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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Dec 26. 2021

삼정의 문란 & 진주민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헌종, 철종)

안동 김 씨 천하

헌종이 즉위할 때 나이가 8세였다. 순조 비, 순원왕후 김 씨의 수렴청정은 불가피했지만, 노론의 후예로 국구가 되어 세도를 부리던 김조순의 아들들이 더욱 강력한 권력을 소유하게 된다. 신하들의 권력을 권력을 틀어쥐게 되면 백성들이 핍박을 받게 된다.


전정, 군역, 환곡 등 이른바 삼정의 문란은 극에 달하고, 왕의 명령은 지방의 수령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연기처럼 사라진다. 왕은 권력의 사각지대에서 메아리 없는 독백만 되뇔 뿐이었다. 실제로 안동 김 씨 세력에 제동을 걸던 헌종에게는, 신하들의 세력에 대항하던 왕의 최후가 그렇듯이 비극적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해사옥 & 김유근의 행각

천주교(서학)는 사학을 규정되어 탄압의 대상이 되지만 종교의 특성상 교세 확장은 중단 없이 계속된다.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과 유럽의 신부들, 그리고 한국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다가 처형된다.


노론 지배층은 서학(천주교)이 민중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가는 근본적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세계의 동향이나 주변국들의 서학에 대한 태도나 대응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노론 계열의 순원왕후 안동 김 씨는 김유근 등 오라비들과 함께 천주교의 외국인 신부들과 신도들을 제거하고 교세가 확장되는 것을 막는 일 외에는 다른 대책은 전혀 강구하지 않았다.

 

95쪽

김유근은 김조순의 맏아들이다. 순조 27년 평양감사에 제수되었는데, 부임 길에 서제부(庶弟婦), 그러니까 이복동생의 아내와 첩을 동반한다. 기이한 행차가 아닐 수 없다. 최고의 실세라는 자의 공직에 임하는 자세가 이 모양이었다. 조경진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김유근이 첩까지 데리고 부임지로 간 일을 문제 삼자 대리청정 중이던 세자는 오히려 조경진을 위리안치시키고 김유근을 위로한다. 안동 김 씨의 세도가 이런 지경이었다.


안동 김 씨 세력을 견제하던, 헌종 23세에 급사하다

수렴청정을 당하던 헌종이 15세가 되자 친정을 시작한다. 노론의 후예, 안동 김 씨 천하가 된 상황을 타파하고 싶었던 왕은 주요 보직에서 안동 김 씨들을 배제한다. 우선 수도방위를 맡던 총융청을 고쳐 총위영으로 만든 다음 군사 일부에게 궁궐의 방위를 맡게 하고 5 영의 대장을 안동 김 씨가 아닌 인물들로 교체해버린다. 주요 보직에 안동 김 씨를 배제하고 노론에 의해 유배 중이던 추사 김정희 등을 석방한다.


추사 김정희는 노론 시파 김노경의 아들이었는데, 안동 김 씨에 의해 밀려난 경주 김 씨이기도 하다. 때문에 명문가에 과거에 급제했으며 어사, 승지까지 역임하고도 안동 김 씨 세력이 극렬 탄핵하는 바람에 벼슬에서 소외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북청으로 유배생활까지 하게 된다.


헌종이 안동 김 씨 세력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이 의심에서 점차 사실로 굳어져 가던 상황에서 올 것이 오고야 만다. 젊디 젊은 왕은 23세에 뚜렷한 병명도 없이 요절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야사에서는 지나치게 호색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왕성한 20 초반의 나이, 호색과 죽음 사이에 그토록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67)"라는 촌평을 덧붙이고 있다.


헌종의 불행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헌종의 어진이 화재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강화도령, 철종

저자, 박시백은 철종 8년에 있었던 인사에서 추렸다며 그해 1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 인사 목록을 제시한다.


"김병학 이조참판, 김병기 호조판서, 김병주 홍문관 부제학, 김병교 형조판서, 김병국 예조판서, 김병국 우참찬, 김병교 예조판서, 김병국 병조판서, 김병학 대사헌, 이외에도 철봉 후반기에 판서급 이상에 이름을 올린 병자 돌림 안동 김 씨들은 많다. 김병지, 김병덕, 김병윤, 김병직, 김병필, 김병집, 김병시(95쪽)"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철종은 안동 김 씨 천하가 된 조선에서 임금이라는 지위에 앉은 허수아비 왕일뿐이었다.


삼정의 문란

양반(兩班)은 조선 초기만 해도 동반(文), 서반(武)의 벼슬살이를 하는 공무원 신분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양인 개병제라고 해서 모든 일반인들은 병역의 의무를 부담했다. 그런데 후기로 가면서 벼슬을 준비하는 사대부의 자제들과 서원의 유생들이 모든 조세 의무에서 제외된다.


양반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농사짓는 일반 백성의 숫자는 급격히 줄면서 전정, 군역, 환곡 이렇게 세 가지 세금 부담을 일반 농민들이 부담하는 상황이 된다. 이 중 자영농들 일부가 부농이 되면서 양반의 권리를 매입하면서 다시 양반의 숫자가 늘고 세금을 부담하는 농민들의 숫자는 줄게 된다. 죽은 사람에게 군역을 부담시키는 백골징포, 어린아이에게 세금을 물게 하는 황구첨정에 이르게 되고, 삼정의 문란으로 지니계수가 점점 1로 가까워지는 상황, 민란은 예고된 재난이었다.

105쪽

진주, 성주, 개령, 익산, 함평, 장흥, 부안, 은진, 여산 등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삼남 일대는 민란의 불길에 휩싸인다. 고을의 수령과 아전들, 그리고 이들과 결탁해 치부에 열을 올린 토호들이 농민들에 대해 저지른 가혹한 수탈의 결과였다. 철종이 삼정 이정청이라는 기구를 설립해 삼정의 문란을 시정하려고 했으나 그 기구를 운영하는 주체가 모두 시정과 개혁의 대상인 노론 대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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