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태산이높다하되 Jan 05. 2022

관계와의 전쟁

느리게 피었다가 순식간 져버리는

2009년 가을, 환갑을 맞은 어머니의 자궁에 축구공만 한 혹이 생겼다. 이른바 '경계성 종양'. 수술을 해서 종양을 떼어내 조직검사를 해야 양성인지 음성인지 알 수 있다고 의정부 카톨릭 대학 성모병원의 산부인과 담당, 젊은 남자 의사는 말했다.


그리고 더 큰 종합병원으로 가는 편이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 의사는 "저도 할 수는 있지만 좀 더 큰 병원이 낫지 않겠어요?"라고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조언이었다. '자신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미 종합병원에서 다른 종합병원으로 가는 편이 낫겠다'라니.


서울대학교 병원의 예약 담당자와 통화했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데만 석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일단 예약을 했다.


그리고 의사들과 인맥이 좋은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친한 친구가 주는 도움의 효과는 기대보다 확실하고 신속했다. 산부인과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획득한 명의를 소개받았고, 즉각 검사를 받게 되었으며, 몇 주 뒤 수술도 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지위와 신분의 격차는 위기 상황에서 드러났다. 원래 지위status란 말은 라틴어 statum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한다. 의미는 '서다stand'이고 이것이 '신분'과 '지위'를 의미하는 말로 발전한 거다.


어느 자리에 서있느냐에 따라 세상을 혹은 타인을 내려다보기도 올려다 보기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물리적 상태를 표현하던 말이, 상징과 은유, 정서를 이용해 인간의 가치를 내포한 사회, 정치적 용어로 발전한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뜻밖에도 어머니의 산부인과 질환이 당시 내가 사회에서 '서있는 자리' 즉, 나의 신분이나 지위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하는 트리거가 될 줄은 몰랐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들의 표정이 한없이 환하던가, 점점 어둡고 무거워지던가, 동전의 앞 뒷면처럼 두 가지 단면으로 보이게 되는 이유를 알게 된 사건이기도 했다.


생각은, 맑은 물에 물감 한방울이 떨어지며 번지는 것 처럼 혼란스레 번져갔다. 결국, 생각은 당시 우리사회에서 가만히 순서를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것은 바보짓이라는데에 까지 이어지고 나서야 일단락됐다.


 브뤼에르(1613-1680)라는 프랑스의 모럴리스트는 귀족들의 삶을 관찰한 , <사람도 가지가지>라는 저서를 남긴 것으로 명한 사람이다.

<필요한 사람인가> 표지, 저자 중에 한 명이 라 브리예르다!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다. 주군의 총애를 받는 신하들의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그들의 미움을 사도 상관 안한다. 그저 당신의 주군과 의무를 사랑하며 살 뿐이다. 그래, 그래서 당신이 망한 것이다”


책 속의 저 문장에서 ‘주군’을 ‘사장’으로, ‘신하들’을 ‘임원들’로 바꾸고, ‘당신’을 ‘나’로 바꿨더니 이해가 쉬워졌다. 내가 정직했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타인, 특히 임원들의 ‘비위’와 ‘미움’을 신경 안쓰고 지냈던 것은 확실했다.


이런 저런 인맥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지 않은 것도 내 책임이었다.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 말고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강남에서 직장을 다니면서도 의사 친구나 선배 하나 만들지 못한 나는 '정직한 사람이 망한다'는 라 브리예르의 조롱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어머니가 입원해 정밀 검사를 받은 직후였다. 오래간만에 소주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자는 그에게 술자리는 차일로 미루기로 하고, 대신 그간 있었던 일을 말했다.


여차저차 한 덕에 곧 수술을 받게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로 이야기를 끝낼 참인데, 선배의 대꾸는 나의 기대와는 한참 어긋나 있었다.


위로나 격려를 기대하고 있던 나에게 그는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너 때문에 수술을 기다리던 누군가가 밀려난 거잖아!"라고 말했다. 인맥을 동원해 저명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말을 마치자마자 선배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섭섭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동시에 맞는 말이지만 섭섭했다. 아직은 어머니의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때 들은 말이었으니까.


그 선배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어머니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종양이 음성으로 판명 나고, 회복을 했으며 안정을 찾고도 1년쯤 지난 뒤였다.


격앙된 목소리로 안부를 생략한 채 다짜고짜,

"혹시 아는 기자나 경찰 있니?"

"무슨 일인데?"  

"어, 우리 직원이 물건을 배달하다가 사고를 냈는데 그 친구가 무면허라서 말이야. 어디 부탁할 데가 있어야 말이지 그리고 낮술까지 조금 마신 것 같아. 네 친구 있잖아. 방송국 기자. 어떻게 부탁을 좀 해볼 수 없을까?"

 

1년 전에 공정과 기회의 균등을 들먹이며 내 낯을 뜨겁게 달구었던, 자신이 한 말은 까맣게 잊은 것일까? 완벽한 '내로남불'이었다.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1년 전에 내게 내뱉었던 말이 부메랑이 되어 내 귀전을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2022년 첫날 그 선배로부터 새해 인사를 받았다. 남들에게도 똑같이 만들어서 뿌렸을 것이 분명한 모바일 그림엽서에는 호랑이처럼 생긴 까만 짐승이 점점 빠르게 달리는 동영상이 담겨 있었다.


그에게 나는 이제 one of them이 되었다. 한때 나는 그에게 the first of them이었다. 내가 그를 the first of them으로 대했기 때문이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를 소홀히 대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선배라고 믿었다.


조언이 고언(苦言)이어도 달게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그리고 무면허 사고 건에 대해서도 결국,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벌금이라도 줄여볼 요량으로 알아볼 만큼 알아봐 주었다.


2012년 어느 토요일 오전 라디오 방송에서,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배우 최민식이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한 코너인 '토요일에 만난 사람'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영화 포스터, (주)쇼박스


"저 같아도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고 급하게 큰 병원에 가야 한다면 주변에 아는 사람부터 찾게 될 것 같아요. 왠지 부탁하면 더 잘 봐 줄 것 같고 그러니까요. 또 그냥 순서대로 기다려서 치료를 받으시게 하지는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도덕이나 공정과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나온 말이었는데, 우연히 듣게 된 그의 진솔한 표현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모든 인간사의 밑바닥에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정서가 한줄기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도덕적이고 고결한 태도로, 합리성과 진실한 마음을 갖추고, 관습이나 허영이나 격식 같은 상류사회의 소도구 없이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만 만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대가로 우리는 결국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