 희뿌윰해져 간다. 간단한 인삿말 말고는 할 이야기가 없는 상황,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물론, 정적을 깬 쪽은 나의 어머니였다. K의 어머니에게 말을 건 것이다.


"그런데, 혹시 어디가 안좋으세요?"

"아, 네 그냥 몸이 좀 안좋아서요. 제 얼굴이 말이 아니지요?"

"아니요. 안색이 좋아보여서 여쭌거예요. 많이 드세요. 건강이 최고지요."

“예 •••”

"그런데, 어디가~"


화장을 예쁘게 하고 나온 K의 어머니를, 수년 전 K의 신혼집에서 본 기억이 있다. 예상보다 젊고, 아름다웠으며, 말없는 미소가 인상적이던 중년의 여인으로 말이다. 몇 년이 흐르고 갓 환갑을 넘긴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가 병색을 무색케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말허리를 자르며, 아버지가 얘기를 꺼낸다.

"그래 어디어디 구경하셨어요?"

"네. 그냥 콘도에 주로 있었어요. 바다 구경이나 좀 하고요. 호호.” K가 말을 받았다.


아버지와 K 마치 전에도  적이 있었던 것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운과 이야기가 무르익으면서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나는 왠지 어색한 분위기 되면 내가 나서서 무슨 말이든 해야 될 것만 같아. 허허."

"아! 아버님, 저도 똑같애요. 아무 말이든 해서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야 될 책임감 같은게 느껴지거든요."

"그럼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좋은 기분을 다같이 나누면 좋지 하하."

"그렇구나. 어쩌면 생각이 저하고 이렇게 비슷할까요."


 "다음번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생보다 우둔해 지리라. 가능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을 것이다."라는 구절은 나딘스테어의 시, <인생을 다시 산다면 - If I had my life to live over->의 한 대목이다. 2013년, 노에미 르보브스키 감독이 주연을 겸한 영화, <까밀, 리와인드>를 보다가 떠올랐더랬다.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그리고 이제 이 영화와 시는 K의 어머니와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됐다. 삶은 무상하기에 역설적으로 순간 순간은 영원으로 수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다. 영화 속 까밀은 (다행스럽게도?)철든 딸과 함께 절망 속에서 엑스트라 배우로 살아가는 중년의 이혼녀다.


그녀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매일 마시는 위스키와 절망에 쩔어 결국 기절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그녀가 깨어나보니  24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던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몸과 정신은 중년의 모습 그대로인 채다. 10대의 소녀로 돌아간 그녀의 병실에서, 놀랍게도 돌아가신 엄마와 아빠가 그녀를 당시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다. 무뚝뚝한 엄마는 철부지 소녀, 까밀에게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맘에 안들때도 있지만, 엄마 아빠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까밀, 너는 우리의 딸이니까. 지금은 멋모르는 사춘기 철부지 소녀이지만, 무엇보다 넌 소중한 인격체란다."

24년 전 당시의 일상을 살고 있던 엄마와 아빠는,                                          갑자기 철든 딸의 모습이 영 어색하다

다시 경험하게 되는 이혼한 남편과의 소년소녀 시절 첫사랑도, 좋아하던 물리선생의 격려도, 흐르는 시간 앞에서 다시 과거가 된다. 예정된 운명은, 까밀을 중년의 현재로 되돌려놓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직 곁에 있는 엄마는 24년 전 그대로 까밀의 눈 앞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질 예정이다. 그녀는 다시 엄마와 아빠를 만난 기념으로 사진도 찍고, 카세트로 엄마의 목소리를 녹음하기도 한다.


"따뜻해서 왔구나. 꼬마 꿀벌아 네 집을 찾아가렴. 행운을 빈다." 


집 창틀에 갇힌 꿀벌에게 말하면서 사다리 위의 엄마는 24년 전처럼 쓰러진다.


다시 맞았던 16살의 소녀, 까밀은 이혼한 남편과의 애틋했던 첫사랑, 영원할줄 알았던 부모님의 애정, 물리선생의 따뜻한 격려와 같은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던 것들의 의미를 다시 곱씹게 된다. 영화 속 까밀은 16살의 모습이나 현재의 모습이나 모두 중년의 나이든 모습 그대로다. 영화를 보는 모두에게 지금, 여기에서 잘 살라는 충고의 방식을 감독은, 매우 프랑스적인 방식으로 창안해 냈다.


현재를 퇴행적으로 살아가던 까밀에게, 기적은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딸과 그리고 까밀 자신과 고리를 맺고 살아가는 타인들과 현재의 삶을 만끽하라고! 절망할 시간은 없다고!' 말이다. 우리의 삶은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충전된 배터리가 뿜어내는 에너지로 달리고 있지 않느냐면서.


성미가든에서 세번째 코스로 닭죽을 먹었다. 포식 후 식당을 나서면서 모두 차를 한잔씩 했다. 제주도 내륙 한가운데에서 추적거리는 비를 맞으며 두 가족은 그렇게 헤어졌다.


불과 몇 년 전 식당에서 만나 아름다운 추억을 제공했던 내 아버지와 K의 어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러나 기억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삶의 자양분이 되어 내 삶을 살지운다.


"가능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을 것이다." 노에미 르보브스키와 나딘스테어가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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