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 & 행운
“자네들 어디까지 가나?”
‘굵은 저음의 주인공이 누군가’하고 뒤를 돌아보니 검은색 세단의 운전석 창으로 어떤 아저씨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1990년 어느 가을날이었다.
휴가 중이던 스물두 살의 K는 부대에 복귀하기 전 나들이를 계획하고 친구를 만났다가, 남양주에 있는 한 사찰에서 공양주로 봉사중인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기로 했던 것이다.
검은색 세단의 아저씨가 그들에게 말을 건 것은, 절에서 기도하고 친구의 모친이 차려준 산채 비빔밥을 한 그릇씩 비우고 나서, 절이 있던 산자락에서 비탈을 따라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네 버스 타는 곳까지 가려고요.”
“타. 아저씨가 자네들 가는 곳까지 태워다 줄 테니”
둘은 뒷 좌석에 올랐다.
“어쩐 일로 젊은 친구들이 절에 왔지?”
중년 아저씨의 물음에 K가 대답했다.
“이 친구 어머니가 공양주로 계셔서 뵈러 왔어요.”
“어머 그래요?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신 거네.”
차의 조수석에는 아저씨의 아내가 타고 있었다.
“젊은 분들이 착하게도 생겼어요.”
“허허 그러게”
중년의 남자 부부와 고급 세단, 이제 갓 스물을 넘긴 K가 그려보는 미래의 성공한 삶이었다.
“이 아저씨가 살아보니까 말이야. 젊었을 때는 뭐든지 도전을 해봐야 된다는 거야.”
“네~”
“자네들한테 꼭 해줄 말이 있어.”
“이이는, 왜 젊은 사람들한테 또 잔소리하려고 그래요. 우리 애들도 안 듣는 잔소리를.” 아내의 핀잔이다.
“자네들 꼭 10년이야 무슨 일을 하든지 한 가지를 정해서 10년만 꾹 참고 하면 성공하게 되는 거야.” 아내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려주는 아저씨의 말에는 진정성 못지않게 자부심이 실려 있었다.
“뭐든 십 년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어. 자네들이 뭘 선택하든 그건 상관없어. 10년을 꾸준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거야.” 까맣게 그을린 아저씨의 얼굴에서 눈만큼은 유독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네”
22살의 K는 대답하면서 생각했다. ‘십 년이라!’
검은색 세단을 타고 이동하던 약 반시간은, 뭐든 10년 동안 노력하면 못할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성공한 사업가가 직접 젊은이들의 귀에 대고 한 진심 어린 충고에 공감했던 것일까. K에게 십 년은 삶의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 십 년이 지나고 또 다른 십 년이 지나가려는 즈음에도 K에게 성공은 남의 일로만 여겨졌다.
그러던 어느 날 교보문고에 들렀던 그는 책 한 권을 발견한다.
맬컴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였다. 책에는 18년 전 고급 세단 아저씨가 말한 10년의 법칙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저자는 전문가가 되는데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 3시간씩 10년. 전문가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인 것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아무도 갖지 않던 의문을 제시한다. 누구나 10년을 노력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가? 그리고 누구나 한 분야에서 10년을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가?
답은 '아니올시다’였다.
질문은 계속된다. 이른바 '아웃라이어'라고 하는 특별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일반인들은 그야말로 개인의 자질과 지능이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그들이 "어떤 문화와 어느 세대 출신인지, 어떤 특별한 가정교육의 수혜자들인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저자가 통계와 역사에서 확보한 진실을 말하자면 흔치 않은 기회와 사회 유산의 혜택을 차지한 사람들이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았다는 거다.
맬컴 글래드웰의 연구는 기존의 막연한 성공의 법칙, 이를테면 개인의 자질이나 지능, 불굴의 노력과 같은 것들이 핵심적 성공 비결이라고 여겼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었다.
그런 잣대라면 새벽부터 밤중까지 격무에 시달리는 수백만 명의 직장인들이 모두 성공해야 맞는 것 아닌가. 성공과 실패는 어쩌면 행운과 불운의 차이만큼이나 우연에 좌우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K는 영어회화 공부를 10년 했고, 힘들어 죽을 것 같던 무역회사에서의 직장생활도 10년을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정도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거친 과정이다.
그러니 사업을 시작해 이룬 K의 작은 성공은 20여 년 전 검은색 세단 아저씨의 충고에도 빚이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용기와 결단, 적절한 기회의 포착, 금융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조화, 즉, ‘운'까지 작용한 결과였다.
성공은 교만으로 이어지고 실패는 낙인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사실 성공은 절반이 행운의 결과라고 보는 편이 적절한 듯하다. 좋은 운을 맞았다면 언제든 나쁜 운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검은색 세단 아저씨 말대로, 한 조직에서 10년을 버티려면, 그리고 한 가지를 10년 꾸준히 연마하려면 지능보다는 인성과 성격이 좋아야 한다는 진리를 <아웃라이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개인의 경험과 한 저자의 고증을 통해 K가 깨닫게 된 것은 결국, 준비된 자에게 운까지 따를 때 ‘특별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