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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Jan 10. 2022

불안

처방 5가지(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안)

알랭 드 보통은 스위스에서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캠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졸업은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그는 23살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베스트셀러를 세상에 내놓으며 세계적 작가로 부상한다.


불안의 원인 5가지(사랑 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를 제시하고 독자의 동의를 구한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해법 5가지를 내놓는다. 10개의 챕터를 읽는 동안 독자는 불안을 극복, 또는 우습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된다.


첫째, 철학이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을 찾은 알렉산더 대왕이 '당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받고서 한 대답이 화제가 된다. '좀 비켜서 주시오, 당신이 해를 가리고 있지 않소.'


부와 명예, 권력 모두를 한 손에 움켜쥔 왕에게 전혀 위축되지 않은 현자에게 알렉산더 대왕은 그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철학은 모든 것의 근원을 파고든다. 현상에 반응하며 사는 보통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유다. 샹포르라는 철학자는 "여론은 모든 의견 가운데 최악의 의견이다.(152쪽)"라는 말을 남겼다. 직관, 감정, 관습에 의존해 형성된 여론에 대한 회의를 제대로 표현한 말이다.  


철학적 염세주의자였던 샹포르는 여론을 무시하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지도 잘 알고 있었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태도로, 합리성과 진실한 마음을 갖추고, 관습이나 허영이나 격식 같은 상류사회의 소도구 없이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과 만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그 대가로 우리는 결국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156쪽)" 


쇼펜하우어도 여기에 한마디 보탠다.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156쪽)" 내부의 양심과 논리에 따라 사는 것은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예술이다.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 베넷가의 둘째 딸인 엘리자베스가 명문가 빙리의 집을 찾았다가 그의 사촌 다아시와 마주친다. 그녀가 자리를 뜨자, 빙리의 여동생, 캐롤린이 고개를 저으면서 오만한 표정으로 다아시에게 말한다. "음.... 다아시! 리지(엘리자베스)의 치맛단에 지저분하게 묻어있는 흙을 봤어요?" 


캐롤린은 엘리자베스의 인격이나 도덕성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덕목에는 관심이 없고 그녀가 그저 자신보다 가난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집 카펫을 더럽히게 될지도 모르는 엘리자베스의 치맛단을 들출 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럴 때 관객의 눈에 보이는 것은 치맛단의 흙이 아니라 빙리 여동생의 천 박 함이다. 


"소설가(또는 감독)는 사회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표준 렌즈, 즉 부와 권력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꾼다.(170쪽)" 


그래서 우리는 엘리자베스의 표정이나 희미한 미소와 몸짓이 -예술의 렌즈를 통과하자- 확대되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다른 인물들보다 숭고한 가치관의 소유자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정치다. 전통이나 관습, 지배 이데올로기는 모두 사회나 국가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든 잠깐의 규칙에 불과하다. 저자는 과거 2천 년 동안 변화해온 여성의 지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귀띔한다.

버지니아 울프, 위키백과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1929년)에서 소개한 에피소드를 읽게 되면 정치적 감각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그녀가 캠브리지 대학의 도서관에 입장할 때 관리인인 젊잖은 신사가 나타나 제지한다. 다른 재학생 남성과 동행하거나 소개장이 있어야 입장할 수 있다면서.


그런데, 버지니아 울프는 "도서관에 입장이 허용되지 않다니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고 묻는 대신 "나를 들여보내지 않다니 도서관 문지기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하고 물었다.(259쪽) 


수치를 느끼며 자신에게서 문제를 발견하던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그녀는 고도의 정치적 감각을 통해 당시 통용되던 관념에 도전한 것이다.


그녀는 이 일을 계기로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의 역사를 연구했다. 


"여자는 늘 가난했다. 단지 200년 동안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다. 여자는 아테네의 노예의 아들보다 지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라고 말하며 여자에게 존엄만이 아니라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위한 구체적인 정치적 요구를 하기에 이른다. "1년에 500파운드의 소득"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261쪽) 


넷째, 기독교다. 종교가 갖는 특성은 짧은 세속의 삶 뒤에는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기독교인들에게는 죽음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죽음도 영생의 한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필립 드 샹파뉴, <바니타스> 1671년,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전도서 1장 2절, 전도서는 16세기 vanitas art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용기를 얻어 사회의 기대 가운데 정당성이 없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해골 앞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억압적인 의견도 위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278쪽)"


종교가 우리에게 권하는 성찰에서 우리는 지위나 권력 또는 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여유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평범한 삶에 대한 거부는 공동체가 건전하지 않을수록 정도가 심해진다. "공동체가 부패할수록, 개인적 성취의 유혹도 강해진다.(306쪽)"


다섯째, 보헤미아다.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보헤미안 가운데 한 사람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시 근처 월든 호수의 북쪽에 자신의 손으로 지은 통나무집으로 이사했다. 그의 목표는 외적으로는 평범하지만 내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다.(334쪽)"


그가 주장한 것은 "사람은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해진다.(337쪽)"였다. 보헤미안의 삶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일체의 부속품들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헨리 소로우 같은 보헤미안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주장이나 사상은 항상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보헤미안들은 결국, 부자나 권력자들을 조롱하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조롱하고 희화화해야 자신들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다이즘'을 창시한 트리스탄 차라는 1915년 취리히에서 "이제 똑똑한 사람은 표준적 유형이 되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백치다. 다다는 모든 곳에서 백 치적인 것을 확립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349쪽)"


부르주아들로 대변되는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에 대한 공격은 아무래도 실패로 끝나는 듯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르주아들이 보헤미안들의 삶이나 태도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안>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 겪을 법한 오만이나 편견, 그리고 권태나 방종에 굴복하지 않은 매우 드문 유형의 인재로 발전한 듯하다. 구글을 뒤져보니 그는 철학박사이기도 하다. 지금은 런던에서 살고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 또한 공교롭게도 역사를 전공했다. 역사학을 깊이 있게 공부한 사람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발견하는 눈을 갖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보통이 유발 하라리처럼 자국의 모순적 정치 행태를 비판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입장을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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