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별식
2020년 3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살아생전의 또렷하던 흔적들은 처처에 고루 배어있다. 이별한 지 이미 일 년이 지났고 곧 이 년째가 된다.
3년 전 아버지가 호주에 왔을 때 집 뒷마당의 웃자란 복숭아나무 가지를 함께 쳐내면서 그도 나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가지가 다시 돋고 잎이 나, 열매가 맺히면 그때도 아버지가 살아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가까운 미래의 일조차 입밖에 내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1년 반 만에, 호주 집에 왔을 때 내 가슴을 아리게 한 것은, 잘린 가지들이 다시 잎을 무성하게 피워내고 있던 복숭아나무였다.
딸, 바니는 4학년, 아직도 귀엽기만 하던 시절 한국에서 온 할아버지와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저녁마다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저녁 먹고 둘러앉아 윷놀이와 보드게임을 번갈아 하며 웃고 떠들던 모습들, 뇌리 속 선명한 그림으로 남았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나 바니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호주에서 급하게 엄마, 오빠와 함께 귀국한 바니는 울지도 웃지도 않고 내내 희미한 미소만 지을 뿐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에겐 이승에서의 마지막이 될 밤을 지키면서도 바니는 그랬다.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몇 주 전, 바니는 노트북 컴퓨터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컴퓨터에 연결한 패드 위에 종이에 그리듯이 하면 섬세한 터치까지 묘사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면서...
온라인으로 주문한 그 키트는 일주일 만에 도착했다. 바니가 컴퓨터에 처음 그린 그림에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들어있었다.
2년 전 봄, 아버지는 화장됐고, 유골은 전분으로 만든 단지에 담겼다. 그리고 나는 선산에 올라 바니의 손을 꼭 잡고 단지가 땅 속에 묻히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2년 뒤 바니의 그림 속에는 한 소녀가 할아버지의 묘석을 발견하는 장면이 들어있었다. 바니는 그렇게 할아버지를 추모하면서 아빠의 마음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