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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Mar 16. 2022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제 4장 상처를 딛고 올라서라; 평정심 고양기

늙은 철학자의 평정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421년 전인 기원전 399년, 민주국가 아테네에서는 칠순이 넘은 철학자가 독배를 받는 형벌에 처한다. 제우스를 부정하고 불온한 형이상학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친 혐의였다. 검찰관 아니토스는 이 늙은 철학자를 불경죄로 기소했고, 500명이나 되는 배심원들이 재판에 참여했으며, 깻잎 한장 차이로 노쇠한 피고는 결국 유죄 판결을 받게 된 것이다. 늙은 철학자는 소크라테스였다.


친구들은 소크라테스를 살리고자 은밀한 계획을 세운 다음, 그를 감옥에서 빼내 어디든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한다.


"소크라테스는 슬며시 웃으며 친구들의 사랑에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달아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물리적 위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가짐만 중요할 뿐이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위에, 저 위에 있어서 두려움이나 고통이나 독배로 해칠 수 없었다. 심지어 높이 나는 신들만큼이나 범접할 수 없었다.(129)"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루이 다비드 1787년. 위키피디아

소크라테스가 사형선고 후에도 근심이나 고통없이 죽어간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진정한 철학자는 자신의 철학으로 죽음을 훈련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뿐." 이렇게 알듯 모를듯한 수수께끼같은 말만 남겼을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목격한 파이돈phaidon이라는 철학자가 플라톤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풍자의 대가였다는 것이다. 풍자를 위한 세가지 발명품이 있는데 그것은 패러니parody, 암시insinuation, 아이러니irony 이렇게 세 가지라고 한다.


투덜이 시인, 히포낙스의 풍자

기원전 6세기에 박하와 썩은 생선으로 연명하던 히포낙스hipponax라는 시인은 세상없는 투덜이였던 모양이다. "여자가 남자를 굉장히 기쁘게 하는 때가 두 번 있다. 바로 그의 결혼식날 밤과 그녀의 장례식이다.(135)"라는 말을 풍자적 유머라고 남긴 것을 보니 말이다. 여성들이여 모욕감을 느꼈다면 마지막 단락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보시라!


소크라테스는 셀프 풍자의 대가였다고 한다. 저자는 <메논>의 한대목을 소개하면서 그의 현명한 풍자비결을 밝히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젊은 제자 메논에게 '현명한 사람도 미덕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런데 메논은 확신에 차서 수학자인 고르기아스Gorgias는 미덕이 뭔지 안다고 대답한다. 그때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고르기아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잊어버렸다네. 그러니 자네가 내게 상기해줄수 있겠나? 아니, 그냥 메논 자네는 미덕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말해보게. 자네와 고르기아스는 틀림없이 같은 생각일테니까.(136)"


이 대화에 사용된 풍자는 두 가지의 암시이다. 우선 첫번째 암시는, "첫번째 점: 현명한 사람은 미덕을 정의할 수 없다. 두번째 점: 고르기아스는 미덕을 정의할 수 없다. 결론: 고르기아스는 현명하지 않다.", 그리고 두번째 암시는 "첫번째 점: 고르기아스는 현명하지 않다. 두번째 점: 메논은 고르기아스와 같은 생각이다. 결론: 메논 역시 현명하지 않다.(136)"


소크라테스의 풍자에는 암시와 패러디, 그리고 아이러니까지 모두 사용되었다. 고르기아스와 메논이 현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장치를 두었지만 메논이 알아차리지 못하자 패러디를 사용한다. 소크라테스의 문학적 모방, 즉 패러디는 메논의 순진무구함을 과장하고 바보로 희화화한다. 그리고 아이러니를 사용한다. 스승인 그가 거꾸로 제자인 메논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것이다.


풍자는 원래 남들을 비웃으려고 고안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들을 비웃으면 우월감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지긴 하지만 결국 남들을 부정적으로 판단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지고 혈압이 상승하여 심근경색과 뇌졸중 발병위험이 높아진다는 과학연구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연구결과, 풍자의 방향을 바꾸면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유익할 수 있다고 드러났다. 단기적으론, 우리 자신을 비웃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신경-오피오이드(아편 유사물질)가 분비되고 혈중 코르티솔 수치가 떨어지며 스트레스가 낮아진다. 장기적으론, 우리 자신을 비웃으면 불안감이 줄어들고 정서적 회복이 길러지며 타인과 유대도 잘 맺게 된다.(140)"


이제 우리는 히포낙스의 풍자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 여성을 비웃었던 농담으로 자신이 우월해졌다고 생각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자기 자신을 더 아프게 했을 뿐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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