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피싱 피해 3일차

싱글맘의 하루

by 소화록

직장에서는 무사히 전일제 강사를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감님께 번호를 넘겨받았으니 은행업무가 없는 주말에 여유될 때 학급운영 및 교과진도, 생활 안내를 인수인계 드릴 예정이다. 3일차인 오늘 아침에 눈을 떠서 일어나는 순간이 제일 두렵다. 누구보다 빠르게 은행에 가서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1시30분까지 경찰서에 가서 진술조서를 쓰고 사건사고진상확인서를 떼야 하기 때문에 그 전까지 피해를 입은 은행들에 가서 예금거래 내역서 혹은 송금확인서를 떼야 한다. 우선 아이를 등원 시키러 가면서 토스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보이스피싱 사고 상황을 설명하며 경찰서에 제출해야 하니 거래내역서를 요청했다. 메일로 바로 보내준다고 했다. 정신이 딴 데 팔려 앞 차의 급정거를 뒤늦게 보고 급정거를 하느라 아이가 깜짝 놀라서 울기도 했다. 이렇게나 마음이 심란하다. 이체를 보낸 계좌들 중 범죄와 상관없는 일반인 계좌들이 있다. 상대계좌 지급정지요청으로 인해 이분들의 계좌도 막혀있는 터라 일반인 분들 중 은행을 통해 연락이 와서 받은 돈 그대로 보낼테니 지급정지해제를 해달라는 요청을 여러 곳에서 받았다. 보이스피싱 신고를 함과 동시에 연락 온 분들의 지급정지해체 요청도 일일이 은행마다 가서 해야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 아이 등원 후 농축협에 들려 송금확인서를 떼고 근처 새마을금고에 가서 2건의 지급정지 해지를 했다. 그리고 집에 가서 햄버거를 시켜 먹으면서 이제까지 모은 송금 확인서를 취합해서 입금이 들어온 계좌를 제외하는 작업을 했다. 경찰서에 가기 전 주민센터에 들러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을 했고, 3주 소요가 된다고 해서 임시신분증을 받았다. 피해구제신청을 할 때 신분증 사본이 필요한데 임시신분증 유효기간이 넉넉해야 신분증으로써 효력이 있다.


경찰서에 가서 동생과 함께 모든 은행의 송금확인서를 송금시간대별로 분류하고 진술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입금이 된 경우 말고 돌려받지 못한 계좌들을 경찰에서 수사진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계좌와 이체한 정확한 시간, 상대 계좌를 일일이 수기로 작성했다. 이때 참 현타가 온다. 사기 피해를 당하고 있는지 추호도 모른채 이 많은 이체 건들을 범인들이 보내라고 한 대로 일일이 내 손으로 송금 진행을 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현타가 왔다. 감정도 오락가락 한다. 쓰면서 큰 돈 이체건이나 나보고 ‘윤실장’의 이름으로 이체하라고 했던 계좌들을 적으면서 “이놈이네, 이놈이야. 얘가 수상해.” 분노도 하며 총 40건이 넘는 계좌들을 다 적었다. 다 적고 나니 총 피해금액이 얼마인지 정확한 윤곽이 드러났고, 예상보다 더 많은 피해액이 나와 마음이 안좋았다. 진술조서 작성 후, 경감님과 1대1로 조사실에서 조사를 마치고 사건사고확인서를 다음주 월요일 아침까지 발급해주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경찰서에서 나와 아이를 하원하러 갔다. 운전할 정신이 없어서 함께 동행해 준 동생이 계속 운전해주고 있는데 고마웠다. 새로 뚫은 생활비 통장과 신규 체크카드로 동생네 부부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주말을 앞두고 정신없는 일들을 잠깐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나의 큰 오산이었다. 이유는 다음 화에..) 지피티를 켜서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현재 보이스피싱으로 고통받는 나를 치유하고 싶었다. 정신없이 일처리를 한 후 무너질 내 마음이 걱정되었다. “지금부터 너는 매일 나와 30분씩 상담을 진행하게 될거야. 정해진시간은 따로 없어. 내가 ‘상담받고싶어.’ 라고 하면 바로 상담자 모드로 돌입하면 되. 알겠지? 니가 추천한 대로 수용전념치료에 맞춰서 총 20회기 상담을 진행할거야. 너는 상담자이고 나는 내담자이며 너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하며 내 일상을 회복해 나갈거야. 그러니 20회에 맞게 너 스스로 상담 루틴을 짜길 바래. 나에게 과제를 줘도 되고, 깊은 질문을 물어봐도 돼. 단 30분 정도에 맞춰서. 내가 보이스 피싱으로 인한 심리적 피해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상담을 시작해줘. 너는 상담자로써 상담자가 갖춰야 할 모든 덕목(공감, 존중, 정확한 해석, 진실성, 전문성)을 다 갖췄어. 이제 시작하자.“ 그렇게 1회기 상담을 진행했다. 첫 회 상담을 하고 느낀 점은 안식을 위해 존재했던 집이 셀프감금으로 인해 보이스피싱이 이루어졌던 범죄현장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집 어디에 있던 내가 도청당하고 녹화당했던 과거의 시간들이 떠올라 견디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날 지피티가 나에게 했던 말은 “그때 경험을 떠올릴 때, 뇌와 몸이 ‘나는 아직 위험하다’라고 착각해 그 순간의 감정·신체반응을 그대로 다시 일으킬 수 있다,이건 트라우마 반응이고 우리는 ACT를 통해 그 기억이 있어도 ‘지금 나는 안전하다’는 감각을 조금씩 회복해 나가려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나에게 제시했던 과제는 집에 있을 때, 그 당시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그때는 범죄현장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안전하다.” 라고 되뇌이기로 했다.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잘 구분하는 것. 이것이 내 마음 치유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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